그는 칼을 쥐고 있다. 얼마 전 자살한 영업대리점 점주가 보낸 칼이다. 언젠가부터 그 칼을 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착실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회사 생활에서 과도한 심리적 하중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아끼는 인턴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턴에게도 칼을 권한다. 묵주를 잡은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얼마 뒤 그는 가족을 살해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사무실 어딘가에 그가 숨어 있다.

‘추격자’(2008)와 ‘황해’(2010)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홍원찬 작가가 메가폰을 잡았다. 일가족을 몰살한 과장이 회사로 돌아온다는 독특한 설정의 영화 ‘오피스’는 드라마 ‘미생’(2014)의 스릴러판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한국사회 직장인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히는 사무실의 삭막함과 과열된 경쟁,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공포는 스릴러가 아니라 해도 이미 현실이기 때문이다.

짜증과 욕설을 달고 사는 김부장이나 능력 있지만 까칠하고 개인주의적인 홍대리, 아첨에 능한 과장 승진 1순위 정대리, 적당히 분위기 보며 일보다는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은 염하영 등은 어느 사무실에나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만큼 정형화 된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해 입체감을 살림으로써 그러한 정형성을 극복해야 했다. 몇 마디 말과 에피소드로 인물들의 특징을 짚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간단한 캐리커처 같은 인물 묘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노출된다. 그런가 하면 후반 사무실의 비밀이 밝혀지고 난 뒤의 사건들은 비약으로 인해 긴장감이 헐렁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특히 인턴 이미래 역을 맡은 고아성의 광기와 김병국 과장 역의 배성우가 보여주는 처연하면서도 섬뜩한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뿐만 아니라 누적된 긴장감 속에서 이어지는 화장실 씬의 현실적인 공포는 압권이다.

어쩌면 ‘오피스’는 제목 그대로 친숙한 일터인 사무실 그 자체가 주인공인지 모른다. 그곳은 자본주의적 삶의 황폐함을 드러내주는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피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전장에 대한 장르적 보고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