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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 이야기]절대음감에 관하여·3 지면기사
절대음감을 얻는 데에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습득(acquisition)하는 일처럼―여기서 '습득'이란 심리학·언어학 용어로 연령과 무관한 '학습'과 구분됨―사춘기 이전 교육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어쩌면 우리나라에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까닭이 바로 한국적인 교육열에 있는지도 모릅니다.그런데 많이들 아시겠지만, 음이름에 따른 음높이는 시대마다 달랐지요. 높은 소리일수록 화사한 느낌이 나니까, 음악가들이 갈수록 높은 음으로 조율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440헤르츠를 기준음 '라'로 정해서 더는 높게 조율하지 못하게 국제 표준으로 못 박았고요.그런데 당시 음악을 악기와 조율법과 기타 관습으로 연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니까, 현대 표준음에 맞춰진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음악을 듣다가 현기증이나 두통, 구토 등의 증세를 호소할 만큼 괴로워하더래요.여기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많은 연주자가 사실은 기준음 440헤르츠보다 티 나지 않게 살짝 높게 조율합니다. 2~3헤르츠 정도 높아요. 그리고 절대음감이 여기에 맞춰져 있죠. 제가 언젠가 비올라를 배운 일이 있는데요, 악기를 440헤르츠에 맞춰서 조율해 갔더니 현이 조금만 풀려도 선생님께서 곧바로 새로 조율을 해주시는데, 새로 조율한 음이 아무래도 표준보다 살짝 높은 것 같더라고요.가만 보니까 440헤르츠에 맞췄을 때에도 선생님께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조금 불편해하는 눈치예요. 아마도 절대음감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우리가 음악에서 조(key)를 따질 때 보통 C장조(다장조)를 기준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관악기 연주자는 악기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클라리넷은 B♭조 클라리넷이 가장 흔하거든요.또 여차 하면 악보를 보고 곧바로 조옮김을 해서 연주해야 할 때도 잦아요. 그런데 클라리넷 연주자가 절대음감을 얻으면 어떻게 될까요? 높은 확률로 'B♭조 절대음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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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절대음감에 관하여·2 지면기사
음악가들 사이에서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드물지 않아요. 특히 우리나라에는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많아서 학자들이 그 이유를 밝히려고 연구하기도 하더군요.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음악학교 교육제도가 절대음감이 없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음악 전공자들이 보는 시험 가운데 '청음'이라는 게 있어요. 짧은 음악을 들려주면 악보에 그대로 옮겨 쓰는 '받아쓰기' 시험이죠. 그런데 절대음감이 없으면 첫 음이 무슨 음이었는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기준 음을 먼저 들려주는 학교도 있지만, 안 그런 학교도 있거든요.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절대음감이 있으면 그냥 받아 쓰면 되니까. 음악이 끝나고 채 5분도 안 되어서 학생들이 우르르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버려요. 뒤에 남은 사람이 받을 스트레스를 알만하죠?절대음감이 곧 음악적 재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또 일부 방송 등에서 선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절대음감이 천재의 증거가 된다는 생각은 미신에 불과합니다.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훌륭한 화가가 되란 법은 없잖아요? 다만, 아무래도 절대음감이 있으면 음악하는데 여러모로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절대음감이 있으면 음을 상대적으로 생각하지 못해서 조옮김 하기를 어려워한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은 절대음감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그래도 조옮김을 잘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실험적 증거도 있습니다. 학술적인 검증이 좀 더 필요한 연구 결과이기는 하지만, 제 생각에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이 연구가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을 때, 어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이제까지 절대음감이 있어서 유리한 것도 있고 불리한 것도 있다. 결국 세상은 공평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세상은 사실 불공평하다…." (일동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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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절대음감에 관하여·1 지면기사
절대음감.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천재임을 드러내고자 곧잘 써먹는 설정이지요. 이를테면 피아노 건반을 대충 주먹으로 쾅! 내려친 다음 소리 난 음을 모두 알아맞히라면? 이걸 어렵지 않게 해내는 사람은 아마도 절대음감을 가졌을 겁니다.이런 사람은 사실 화음을 눌렀을 때보다 불협화음을 눌렀을 때 소리 난 음 맞히기를 더 쉽게 해요. 화음을 들으면 음들이 서로 어울려 버리기 때문에 마치 색맹·색약 검사할 때 쓰는 '이시하라 팔레트'처럼 헷갈릴 때가 있지만, 불협화음은 음 하나하나가 두드러지거든요.음높이는 상대적이지요. 그런데 빨간색을 보고 '빨강'이라는 색이름을 떠올리듯이, 어떤 음을 듣고 음이름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능력을 절대음감이라고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물리학적으로 따지자면, 빛과 소리는 주파수가 다를 뿐 전자기에너지라는 점에서는 같거든요.절대음감은 영어로 'absolute pitch'라고 부릅니다. '절대음고'가 학술적으로 더 정확한 말이죠. 인지과학자들은 절대음고가 기억의 일종이라고 합니다.절대음고가 있는 사람은 음계음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기준음이 '도'가 아닌 이상 두 음을 듣고 음정(interval) 맞히는 일을 어려워한대요.음이름이든 색이름이든 '이름'이라는 '언어'와 엮여 있죠. 이를테면 글자의 색깔을 알아맞히는 일을 할 때, '파랑'이라는 글자가 하필 빨간색으로 쓰여 있다면 몹시 헷갈리겠죠? "파랑. 아니, 빨강!" 언어 정보처리 과정에서 혼선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지요. 절대음감이 있으면 음계음을 들었을 때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그래서 이를테면 음악을 들으면서 영어 단어를 외거나 노래가사에 집중하는 일을 어려워합니다. 음이름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라 버리거든요!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음악가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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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프롬프터(prompter)를 아시나요? 지면기사
오페라 또는 연극 공연장에 갔다가 무대 한쪽에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공간을 발견한 일이 있나요? 앞자리에 앉으면 그곳에서 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무대에 바위나 기둥 같은 게 있다면 그곳에 사람이 숨어 있을 수도 있어요. 이 사람을 '프롬프터'(prompter)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배우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프롬프터의 고충에 관해 이렇게 말했지요. "프롬프터가 있는 개집을 보면 중세 이단심문을 떠올리게 된다. 극장의 프롬프터는 영원한 고통을 선고받아…."프롬프터가 숨어 있는 '프롬프터박스'(prompter box)는 스타니슬랍스키가 한 말처럼 '개집'이라 부를 만한 크기예요. 프롬프터는 좁고 덥고 무대 바닥에 가까운 그곳에서 먼지를 마셔 가며 공연과 연습을 포함해 거의 온종일 떠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예 노래를 할 때도 있어요. 옛날 오페라 실황 녹음을 들어보면 그 소리가 작게 들리기도 합니다.프롬프터는 가수나 배우가 대사, 선율, 리듬, 동선 따위를 잊어버리지 않게 미리 알려주거나, 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하는 일을 합니다. 말하자면 지휘자가 하는 일을 일부 나눠서 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작품을 달달 외우다시피 해야 합니다.중세에는 프롬프터가 무대 위에서 지휘자나 감독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오늘날과 같은 전문 지휘자가 나타난 때는 19세기입니다). 16세기에는 무대 밖에서 가수, 배우들을 입장시키고 막이 오르내리는 때를 결정하는 일 등을 주로 했다는데, 요즘에는 무대감독이 무대 뒤에서 모니터 화면과 헤드셋을 끼고 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17세기에 오페라가 유행하면서 프롬프터가 '개집'에 숨어 있는 신세가 됐다네요. 그리스-로마 시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요.저는 오페라 공연에서 자막 넘기는 일을 해봤는데요, 프롬프터가 따로 없고 자막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어서, 가수들이 우리말 자막을 보고 원어 가사를 떠올리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막 '넘돌이/넘순이'가 프롬프터 대용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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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오케스트라에 관하여2 지면기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는 어디일까요? 사실은 저도 잘 몰라서 조사를 해봤습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1·2위쯤 되지 않을까 짐작했더니 웬걸, 1548년으로 5위라네요.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는 덴마크 왕립 오케스트라로 1448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잠깐만요, 르네상스 시대에 오케스트라?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오케스트라'는 17~18세기에 걸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이 시민사회의 형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다는 '오케스트라'는 편성이나 관습 따위가 오늘날과 전혀 다른 르네상스식 '궁정악단'이었습니다.근대적인 오케스트라만을 따지자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야말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라 해야 할지 모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부유한 직물 상인들이 유능한 연주가들을 초빙해 소규모 공연을 하다가 정규 관현악단을 창설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고, 그 시기는 1743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게반트하우스'라는 연주회장이 준공되고 초대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가 임명된 때는 1781년이었고요.이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이 모여 만든 단체를 영어로 '필하모닉 소사이어티'(Philharmonic Society)라고도 합니다 (런던에 실제로 있는 단체 이름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일반명사로 쓸게요). 우리말로는 '음악(애호가)협회'정도로 옮길 수 있겠네요. '필하모닉'이라는 말은 뿌리를 따지자면 '하모니'를 사랑하는(philo-), 정도를 뜻하는 형용사입니다. 나중에는 '필하모닉'을 그냥 오케스트라를 뜻하는 명사로도 쓰게 됐어요.'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만든 오케스트라가 바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입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요즘에는 그냥 오케스트라 앞에 흔히 붙이는 말 정도로 바뀌어 버렸죠. 역사가 아주 오래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만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없어요.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로 그냥 붙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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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오케스트라에 관하여·1 지면기사
'오케스트라'(orchestra)는 말뿌리를 따지자면 '춤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곳을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원형 경기장 바닥이 '오케스트라'였는데, 르네상스 시대에 그리스 연극을 되살리면서는 무대 앞이 '오케스트라'가 되었다네요. 17세기에는 음악가들이 앉는 곳을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다가 18세기에 들어서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오케스트라는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17세기에 그리스 연극을 되살리고자 만든 것이 바로 '오페라'이지요. 오페라가 대중화되면서 유럽 곳곳에 오페라 극장이 생겨났고, 다양한 오페라 작품이 국경을 넘어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제각각이던 악기가 표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8세기에 와서 근대적인 악기 체계가 자리를 굳혔습니다. 바로크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에 걸쳐서 일어난 일입니다.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 오케스트라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테면 터키(오스만 튀르크)가 유럽을 침공하면서 타악기가 유럽에 수입되었습니다. 이때 터키 행진곡이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에도 중간에 터키 행진곡이 나오지요.프랑스 혁명 때에는 노래로 혁명 이념을 퍼트렸다고 해요. 사람들이 대부분 문맹이었던 그때에는 노래가 오늘날의 언론과 비슷한 역할을 했거든요. 그리고 이때 야외에서 중요한 행사를 자주 열게 되면서 음량이 큰 악기가 필요해졌지요. 군악대에서나 쓰던 금관악기가 바로 프랑스 혁명 때문에 오케스트라 악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금관악기 성능이 크게 좋아지기도 했고요.고전주의 음악 양식이 뿌리내리고,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음악회가 열리고, 그 과정에서 유럽 음악의 중심지가 프랑스에서 독일-오스트리아로 옮겨간 일 등이 맞물려 오케스트라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얘기는 복잡하니까 다음 기회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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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교향곡(Symphony)' 지면기사
음악 용어는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말글이 본디 그렇기도 하지만, 자연과학에서 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에 익숙한 현대인이라면 자칫 이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지요. 오늘 설명할 '교향곡' 또한 뭐라고 분명히 정의하기 어렵습니다.교향곡. 영어로는 심포니(Symphony). 함께·조화롭게(syn), 소리난다(phone)라는 그리스어가 라틴어 '심포니아'(Symphonia)를 거쳐 유래한 말입니다. 교향곡의 전형적 특징으로는 한 악장 이상(주로 1악장)을 소나타 형식으로 하는 다악장 기악곡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워낙 많아서 이것도 큰 의미는 없어요. 성악이 있는 교향곡, 한 악장으로 된 교향곡 등도 얼마든지 있거든요.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나 칸타타 등의 서곡(Overture)을 '심포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때는 '신포니아'(Sinfonia)라고 부를 때가 더 잦았죠. 그 이전에는 또 다른 뜻으로 쓰였지만, 얘기가 복잡하니 설명을 생략할게요. 우리가 흔히 아는 '교향곡'이 나타난 것은 18세기 중반 이후, 고전주의 양식이 나타나면서부터입니다. 하이든이 교향곡이라는 장르를 만들다시피했죠. '파파(Papa) 하이든'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습니다.교향곡이라는 장르가 뿌리내리면서 그 틀을 깨려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베토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게도 교향곡에 합창을 넣었고, 말러는 교향곡의 전형(prototype)에서 크게 벗어났습니다. 작품에 세계를 담아 그것을 '교향곡'이라 불렀죠. 메시앙은 무려 10악장짜리 '투랑갈릴라 교향곡'을 썼죠. 20세기 이후에 나온 별별 해괴한(?) 교향곡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을게요.그러면 도대체 교향곡이란 뭐냐고요? 작곡가가 '교향곡'이라고 부르면 그것이 교향곡입니다. 좀 이상해도 이게 정답이에요. 이제 '심포니'를 알았으니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말뜻도 대충 헤아릴 수 있지요? 다음 시간에는 오케스트라에 관해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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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론도 형식, 돌고 돌아 영원으로 지면기사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고전시가(古典詩歌) 기억나세요? '어긔야 어강됴리'나 '얄리얄리 얄랑셩' 같은 후렴구 정도는 떠오르시죠? 14~15세기 서양음악 가운데 이런 후렴구가 있는 정형시가를 롱도(rondeau)라고 불렀습니다. 영어 '라운드'(round)와 말뿌리가 같아요. 둥글다는 뜻이죠. 후렴구가 반복되는 모양이 둥글기도 하고, 또 이런 노래를 하면서 둥글게 돌며 춤추기도 했거든요.고전시가나 '롱도'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노래는 제법 있지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가사를 지어내 부르고, 사이사이에 후렴구를 부르고. 이러면 노래를 끝도 없이 이어갈 수 있지요. 이를테면 '노래'이면서 '놀이'이기도 한 '구구단을 외자!' 같은 것도 비슷합니다. 앗, 이것도 '둥글게'(round) 앉아서 돌아가며 부르네요!바로크 시대에서 고전주의시대로 넘어가던 때에는 기악으로도 비슷한 짜임새가 나타났습니다. 이를테면 A-B-A-C-A 꼴로 반복되는 주제 사이에 '에피소드'(episode)가 나타나는 식이죠. 이것을 론도 형식(rondo form)이라고 합니다. 중세 정형시가를 뜻하는 '롱도'는 프랑스 말이고, 기악 형식을 뜻하는 '론도'는 이탈리아 말이에요. 말뿌리는 다 같지요.그런데, 같은 론도 형식이라도 A-B-A-C-A-B 같은 짜임새라면 어떨까요? (AB)-(AC)-(AB) 이렇게 세 도막으로 묶어 생각하면,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소나타 형식이랑 비슷하죠? 이런 짜임새를 '소나타 론도 형식'(sonata rondo form)이라고도 부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조성구조 따위가 더 맞아야 하지만, 얘기가 복잡해지니까 대충 이렇게만 간추릴게요.교향곡, 협주곡, 독주 소나타 등에서 1악장에 소나타 형식을 쓴다면, 마지막 악장에서는 론도 형식을 쓸 때가 잦아요. 어쩌면 마지막에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살리려는 뜻이 아닐까요? 돌고 돌아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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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소나타 형식 지면기사
소나타(Sonata). 자동차 이름으로도 쓰이고 드라마 제목에도 쓰인 이 말은 본디 기악 음악을 뜻하던 말이었습니다. 성악을 뜻하던 '칸타타'(Cantata)와 짝을 이루는 말이기도 하고요. 이것이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정형화된 음악 형식을 일컫는 동시에 소나타 형식(sonata form)을 핵심으로 하는 다악장 기악 독주곡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사정은 좀 더 복잡하지만, 이 글은 학술 문헌이 아니니까 이렇게만 간추릴게요.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음악 형식(musical form)은 음악의 구조를 일컫는 말이고, 음악 양식(musical style)은 유파나 시대 등을 대표할 만한 특징을 일컫는 말입니다. '양식'은 고전주의 양식, 베토벤 후기 양식 등으로 쓸 수 있고, '형식'은 소나타 형식, 론도 형식, 두도막 형식 등으로 쓰입니다. 두 가지가 자칫 헷갈리기 쉬우니 주의하세요.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제시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부(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만, 여기서 복잡한 얘기는 더 하지 않을게요. 지면으로 음악을 들려드릴 수는 없으니, 직접 음악을 들으면서 분석해 보는 방법을 추천하겠습니다. '분석'이라는 말을 쓰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별것 없어요.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 1악장을 들으면서 제1 주제와 제2 주제는 어느 것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제시부인지 스스로 따져 보세요. 그렇게 음악을 나누는 일이 바로 '분석'입니다. 하이든 또는 모차르트 작품이라면 표준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다음 시간에는 론도 형식에 관해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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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주제와 변주 지면기사
악곡의 형식에 관해 얘기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주제(theme)와 변주(variation)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의 테마'라느니 하면서 짤막하게 나오는 음악이 있지요? 이때 '테마'라는 외래어를 이 글에서는 '주제'라고 부를게요. 악곡을 글과 견준다면, 주제는 문장 하나 또는 구절 하나에 해당합니다. 주제와 비슷한 말로 동기(motif)가 있는데, 동기는 글과 견준다면 단어 하나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단어 하나가 문장 하나가 될 수도 있고("사랑해!"), 거꾸로 문장 하나가 단어 하나의 역할을 할 때도 있지요(the rush-into-the-books event). 그래서 주제와 동기를 구분하는 일은 애매합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를 대충 비슷한 뜻으로 쓸게요.애국가 1절을 넷으로 나누고 첫머리 가사만 늘어놓아 보세요. 동해 물과 / 하느님이 / 무궁화 / 대한 사람. 왜 이렇게 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주제(또는 동기) 단위로 나누면 바로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가사에 붙은 리듬을 잘 보세요. '동해 물과'를 빼면 나머지 셋이 같지요. 제 생각이지만, 작곡가는 처음에 넷 모두 같은 리듬을 썼다가 나중에 바꿨을 거예요. 애국가가 없고 가사만 있던 시절에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선율을 따라가 불렀다고 하잖아요? 작곡가는 이것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가사가 '동해 물'이 아닌 '동 해물'처럼 들리는 단점을 무릅쓰고 리듬을 고쳤겠죠.'동해 물과~'와 '하느님이~'는 선율도 다르고 리듬도 다르지만, 그래도 닮았죠. 주제 하나를 슬쩍 고쳐서 그렇습니다. 선율, 리듬, 화성 등 주제를 이루는 요소 일부를 고치는 일을 '변주'라고 합니다.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고치느냐에 따라 귀로 듣고 쉽게 알아챌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변주 기법을 악곡 형식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변주곡입니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 널리 알려진 변주곡을 들으면서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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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에 관하여·3 지면기사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의 세 번째 원칙은 중요한 악기를 지휘자 가까이 둔다는 것입니다. 현악기는 연주자 둘이서 보면대 하나를 보는 식으로 두 줄로 앉게 되는데, 지휘자와 가깝고 객석과도 가까운 바깥쪽 연주자가 안쪽 연주자보다 서열이 높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하자면 사수-부사수 관계와 비슷합니다. 이를테면 안쪽 연주자가 악보를 도맡아 넘기죠. 보면대 위치가 지휘자와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서도 서열이 갈려요.관악기도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수석 연주자가 앉습니다. 목관악기 연주자가 많아서 한 줄로 앉지 못하면 플루트와 오보에가 앞줄, 클라리넷과 바순이 뒷줄이 됩니다. 이때 특수 악기인 E♭ 클라리넷, 베이스클라리넷, 콘트라바순, 오보에 계통 악기인 잉글리시호른 등은 수석 연주자보다 먼 곳에 앉지요. 이를테면 잉글리시호른 연주자는 오보에 수석 연주자보다 오른쪽에 앉습니다.금관악기는 음량이 워낙 큰 만큼 작품 성격에 따라 배치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지만, 보통은 왼쪽부터 호른-트럼펫-트롬본-베이스트롬본-튜바 순이 됩니다. 오케스트라 전체 소리를 압도하곤 하는 트럼펫이 가운데쯤에 앉죠. 타악기는 음색에 큰 영향을 끼치는 악기인 만큼 작품 성격에 따라 제각각인데, 가장 자주 쓰이는 타악기인 팀파니가 가운데 앉을 때가 잦습니다.이런 배치 때문에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순 연주자입니다. 바로 머리 뒤에서 트럼펫이 '빠앙―' 소리를 낼 때가 잦거든요! 운이 좋아서 트럼펫을 피하면, 머리 뒤에는 보통 트롬본이 만만치 않은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바순 연주자는 귀를 보호할 수 있는 특수 의자를 사용하기도 한다네요.여러 가지 악기 이름을 들먹이려니 지면이라는 매체 한계가 아쉽네요. 악기를 보여주면서 소리도 들려 드리면 좋을 텐데 말이죠. 다음 시간에는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등 악곡의 형식 또는 장르를 일컫는 말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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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에 관하여·2 지면기사
지난 시간에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의 두 가지 원칙에 관해 얘기했지요. 세 번째 원칙이 있지만, 이것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이제 실제 배치에 관해 알려 드릴게요. 먼저, 현악기는 보통 제1 바이올린이 왼쪽, 제2 바이올린이 그 뒤쪽, 비올라가 가운데, 첼로가 오른쪽, 콘트라베이스가 오른쪽 구석 끝에 있지요. 이른바 '필라델피아 사운드'로 이름 높았던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1882~1977)가 이 배치를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식 배치'라고도 합니다. 미국식 배치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가까이 있는 만큼 유기적으로 잘 어울리는 연주와 음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유럽에서도 때때로 미국식 배치를 쓰는 모양이지만, 전통적인 유럽식 배치는 좀 다릅니다. 제1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제2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순이죠. 때로는 더블베이스가 왼쪽 끝으로 가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좌우로 있어서 '소프라노 성부'와 '알토 성부'가 '스테레오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처음부터 이 배치를 염두에 두고 '스테레오 효과'를 잘 살리도록 쓰인 곡도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연주자들이 귀로 듣고 앙상블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편성을 요구하는 작품일수록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를테면 말러 교향곡을 이런 배치로 잘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는 많지 않을 거예요.유럽식 배치의 또 다른 장점은 첼로가 정면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음향학적으로 더욱 풍성한 소리가 객석으로 전달되거든요. 그래서 미국식 배치를 조금 변형해서 첼로를 가운데 두고 비올라를 오른쪽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이 배치의 단점은 지휘자가 때때로 악기 위치를 헷갈려서 엉뚱한 곳으로 예비박을 주고는 머쓱해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경험 많은 지휘자는 설마 안 헷갈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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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에 관하여·1 지면기사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는 보통 지휘자가 결정합니다. 작곡가가 악보에 따로 지시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표준화된 원칙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음량이 큰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뒤로 가고, 음량이 작은 현악기가 앞으로 나오죠. 좌우 배치는 보통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순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이 얘기를 하려면 서양음악의 화성(harmony)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서양음악은 본디 성악이 중심이었지요. 그래서 기악이 성악을 앞지른 뒤에도 성악에서 쓰던 이론과 용어를 기악에 그대로 쓰곤 합니다. 화성 이론에서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이렇게 네 가지 성부(聲部· voice)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런 4성부 체계가 오케스트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현악기 가운데 소프라노 역할은 제1 바이올린입니다. 제2 바이올린이 알토, 비올라가 테너, 첼로가 베이스 역할입니다. 더블베이스가 왜 빠졌느냐고요? 더블베이스는 베이스 성부를 '더블링'(doubling)하는 악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베이스 성부를 맡는 첼로보다 한 옥타브 아래에서 첼로와 같은 선율을 연주해요.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다른 선율을 연주할 때도 있다고요? 옛날에는 안 그랬다가 '독립'한 거예요. 더블베이스를 '독립'시킨 작곡가는 베토벤입니다.목관악기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이 각각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성부를 맡습니다. 금관악기는 트럼펫, 호른, 트롬본, 베이스트롬본이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악기마다 음색이 다 다르고 음역도 넓어서 역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피콜로, 베이스클라리넷, 콘트라바순 등 특별한 악기가 4성부 가운데 하나를 대신하거나 '더블링'할 수도 있고요.이렇게 해서 왼쪽부터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순으로 악기가 배치됩니다. 어? 꼭 그렇지는 않다고요? 맞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얘기가 조금 더 복잡해지는데요, 지면이 짧으니 다음 시간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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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지휘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4 지면기사
지난 시간에 지휘자의 역할 가운데 작품 해석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누구나 아는 곡을 예로 들다 보니 시대적 특성을 헤아리는 얘기가 많았지만, 현대 곡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지휘자는 작품의 어느 대목에 어떤 음색이 가장 알맞은지를 '해석'하고 그것을 연주자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이를테면 현악기가 어느 대목에서 비브라토를 얼마만큼 쓸지, 활을 지판 가까이에서 긁을지 멀리서 긁을지, 얼마만한 힘과 얼마만한 빠르기로 긁을지, 음표마다 활 방향은 어떻게 할지 등이요. 구체적인 연주법은 악장이나 수석단원이 결정하기도 하지만, 지휘자가 특정 연주법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대곡이라면 작곡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겠고요.지휘자 없이 공연하는 악단도 있어요. 악단 규모가 작고 지휘자의 역할이 애초에 크게 필요하지 않은 작품만 연주한다면 지휘자가 없어도 됩니다. 다만, 그럴 때에도 악장이나 다른 누군가가 지휘자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지휘봉만 안 들었을 뿐이죠. 사실, 오늘날과 같은 전문 지휘자가 나타난 때는 19세기입니다. 그래서 이를 테면 18세기 작품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협연자가 지휘자를 겸할 때가 잦아요.특수한 사례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마음에 안 들면 단원들이 지휘자를 따돌리고 '지휘자가 지시한 것보다 더 아름답게' 연주해 버리기로 유명합니다. 전통과 실력이 있는 악단일수록 지휘자 말을 안 듣고 연주자 자신의 해석을 지휘자에게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지요.그런데 그 콧대 높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지휘자도 있더라고요. 20세기 관현악곡을 연주하는데, 트럼펫 연주자 하나가 틀린 음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틀린 대목에서 트럼펫 네 대가 독립적인 선율을 연주합니다. 결정적으로 무조음악이고, 다른 악기까지 더하면 무시무시한 음표의 카오스 상태이지요. 그런데 지휘자는 두 번만에 '범인'을 잡아냅니다! 살아남은(?) 단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려요. 그 지휘자는 피에르 불레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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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지휘자는 무슨일을 하나요·3 지면기사
이제까지 지휘자의 박자 젓기에 관해서 기술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말씀드렸는데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악보라는 '텍스트'를 음악이 될 수 있도록 '해석'하고 그것을 연주자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일입니다. 작품 해석이 훌륭해야 할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라는 조직의 으뜸으로서 이른바 '리더십'을 보여야 하지요. 지휘자를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작품 해석 얘기를 자세히 해볼게요.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살린 연주가 가장 훌륭한 연주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곡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은 다음에야 알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이 이미 발표된 이상 작곡가의 의도가 절대적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도 했지요. 작품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휘자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도입부를 예로 들자면, '공포의 팡파르'라고 불리는 이 대목은 사실 악보대로라면 주선율을 목관악기가 연주하고 트럼펫 등은 단순한 음형으로 뒤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 쓰이던 트럼펫으로는 낼 수 없던 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늘날에는 트럼펫에 주선율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베토벤의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이왕이면 트럼펫의 강력한 음량에 맞게 악기 편성을 악보 지시보다 '뻥튀기'해 주고요.몇십 년 전부터 좀 다른 해석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악보에 있는 음표 그대로, 악보에 있는 편성 그대로 연주하자고요. 더 나아가 작품이 발표될 당시 악기로 연주하고 악기 조율법까지 그때 관습대로 하며, 악보에 나오는 작은 나타냄말까지 당시 관습과 작곡가의 버릇 등까지 고려해 '해석'하고자 하면 본격적인 학술 연구가 됩니다. 지휘자는 그 성과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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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지휘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2 지면기사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도입부에서 박자 젓기에 관해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있습니다. 그 음을 적당히 늘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요? 말 그대로 '적당히' 감으로 늘일 수도 있겠고, 뒤에 비슷한 음형이 다시 나오는 곳을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어요. 음반을 들어 보면 늘임표를 아예 무시한 연주도 제법 있더라고요. 이쯤 되면 단순한(?) 박자 젓기가 아니라 본격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음형이 곧바로 또 나오니까,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예비박 문제를 또 만납니다. 지휘자는 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줘야 해요.지휘자가 손동작으로 묘기를 부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른손으로 박자를 저으면서 왼손 바닥을 펼친 상태에서 재빨리 떨어 보세요. 양손이 따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되나요? 지휘자는 그런 동작도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연주회장에서 "바이올린만 크레셴도!"(점점 세게!) 하고 외칠 수는 없잖아요?작품에 따라서는 악기마다 박자와 템포, 셈여림이 제각각이기도 합니다. 지휘자는 이럴 때에도 악기마다 알맞은 예비박을 따로 줘야 해요. 한 번은 연주회장에서 현대음악을 듣는데, 목관악기 하나하나가 불규칙하게 마구 튀어나와요. 지휘자는 그 대목에서 아예 박자 젓기를 멈추고 악기마다 일일이 예비박을 주더라고요. 보통 사람의 박자 감각으로는 어림도 없는 묘기였지요!오페라를 지휘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가수 하나하나를 신경써야 하는 데다가, 가수들이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곁들이기 때문에 돌발상황이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럴 때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알맞게 예비박을 바꿔 줘야 하지요.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사고 수습'이라 하기도 뭣해요. 오페라 지휘 경험이 없는 지휘자는 이런 일을 잘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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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지휘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1 지면기사
지휘자는 앞에서 팔 휘젓는 일이 다인데 그런 사람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질문을 바꿔 보죠. 영화감독은 '레디, 고!'와 '컷!'을 외치는 일 말고 무슨 일을 할까요? 연기는 배우가 하고 촬영은 카메라맨이 하는데요. 설마 그게 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죠? 지휘자도 영화감독과 비슷합니다. 템포, 음색, 셈여림 등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를 결정하고 구체적인 연주법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지면이 짧으니 오늘은 눈에 보이는 '박자 젓기'(beating)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게요.학교에서 녹음된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불러요. 그런데 '우리가' 노래를 끝내고 나니 반주는 아직 한참 남았어요! 이런 경험 다들 해봤죠? 그런데 비슷한 실수를 프로 합창단도 하더라고요. 음악이 복잡한데 무대 음향은 나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다른 단체라서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면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관객이 너그럽게 이해해줄 리는 없잖아요? 이때 재빨리 사태를 수습할 책임은 지휘자한테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서로 다른 예비박을 줘서 순식간에 '티 나지 않게' 템포를 맞춰야 합니다. 저는 실제로 그런 묘기를 본 일이 있어요.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도입부. 누구나 한 번쯤 이 곡으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해본 일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음반을 틀어놓고 해보면 음악이랑 손동작이 잘 안 맞죠! 이 대목은 실제 공연장에서도 '사고'가 잦습니다. '따따따 따안―' 하는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이죠.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지휘자가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팔 움직임이 너무 날카로워서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아요.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주면 확실하지만, 그러면 모양새가 너무 안 좋아요. 바로 뒷부분이 더 까다로운데,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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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브라보'는 남자한테만, 그렇다면 여자는? 지면기사
'브라보'(bravo). 말뜻은 대충 아시죠? 그런데 남·여, 단수·복수에 따라 말을 달리 써야 한다는 사실도 아시나요?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남자는 브라보, 여자는 혼자일 때 '브라바'(brava)라 하고 여럿일 때 '브라베'(brave)라 합니다. 남녀가 섞였으면 '브라비'(bravi)라고 해요.이탈리아 말은 다 이런 식이에요. 협주곡에 대해 이론적으로 공부해 보신 분은 '투티'(tutti)라는 말 들어 보셨을거예요. '다 함께'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여자만 있으면 '투테'라고 해야겠죠. 앗, 어디서 들어본 말인가요?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여자는 다 그래'라는 뜻이죠.뭘 이렇게 복잡하게 구분해 써야 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제가 한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오래전 어떤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에서 여성 가수가 독일 가곡을 멋지게 불렀습니다. 저는 '브라바!'라고 할까 생각했다가, 괜히 잘난 척하는 듯해서 그냥 '브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악 전공자인 듯한 몇몇 사람이 저를 쳐다보면서 살짝 비웃어요. 여보세요, 내가 모르고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오, 진짠데!그런데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남녀가 섞여 있어도 '브라비'라 하지 않고 '브라보'라고 할 때가 잦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특수한 관습 탓이에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없었거든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카라얀이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인 자비네 마이어를 단원으로 데려오면서 기존 단원들과 한바탕 크게 싸웠다거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97년이 되어서야 여성 단원을 받아들였고 아직도 이따금 여성 차별로 구설에 오른다는 사실은 제법 유명하지요.마지막으로 한 가지. 브라보할 때 '라'를 길고 세게 소리내고 나머지는 여리게 하면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를 세게 발음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잘못이에요. '브라바' 등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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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여린 음악 소리 망치는 객석의 별별 소리 지면기사
공연 중 감상에 방해되는 소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전화벨 소리 얘기는 지난주에 했지요. 그만큼 고약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거슬리는 소리에 관해 얘기할까 합니다. 아참, 전화는 진동으로 해 놓더라도 음악이 조용한 대목이라면, 그 진동 소리조차 주위 사람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화는 반드시 꺼 주세요.그리고 기침 소리. 겨울에 가장 문제되지요. 기관지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이 많은 공연장은 그다지 좋은 공간이 아니기도 하겠고요.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공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손수건입니다. 손수건이 없다면 옷자락으로라도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면 그만큼 소리를 줄일 수 있습니다. 기침을 막는 데 도움되는 사탕도 좋겠지만, 비닐봉지에 담긴 것은 곤란합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기침 소리보다 더 큰 민폐일 수 있어요. 무엇이든 비닐에 담긴 것은 되도록 공연장에 가지고 가지 않으면 좋습니다. 이 소리는 주파수 대역이 높아서 나이가 들면서 쉽게 둔감해질 수도 있지만, 소리의 색깔을 결정하는 중요한 음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만큼 음악 감상에 방해되기도 합니다.비닐봉지 소리만큼은 아니지만, 공연 소책자 등 종이를 넘기는 소리도 되도록 작게 해 주시면 좋습니다. 숙제하러 온 학생이라면 필기하는 소리에도 조심해 주세요. 연필이나 샤프보다 심이 굵은 볼펜을 쓰면 그나마 낫고, 큰 공책보다 작은 수첩이 좋아요.그런 작은 소리까지 조심해야 한다니, 너무 까다롭지 않아?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의 진짜 아름다움은 여린 소리에서 나올 때가 잦습니다. 그 소리를 객석 소음 탓에 놓쳐 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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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의 클래식이야기]공연 중 좌절감을 주는 소리 '전화 왔숑!' 지면기사
2012년 1월 10일, 뉴욕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 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죽어가듯이 음악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우렁찬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한참 동안 그치지 않았고, 지휘자 앨런 길버트는 이례적으로 연주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객석에서 험악한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가!" "끌어내!"이 사건은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알고 봤더니 전화기 주인은 뉴욕필 고정 팬이자 유료회원이었고, 공연장 예절을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필 그날 전화기를 아이폰으로 바꾸었는데, 전화벨 소리를 꺼도 알람 소리는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데 한참 걸렸다나요. 뉴욕필은 개인정보가 언론에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전화 주인은 창피해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합니다.비슷한 사건은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2011년 3월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때였지요. 브루크너 교향곡 8번 3악장, 조용한 대목에서 전화벨 소리가 1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연주를 중단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이 악단은 내한공연을 꺼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흘 뒤 일어난 일본 대지진 소식에 묻혀 버렸습니다.)공연장 전화벨 소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파 차단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어긋나지요. 전화 통화를 할 권리를 침해한다고요.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는 법이 달라서 많은 공연장에서 전파 차단을 시행한다고 합니다.결국,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모든 관객이 전화를 끄는 것입니다. 공연 단체에 따라 안내방송의 주목도를 높이고자 때로 기발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관객을 가르치려 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네요. 그래도 결론은 이것뿐입니다. 꺼진 전화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