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5)세상에서 제일 긴 클래식]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일동안 16시간 연주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5)세상에서 제일 긴 클래식]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일동안 16시간 연주 지면기사

    영화 '반지의 제왕' 모티브 음악극에릭 사티 '벡사시옹' 13시간 걸려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은?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Musikdrama)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이하 '반지')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었다. 총 연주시간은 16시간(휴식시간 제외)이나 된다. 이 작품은 전야(前夜·'라인의 황금')와 3일간의 본편('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구성됐다. 평균 4시간에 이르는 작품들이 4일 동안 펼쳐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제전에서 상연했던 3부작의 '그리스 비극'을 모델로 했다. 그러나 프롤로그 격인 '라인의 황금'에서 이미 구체적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4부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단일 음악으로는 13시간 동안 연주해야 하는 에릭 사티의 전위적 작품인 '벡사시옹(Vexations)'도 무척 길다.바그너는 총체 예술 작품(Gesamtkunstwerk)을 표방하며 음악과 연극, 이야기가 하나로 결합된 예술인 '음악극'을 창안했다. '음악에 봉사하는 연극적 요소'를 갖춘 기존의 오페라와 차별화를 꾀한 거였다.바그너 음악극의 정수인 '반지'는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는 데 26년이 걸렸다. 또한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음악극 상연에 적당한 극장을 건립한 바그너는 1876년 극장 개관 기념작으로 '반지'를 초연했다. '반지'는 북유럽의 신화와 게르만족의 전설을 혼합해 만들어졌다. 저주받은 반지가 저주에서 풀리기까지의 40여년 동안의 과정과 반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극은 16명의 주역을 포함해 3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바그너는 16시간에 이르는 복잡한 이야기를 관객에 쉽게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합창단)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극의 전사(前事)를 설명하고 무대 배경을 제시하며, 주인공을 비난·설득·독려했다. 바그너는 이 역할을 오케스트라에 부여했다. 이를 \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4)악마의 트릴]꿈에서 영혼과 맞바꾼 '악마의 연주'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4)악마의 트릴]꿈에서 영혼과 맞바꾼 '악마의 연주' 지면기사

    '서거 250주기' 주세페 타르티니바이올린 소나타 에피소드 유명 올해 음악계의 시선은 탄생 250주년인 베토벤에게 쏠려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 중 일부는 올해 서거 250주기를 맞는 후기 바로크 시기의 작곡가이자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이탈리아)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개관 3년 차를 맞는 아트센터 인천 또한 3월부터 본격적인 시즌을 시작하는 가운데 베토벤 탄생 250주년, 타르티니 서거 250주기을 기념한 공연을 주요 자리에 배치했다. 오는 4월부터 12월까지 격월로 매주 마지막 토요일 오후에 '해설이 있는 음악회 토요 스테이지'를 통해 두 작곡가를 조명할 예정이다. 특히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는 베토벤과 타르티니를 주제로 한 공연과 강연, 토크 콘서트를 갖는다.타르티니는 비발디와 함께 바로크 시기 2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뛰어난 음악 이론가이기도 했던 타르티니는 작곡가로서 수백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를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이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이다. 이 작품에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1713년 어느 날 밤, 꿈속에서 타르티니는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타르티니의 영혼을 사는 대신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타르티니가 바이올린을 건네자 악마는 황홀할 정도의 트릴(떤꾸밈음이라고도 하며, 악보에 쓰인 음과 그 2도 위의 음의 빠른 연속적인 반복으로 이루어짐)이 있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다.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기억을 더듬어 악마가 연주한 선율을 악보에 기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악마의 트릴'이다. 작품 발표 후 타르티니의 왼손가락이 여섯 개였기 때문에, '악마의 트릴'을 연주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타르티니의 초인적인 기교와 작품의 탄생 일화가 만나 생겨난 가십으로 치부할 수 있다.이 같은 가십은 비르투오소(virtuoso) 연주자들에 종종 따라 붙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악마의 연관 관계의 대표격은 타르티니의 후배인 니콜로 파가니니(1782~18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3)모더니즘 Ⅱ]극한의 객관성으로 진화한 '음렬음악'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3)모더니즘 Ⅱ]극한의 객관성으로 진화한 '음렬음악' 지면기사

    전쟁후 쇤베르크 미학 강화…향후 음색음악은 음결합 치중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음악계도 폐허로 만들었다. 나치는 유대인 음악가들을 탄압했으며, 자신들의 정책에 부응하는 음악만을 인정했다. 실험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이념을 표방한 작품은 탄압 대상이었다. 1945년 전쟁 후 작곡가들의 관심은 나치 독재로 인해 중단된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쏠렸다. 계승 대상은 여럿이었지만, 주된 흐름은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음렬음악)이었다. 독일 다름슈타트는 이러한 흐름의 진원지였다. 1951년 다름슈타트의 현대음악연구소 여름 강좌에서 음렬음악의 대표주자였던 피에르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강연을 했다. 쇤베르크의 작곡사상과 단절을 공표하는 강연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절이라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진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쇤베르크의 미학을 한층 강화한 것이었다. 쇤베르크의 음렬이 음의 높고 낮음만을 계열화했다면, 불레즈를 비롯한 음렬음악 작곡가들은 음의 길이와 강약, 음을 두드리는 방식(어택), 음렬을 택하는 순서까지 계열화해 작곡했다. 이를 통해 작곡가의 감성이나 주관이 요즘 말로 단 '1'도 끼어들 수 없는 '극한의 객관성'으로 무장된 음악을 창안했다. 그 결과물들은 혼란스럽고 우연한 소리의 집합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전쟁 후 혼란한 시대상과 그러한 환경에 놓인 개개인의 상황을 일깨운다. 불레즈의 '구조들 Ⅰa'는 이 같은 시도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다.1960년대 나타나는 '음색(音色)음악'은 음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전체적인 효과(음렬음악은 한 음 한 음에 집중)에 치중한 음악이었다. 폴란드 태생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는 27세에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를 발표했다. 우리에겐 광복을 안긴 사건이었지만,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의 종결을 알린 비인간적인 사건을 소재로 택한 작품이었다. 52개의 현악기로 9분 동안 연주되는 이 작품에선 피아노 건반을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보다 더한 불협화음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2)모더니즘Ⅰ]불협화음 내세운 '12음 기법의 탄생'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2)모더니즘Ⅰ]불협화음 내세운 '12음 기법의 탄생' 지면기사

    쇤베르크, 상투적 조성음악 거부진실 추구위해 불안·긴장 등 표현 "독일 음악이 앞으로 200년의 주도권을 확보했다."20세기 초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조성(調聲) 음악을 대체할 '12음 기법'을 창안하고 나서 이같이 말했다. 서양음악사에서 바흐의 '평균율'로 주도권을 쥐었던 독일 음악이 자신의 12음 기법으로 인해, 다시 서양음악의 근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찬 발언이었다. 열두 개의 반음으로 만든 음렬(音列)을 근거로 한 작곡법인 '12음 기법'은 조성과 무관할 수 있으며, 악곡을 통일시키는 선율적 근거도 얻을 수 있었다. 쇤베르크는 왜 조성과 결별을 택했을까?1900년을 전후한 오스트리아 빈에는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을 중심으로 한 '제2 빈 악파'(제1 빈 악파는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와 '빈 왈츠'가 공존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한 작곡가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작곡가로 나뉜 것이다. 왈츠와 희가극인 오페레타를 작곡한 음악가들과 달리 쇤베르크와 그를 따르는 작곡가들은 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해 주는 작업을 해 나갔다. 기존의 상투적인(조성) 어법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거부한 쇤베르크는 조성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을 구축할 원리를 찾아냈다. '12음 기법'이 조성을 대체하면서 이전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불협화음들이 작품 전면에 나타났다.쇤베르크의 음악적 표현은 이전 시기 작곡가들이 즐겨 택했던 사랑과 기쁨, 슬픔이 아니었다. '기대, Op 17'(1908년)이나 '달에 홀린 피에로, Op 21'(1912년)에서 보듯 불협화음을 통한 불안, 긴장, 두려움, 내적 갈등, 충동 등이었다. 당시 쇤베르크는 "예술은 장식이어선 안 된다. '진실(Wahrheit)'이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논제를 남겼다.음악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과 사회학, 미학 등 광범위한 연구활동을 한 20세기 독일의 사상가 테오도르 W. 아도르노 또한 "청중의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선율은 자체의 비판력을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1)영화와 음악]클래식 가장 잘 활용한 '스탠리 큐브릭'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1)영화와 음악]클래식 가장 잘 활용한 '스탠리 큐브릭' 지면기사

    대표 작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이브 시네마 콘서트 이어져 배경 음악과 음향 효과 없는 영화와 드라마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집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음량을 최대한 줄이고 시청해 본 적이 있는가.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그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3D와 가상현실(VR) 등 현란한 시각 효과 속에서도 이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한결같은 품위로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는 클래식 음악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로 꼽힌다. 영화는 클래식과 영상의 이상적인 결합을 통해 대담하면서도 완벽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성과에 힘입어 영화의 '라이브 시네마 콘서트'가 제작돼 2010년 런던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세계 30여 도시에서 선을 보였다.우리나라에선 201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국립합창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콘서트는 2시간40분여 동안 진행되는 영화 전편을 상영하면서 대사와 음향은 그대로 들려주고, 음악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됐다.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는 영화팬과 음악팬 모두에게 강력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준다.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50여 종의 유인원 중 하나가 동물의 뼈를 몽둥이(무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될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이 흘러나온다.영화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아서 C 클라크 작)은 치밀한 과학적 지식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해부했다.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상황은 일종의 윤회사상으로 풀어냈다.이에 비춰 볼 때 큐브릭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설파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테마를 영화와 연결하려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선택된 음악에 대한 필연성도 부여된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0)왈츠]80회째 오스트리아 새해를 여는 '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0)왈츠]80회째 오스트리아 새해를 여는 '흥' 지면기사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장식정치서 국민 관심 돌리던 역할 올해 첫날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 빈은 왈츠의 열기로 휩싸였다. 누구나 알고 공감하면서 즐길 수 있는 대표 클래식 이벤트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PO) 신년 음악회'가 지난 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다. 레퍼토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등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등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슨스가 맡았다. 41세의 넬슨스는 보스턴 심포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의 지휘자이다. 우리나라에선 같은 날 오후 7시 전국의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생중계됐다.'WPO 신년 음악회'의 시초는 1939년 12월 31일 정오에 열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회'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클레멘스 클라우스가 지휘하는 WPO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비롯해 '아침의 꽃잎', '황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의 왈츠로 구성됐다. 이듬해에도 송년 음악회로 개최된 이 음악회는 이튿날인 1941년 1월 1일 오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됐다. 이때부터 'WPO 신년 음악회'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첫 날에 거르지 않고 개최된 '신년 음악회'는 올해로 80회째를 맞았다.'신년 음악회'는 빈의 전통에 기반한 왈츠의 흥겨운 멜로디를 새해 선물로 선사해 더 많은 음악팬과 가까워지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고난 속에서 국민에게 음악을 통한 위안을 주고 복잡해진 정치 문제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빈의 왈츠는 이전에도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00년을 전후해 유럽을 지배했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유독 오스트리아에는 폭넓게 전파되지 못했다. 왈츠의 매력에 빠져 무도회장을 찾으며 분위기에 취해 있는 국민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이뤄졌던 왕정 타도 물결이 오스트리아는 비켜갔다는 것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9)합창교향곡]인류애 메시지 담아낸 클래식 대명사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9)합창교향곡]인류애 메시지 담아낸 클래식 대명사 지면기사

    청력 잃은 베토벤 초연무대 지휘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 영향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9번 '합창'은 클래식의 대명사격이다. 초연 이후 약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자들을 매료시키는 메인 테마가 강렬하다. 5번에서 운명을 극복한 성취는 마지막 교향곡 9번에서 혼돈과 반목을 극복한 인류애의 메시지로 승화한다.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자신의 지휘로 1824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교향곡 9번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지휘자로 참여한 앞선 공연들에서 연주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신경을 쓰다가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이는 커다란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주위에선 지휘를 만류했지만, 베토벤은 9번의 초연 무대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포디엄(지휘대)엔 베토벤이 서지만, 단원들은 무대 한쪽에 숨어있는 또 한 사람의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의 지시에 따라 연주를 했다. 당시 초연에 참여했던 한 합창단원은 "베토벤이 연주에 맞춰 악보를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고 증언하는 등 베토벤의 지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연주회는 성공적이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새로운 교향곡의 출현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작곡가의 창조적 열정과 비감에 찬 우수의 세계가 표출되는 1악장, 비감에 찬 세계를 헤쳐나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저지되는 2악장, 세상의 조화를 그린 3악장에 이어 4악장에선 앞서 제시된 세계와 장애가 회상처럼 지나간 후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와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교향곡'은 인류애를 노래하는 거대한 표현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 이는 교향곡을 통해 하나의 우주를 구현하려 한 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교향곡 9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에 연주되는 등 정치적 목적이 결부된 이벤트에도 자주 선을 보였다. 또한 유럽의 일부 지역과 아시아의 우리나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8)어빙 벌린]"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8)어빙 벌린]"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지면기사

    '화이트 크리스마스' 작곡 유명악보 문맹 불구 1500여곡 남겨 크리스마스에 부르는 성탄 축하곡을 의미하는 캐럴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뭘까. 20세 이상 성인은 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꼽지 않을까.'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춤과 노래들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영화 '홀리데이 인'(1942)의 주제가로 선을 보였다. 이 영화의 모든 삽입곡은 올해로 타계 30주년을 맞은 어빙 벌린(1888~1989)이 작곡했다. 벌린은 그 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러시아계 유대인(본명은 이스라엘 발린)인 벌린은 4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살다가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래(1천500여곡)를 남겼다. 1910년 첫 발표곡인 '업 앤 다운 브로드웨이'에 이어 이듬해 '알렉산더스 랙타임밴드'로 대성공을 거둔 벌린은 가요와 무대·영화음악 등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 손을 댔다. 그는 청중의 요구에 자신의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줄 알았다.8세에 아버지를 여읜 벌린은 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카페 웨이터로 일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벌린의 음악수업은 혼자 카페 창고의 낡은 피아노를 친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는 거의 검은 건반만 사용하는 올림 바장조 곡만 연주할 수 있었고, 평생 악보를 읽고 쓸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벌린의 노래를 대필했던 사람들은 "벌린은 노래의 선율선은 물론 화성까지 완벽히 완성해 대필을 맡겼고, 어떤 때는 반주 성부까지 스스로 만들어 편곡의 여지조차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벌린은 '노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20년의 한 인터뷰에서 좋은 노래의 조건으로 ▲평균 정도의 음역에 맞출 것 ▲남자도 여자도 다 부를 수 있을 것 ▲가사가 매끄러울 것 ▲가슴에서 우러나올 것 ▲사상과 말과 음악이 독창적일 것 ▲쉬울 것 등을 꼽았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춘 그의 노래는 청중에게 열광 대신 휴식을 제공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벌린을 천재라고 불렀다. 1988년 카네기홀에서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7)발레 음악]'오페라 일부' 20세기에 독립작품으로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7)발레 음악]'오페라 일부' 20세기에 독립작품으로 지면기사

    차이콥스키 등 러 작곡가 완성 오페라극장 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발레단이다. 오늘날 오페라 공연이 잠시 쉴 무렵엔 발레 공연이 무대를 채운다. 오페라의 한 부분이었던 발레가 독립 작품으로 대접받게 된 데에는 완성도를 높인 발레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19세기에 나온 로맨틱 발레 작품인 '라 실피드', '지젤', '코펠리아', '돈키호테' 등도 음악만을 따로 떼어서 놓고 본다면 이들도 대단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지젤'을 작곡한 아당의 제자로, '코펠리아'를 작곡한 들리브가 차이콥스키의 출현을 예감케 했다는 정도의 평가는 가능하다. '걸작 발레 음악'이라는 표현은 러시아 고전 발레를 완성한 차이콥스키에 이르러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걸작 발레 음악'은 차이콥스키를 뒤따르는 러시아 작곡가들인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의 20세기 작품으로 이어졌다.로맨틱 발레는 19세기 후반 들어 유럽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예외였다. 이러한 상황이 차이콥스키가 발레 음악을 작곡하는 데 영향을 줬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불리는 '호두까기 인형'은 작곡가가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892년 완성됐다. 19세기 초 E.T.A 호프만이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썼으며, 이를 뒤마가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로 각색했다. 안무가 프티파는 발레 대본으로 재각색했으며, 여기에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입힌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 자리잡은 이 작품은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음악으로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수많은 안무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고전적 버전에서부터 팝아트적인 버전, 성인용의 에로틱한 버전, 어린이용의 3D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다양하다. 12일 국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검색하니 13일과 1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질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 외에 이달 전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6)'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무명 악단,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키워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6)'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무명 악단,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키워 지면기사

    최근 복귀 불구 지병으로 '타계'러시아 음악위주 연주관행 탈피세계적인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지난 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택에서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6세.얀손스는 1996년 오슬로에서 지휘 도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뒤에도 지휘봉을 놓지 않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수술 후에도 심장 이상설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여름부터 연주 활동을 줄이고 치료에 전념했으며, 지난달 복귀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과 미국 카네기홀 공연을 소화하기도 했다.얀손스는 1943년 소비에트 연방인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와 유대계 성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보조 지휘자가 되면서 레닌그라드로 이주한 얀손스는 레닌그라드 음악원 지휘과를 수석 졸업했다.1971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한 얀손스는 그해 므라빈스키의 조수로 레닌그라드 필과 인연을 맺었다. 1979년 오슬로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한 얀손스는 무명 악단을 일약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40세의 얀손스와 오슬로 필이 내놓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집 음반(샨도스)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다.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거쳐 2003년 BRSO의 음악감독에 부임한 얀손스는 2004년부터 네덜란드의 명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의 음악감독으로도 2015년까지 재임했다. RCO와 BRSO는 2008년 영국 음악지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1위와 6위를 각각 차지했다.20세기 중반 소련 지휘계의 양대 산맥은 므라빈스키와 콘드라신이었다. 뒤를 스베틀라노프와 로제스트벤스키가 이었다. 그다음 세대가 얀손스와 게르기예프로 꼽힌다.소련 음악계에 만연했던 러시아 음악 위주의 연주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도 얀손스였다. 특히 라트비아인임을 강조한 얀손스는 비러시아적인 매우 세련된 면모를 선보였다. 얀손스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비롯해 하이든에서 버르토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격조 있는 연주를 들려준 위대한 지휘자였다. /김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