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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저마다 눈물겨운 사연, 손글씨로 전한 사랑 지면기사
가족에게 보내는 500여편의 '감동'1등 홍원주… 2등 정낙민·양성자"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아버지…보고 싶습니다."가정의 달을 맞아 경인일보가 진행한 제2회 손편지 공모전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등 평소 하고 싶었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사랑의 마음이 손편지를 통해 절절하게 전해졌다. 가족 간의 사랑과 함께 500여 편에 담긴 나머지 사연들에서도 우리 이웃의 애절한 삶의 한편을 진실하게 보여줬는데 때론 응모자들의 사연 하나하나에 울컥했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심사하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그중 1등에 뽑힌 홍원주씨의 '사랑상' 수상작에는 산업재해로 잃은 둘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첫째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을 둔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애달픈 심정으로 와 닿았다. 손편지에는 "해마다 봄이오면 신록(新綠)은 다시 펼쳐지지만 한번 간 막내는 소식도 없구나. 동생과 그렇게 의좋게 지내던 너도 무척이나 쓸쓸한 줄 알고 있단다. 너도 생산공장에서 일을 하니 한 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단다. 조심 또 조심하길 바란다"고 아버지의 마음을 전했다.이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훔친 2등 '행복상' 수상작들에는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반성하는 내용이 손편지에 가득 담겼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났던 비릿한 냄새가 너무 싫어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근사하게 살고 싶었다"는 수상자 정낙민씨는 "시간이 흘러 가정을 이루고 힘겹게 살다 보니 아버지의 삶이 다른 누구의 삶보다 훌륭하셨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후회와 반성,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공동 수상자인 양성자씨의 손편지에는 "든든한 맏사위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날, 아버지는 얼마나 큰 통곡을 하셨던지요. 큰 사위 보내고 새롭게 시작한 낚시가 아버지 취미 생활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 맑고 좋은 곳 찾아 낚아 올린 붕어가 자식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붕어즙'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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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믿음상 수상자 임인식씨의 편지
세상에서 가장 미안하고 고마운 나의 천사님!안녕! 항상 당신께 미안하고 감사하며 생활하는 부족하고 못난 남편입니다.'우리 성경공부 같이 할까요?' 라는 말에 당신은 쾌히 승낙하여 그것이 계기가 되어 24살의 잚은 나이에 가난한 내게 시집화서 함께 생활한지도 어느덧 30년이 되었네요.그토록 곱고 아름다웠던 당신 얼굴 눈가에 생긴 주름살과 거칠어진 손을 볼때마다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기만 합니다.반지하방에서 전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비가 오면 방벽이나 바닥에 물이 고여 신혼이불은 물에 젖어 다 못쓰게 되고 심지어 가전제품까지 손상되었지만 이 가난한 남편에게 불평한번 하지 않고 함께해준 당신에게 미안하고 감사합니다.물이 고인 방바닥을 보신 장인어른의 말씀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물고기와 같이 사느냐고...?그때 장인어른의 말씀이 크게 귀 기울이지도 않고 당신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못했는데딸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야 장인어른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당신께 많은 죄를 지은 것 같아요. 진심으로 미안합니다.아버지가 몸이 편찮아 20일간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당신은 연년생인 두 아이를 키우며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간호하고 병원음식이 입에 집지 않으신 아버지를 위해 매일 따듯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 당신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이제는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고 아들은 교육행정직공무원으로 딸은 코로나19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간호직공무원으로 성장하였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요이 모든 것은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아가며 오직 가족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당신의 사랑과 땀 흘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맙고 고생 많이 하였습니다.그 동안의 고된 삶으로 고혈압과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당신을 볼 때 너무 애처롭고 마음이 아픕니다. 못난 남편 죄인된 마음으로 당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항상 당신과 함께 보조를 맞추며 걸어가겠습니다.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의 사랑스런 천사입니다. 내가 상심하고 힘들어할때마다 힘을 주고 용기를 심어주며 항상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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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이홍섭씨의 편지
아버지 부디 건강하세요! 아버지~~ 부르기만해도 가슴시린 이름 아버지!전화의 문명에 밀려 편지로 문안드린지 어느덧 4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경일일보를 핑계 삼아 아버지께 편지로 안부 전합니다. 건강하시라 믿습니다."건강은 누가 지켜 주는게 아닌겨 내가 지키는겨"라며 손수 건강관리 철저히 하셨던 아버지! 그러신 아버진 102세까지 정신도 또릿또릿하시고 걸음도 잘 걸으셨었는데 102세를 넘기시면서 기력이 많이 쇠하셨어요.어머니 병간호도 아버지께서 다 하셨는데 기억을 전혀 못하시니 안타깝기만 합니다.'코로나19'로 집에만 계셔서 건강은 더 악화되시는 것 같습니다.세월을 이길자 아무도 없다고 건강만큼은 자신하셨던 아버지도 105년의 세월을 거스를 수 없으셨는지 애기가 되셨습니다. 아버지의 시조한수 옛이야기가 되었네요아버지 기억나세요? 저희가 하던 사업이 어려울 때 "젊어고생은 사서도 하는겨"라며 누런봉투를 건네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아버지! 그땐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진 자식과 여행하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많이 모시고 다녔는데 아버지의 기억을 누가 지우개로 다 지웠을까요?아버지의 기억은 하얀 백지입니다. 기억을 떠올려 드리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는 인형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5일장 모시고 갈게요.아버지! 아버지를 모시기보다 아버지를 의지했던 삶은 어느새 칠십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철없는 딸입니다.묵묵히 저희들을 지켜주신 아버지! 천수를 누리실려면 잘 드시고 기억을 꽉 붙드셔야 합니다. 기력을 잃지 마시고 부디 만수무강하세요!불효여식 둘째 올림건강상 수상자 이홍섭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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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최현정씨의 편지
그리운 아빠에게아빠 안녕! 오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 비가내린 다음날이라서 그런가?빗물에 씻긴 맑은 유리창처럼 하늘도 아주 선명한 푸른빛인거 있지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까 아빠가 더 보고싶어진다. 그때 아빠가 나한테 전화했을때 난 왜 퉁퉁거리기만 했을까?전화선 너머의 공허한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던 나는 정말 바보였어."아빠 , 할말 없으면 전화좀 하지마"내가 생각해도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소리였네.딸 목소리를 듣고 위로받고 싶었을 아빠에게 그때의 나는 참 몹쓸 딸 이었네.혼자서 외롭게 고통을 겪었을 아빠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못해주었던게 너무 후회스럽다.아빠가 떠난 후 일상속에서 나는 가끔 아빠 생각을 할때가 있어.벚꽃나무위에서 꽃잎이 떨어질 때, 전철 안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때, 장미꽃이 억수같은 비를 맞을 때가 그랬어.묵직한 슬픔 비슷한 감정이 내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 같았어.아빠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미안함이었을까?하필이면 아빠가 찬란한 4월 내 생일에 떠난 아빠가,전철로 일산에서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았던 아빠가, 어느날 시골집 앞마당에 장미나무를 심었던 아빠가 사무치도록 보고싶어서 그랬나봐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잿빛 양복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빠가 출근하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었어. 아빠의 어깨가 젖는줄도 모르고 내쪽으로 우산을 기울이며 건물로비까지 데려다 주었잖아. 내가 뒤돌아 보았을 때 아빠는 나에게 멋진 미소를 지어주며 그만들어가라는 손짓을 했었지. 비가 너무 매섭게내려 아빠와 나사이의 공간에 물보라가 가득차는 바람에 아빠의 미소는 점점 흐릿하게 보였어."아빠는 괜찮다. 네 마음을 다 알고 있으니 슬퍼하지말고, 죄책감을 가지고 살 필요도 ㅇ벗어.그저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면 아빠는 그것만으로 기쁠 것 같구나!"비가 쏟아지는 꿈속에서 내게 우산을 받쳐준 아빠의 미소가 의미하는게 이거였구나.아빠,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고, 또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젠 저 푸른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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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김란씨의 편지
희망등대 30년미끄럼타던 햇살이 연초록 늪에 빠져 버린 5월이네요.육십문턱을 넘어가는 지금 30년 홀로걷다아픔과 슬픔을 버무리며 함께 걸었던 30년 이야기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나의 연인에게 편지로 전해봅니다.땀으로 샤워하듯 무더운 7월 어느날새벽까지 완성한 물건 택배 보내려 트럭 함께 타던 새벽피곤함에 쪄들어 연신 고개 숙이는 당신옆에서 잔소리하던 순간우리 두 번째 아기가 많이 힘들었는지 참기 힘든 유산 진통이 시작되고옷을 적시고 트럭시트까지 붉게 물들였고참다 못해 새어나오는 울음소리에도 졸고 있는 당신모습화가 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채워졌던 시간.그 서러움이 지금도 시려서 눈물이 흐릅니다.열심히 살아왔는데 호락사지 않은 사업이 프레임 걸려몇억이라는 빚 남기고 빈털터리로 공장을 쫓겨나던 작아진 당신의 뒷모습북받치는 심장을 토닥거리며 토해내는 한숨은 땅을 밀어냈지요.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학교에서 귀가하며 천원짜리 한 장들고슈퍼에서 구경만 하고 왔다는 거예요. 왜그랬냐고 하니까.천원으로 과자를 사면 내일은 슈퍼에 못오니까 구경만 했다고..그렁해지는 아이 눈을 보며 축축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눈가를 적셔옵니다.비오는날 단칸방에 양동이4개 받치고 쪼그리고 자던 우리가족만신창이로 찢긴 흙빛 인생이었지만남매의 초롱한 눈빛이 희망의 등대로 밝게 빛난 덕분에 14번 이사다닌 끝에 비바람에도 끄떡없고 웃음꽃 가득한 집을 장만하다니 꿈꾸는 것 같아 볼을 꼬집어 봅니다.무거운 짐 얹은 어깨에도 묵묵히 당당히 가장의 길 걸어준 당신 정말 고마워요.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해 준 아들, 딸 미안하고 고마워가족 행복 잡느라 굵어진 손마디 당신손. 우리집에서 제일 큰 아들 손. 여리하고 고운딸 손. 거칠어진 내 손 모두 꼭잡고. 슬픔으로 얼룩졌던 과거 되돌아보지 말고 다가올 시간 감사함으로 채워요.사노라면 장애물 나타나겠지만 더 큰 사랑의 힘 꺼내며 행복바이러스 주인공처럼 희망의 길 함께 걸어가요희망등대 계속 비추면서...2021.5.23건강상 수상자 김란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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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송경미씨의 편지
아빠! 다음엔 우리 아들로!아빠, 요즘 아빠의 세월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어요?여덟, 여섯, 엄마품이 세상의 전부일지 모르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저는 가끔 아빠도 엄마도 잊고 살아요.많은 밤, 아이들로 쌓인 피로에 그저 멍하게 있을때밀린 업무와 엉망인 집안꼴에도 아무것도 하기싫고 머리와 배가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올 때 '아, 나도 엄마가 있었지. 나도 아빠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정말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외롭다가도 그 생각이 들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게 내년이면 마흔인 나에게도 엄마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힘이 된다니 부모의 존재는 언제까지 자식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일까요.아이들은 물만 줘도 자라는 풀처럼 쑥쑥크고,잎새 한번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 같은데 줄기가 돋아나버리는 것이 이러다 내가 오를 수 없는 나무가 되어버릴까 매일이 아쉬운 마음인데 아빠도 나를 키우며 그렇게 아까웠을까를 생각합니다.라면도, 피자도, 과자도 몸에 좋지 않다고 먹지못하게 했던 아빠에게 피자좀 먹고싶다고 투정부렸던날, 시장에서 돌아오는 아빠의 손에 들린 피자를 보고 마냥 신났던 그날.한손으로 자전거를 몰고, 한손으로 피자를 들고 오느라 흔들리고 흐트러졌지만 그날 피자는 정말 맛있었는데 혼자 피자를 주문하고 있었을 아빠를 생각하면 왜이렇게 눈물이 나는지.한달에 한번 집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던 역전에서 허리춤에 묶어놓는 보자기를 풀러 내주던 용돈 봉투도,지역 노래자랑에 구경을 왔는데 가수 송대관이 나왔다며 전화기 너머로 노랫자락을 들려주던 아빠의 들뜬 목소리도, 손을 얼마나 멀리 뻗어 전화기를 들었는지 무슨 말을 해도 아빠에게 전달되지 않던 서울의 어느버스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빠는 모르죠?아빠는 모르겠지만 저는 늘 아빠의 인생에 미안했어요.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내가 아빠의 세상살이 힘이 되었기를.지금 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빠의 딸도 그러했기를.어떤 인연으로 만나 이렇게 목화솜처럼 따뜻한 사랑을 받게 됐는지 몰라도 다음 생에는 내가 아빠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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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김소영씨의 편지
부르는 이름마저 가슴 메이는 나의 엄마에게해다마 5월이면 우리는 서로 말을 아끼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즐거워 하려고 일부러 애를 쓰며 지냈어요.1992년 5월 5일 갑작스런 사로고 아빠를 떠나보내면서 우리 가족의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죠.작은 시골 동네에서 겨우 먹고 살 만큼의 농사일만 하던 엄마는홀로 농사지어서는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택도 없겠다는 판단에겨우 세간살이 몇 개 챙겨 도시로의 이사를 감행했어요. 어디서 그런용기와 판단이 섰는지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참 큰 사람이에요생활고에 시다리고 늘 불안한 가정형편과 일상의 생활들가끔은 평범한 가정의 친구들이 너무나 부럽기만 했어요때가 되면 동사무소에서 생활조사를 나오고, 반지하 전세에 사는 우리집이 초라하게도 느껴지고, 늘 움츠려야 하는 자존감이 바닥난 사춘기를 보내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어요.그런데 엄마!엄마가 아빠를 떠나보내고 어린 두 남매를 홀로 책임져야 했을,세상 무너지는 그 아픔과 고통. 모든 것들이 두려웠을 그 나이서른 여덟 무렵을 나도 지내보니...그제서야 엄마의 삶이 그동안 엄마로만 보이던 그 삶이...여자로써... 얼마나 외롭고 서글프고 고단했을까가 조금은느껴졌어요. 자라면서는 그저 우리 엄마 고생한다라고만생각했는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가 같은 여자로써 너무 안타까웠어요.너무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여자의 삶을 포기하고오롯이 엄마의 삶으로만 살아온 세월 30년...지금 한 가정의 주부로, 엄마로, 또 사회의 직장인으로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나를 만들어 주신 나의 엄마...당신의 긴 세월 묵묵한 희생과 노력에 한없이 감사합니다.다음생엔 내 딸로 태어나서 한없이 넘치는 사랑 받으세요.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훌륭하며, 너무나 존경하는 엄마부디 오랫동안 내 곁에 계시며 엄마에게 받은 그 큰 사랑과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도록 건강하세요.사랑하는 멋진 여자의 삶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세상 누구보다 훌륭하신 엄마.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2021년 5월 20일사랑하는 딸 올림.건강상 수상자 김소영씨의 편지건강상 수상자 김소영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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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공현정씨의 편지
그깟 닭다리가 뭐라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며느리 정아에게 - 어린이집에서 준이를 데리고 와 TV 뽀로로를 켜놓고 저녁을 준비한다.먼저 퇴근해서 집에 온 너의 밥상을 차린다. 맛있게 해놓은 닭도리탕을상에 올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다리 하나 달린 반쪽을 아들 몫으로 남겨놓고 다리하나는 준이를 주고 나머지 뻑뻑한 고기를 너의 밥상에 올렸지,뼈감자탕을 끓일때도 아들이 먹을 수 있는 주말에 해먹이는 걸 보고"어머니 섭섭해요. 나도 일하고 왔는데 어머니는 아들만 위하고~저도 딸 같아면서요" 하면서 울먹이는데 아차~ 싶었단다.그래 맞아! 그깟 닭다리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 편애를 하는구나이제는 다리를 여러개 사서 끓이기도하고 냄비째 식탁위에 올리고 많이먹어라 하면 잘 먹어주는 니 모습이 참 이쁘단다.우리가 시어머니 며느리로 산지도 9년이 되었구나. 서울에서 부산까지4년 연애 끝에 헤어지려했던 순간에, 복뎅이 우리 준이가 배속에 자리잡고있었다고~ 그럴 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내게 결혼해야겠다고 통보하던 날아무 준비도 없었던 난 참 걱정이 많았단다.결혼후에 너는 부산에서 아들은 서울에서 주말 부부로 살았지.준이가 태어나고 100일도 안되어서 내게 안기고 갔을 때, 가슴벅찬 즐거움과 걱정이 태산이었지.아들은 사랑하는 너와 아버지 일직 여의고 홀로 키워온 아픈 엄마를위해 아는 선배와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단다. 하지만 월급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기를 당하고 말았단다.일억이 넘는 빚을 떠안고 쫓기듯 이곳으로 이사오게 되었지.아기 키워야지 내 병원비 들어가지 빚은 점점 더 늘어만 갔지. 사새 빚까지준이를 사이에 두고 이혼하겠다고 싸우는 느네 부부를 보면서 도와 줄 수도없는 나는 누군가 날 벼랑 끝에 세워둔거 같았단다.코로나19로 너는 직장을 잃었고 공장에 다니게 되었지, 어느 날 일하다가 손가락이 기계속으로 들어가 절단 되어 병원으로 갔다는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지~까망게 죽어있는 손톱을 싸매고 일하러가는 너를 보면 너무안쓰러워 짠한 마음에 한참을 서 있곤 했지.얼마전 "어머니 빚 다갚았어요."하는 네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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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정유경씨의 편지
♡ 사랑하는 아빠에게 ♡ 아빠! 잘 지내시지요? 저희는 잘 지내려고 노력중이에요.갑자기 가시게 된 그 곳은 어떠하신지요?춥지는 않은지 덥지는 않은지 외로우시지는 않은지...이렇게 떠나실 줄 알았으면 한번 더 전화드리고, 한번 더 안아드리고, 한번 더 사랑한다 말씀드릴걸... 그 한마디가 뭐가 그리 쑥스러워 아끼고 아꼈는지 후회가 되네요.엄마랑 저희는 걱정하지 마세요.가끔 아빠가 안 계신걸 잊고 아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어르신들을뵈면 목이 메이긴 하지만... 서로 도닥이며 잘 지내려고 노려하고 있어요.죽을 때까지 아빠 얼굴·모습 잊을 수는 없겠지만, 힘내서 지내 볼게요.이번 어버이날에 다같이 아빠가 쉬시는 곳에 다녀왔어요. 바람이 솔솔 불고 햇살이 따사로운게 꼭 아빠의 손길 같아서 마음이 포근해지더라구요. 제가 따드린 길가의 들꽃도 보셨지요? 그곳에 아빠혼자 남겨두고 와서 마음이 편치 않지만, 조만간 또 찾아뵐테니 기다려주셔요.벌써 두달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아직도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유경아~"라고 불러 주실 것 같은데... 집에 찾아갈 대면 반갑게 동네 어귀까지 마중나와 주실 것 같은데...이제는 이 모든게 제 꿈속에서만 가능하네요. 아빠! 꿈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다녀가 주세요. 제가 아빠 좋아하는 음식 잔뜩 해놓고 기다릴게요.제 나이 불혹. 흰머리가 한 개씩 보이는 나이건만 아직도 아빠의 부재는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아직도 저는 아빠가 무등 태워 주시던 다섯 살 어린 아이인가봐요.꿈에라도 좋으니, 예전에 해주신 것처럼 제 등 두들여 주시며 힘내라고 한 말씀만 해주세요. 그럼 저 아빠가 절 보며 웃어주신 것처럼 활짝 웃으며 살게요.아빠!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제 아빠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아빠 덕분에 행복했어요. 평생 잊지 못할거에요.사랑합니다. 영원히. - 2021.5.20 -막내딸 유경 올림건강상 수상자 정유경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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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신용득씨의 편지
미안하고 고맙소. 사랑하는'홍'얼마만에 당신이름을 불러보는지 모르겠소. 50년이 넘은거 같구려.'홍'한테 편지 쓰는것도 연애편지 쓴 후 처음이지 싶소. 쑥스럽지만 경인일보 힘을 빌려 내마음을 전하려 하오.'홍' 첫눈에 반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래한 시간이 얼마이며 완행열차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설레임에 가슴떨린 시간은 또 얼마이며 편지쓰느라 지새운 밤은 또 얼마일까 생각하니 이나이에도 가슴이 뜨겁소.'홍'소영엄마로 통하는 이름인 '홍' 참으로 오랜만에 다정히 불러보오.동고동락의 삶은 어느새 50년이 훌쩍지났구려. 육남매의 맏며느리로 삼남매의 엄마로 고생도 참 많이 했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혹독하게 시집살이 한거 다 안다오.세탁기도 없던 시절에 손이 얼어터지도록 일만해서 고단하기만 했던 신혼이 그리움으로 밀려와 씁쓸하기만 하구려.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도 이 미련한 놈은 눈치를 채지 못해 파킨슨이라는 큰병으로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회한이 밀려온다오.여보! 정말 미안하고 고맙소.당뇨로 고생하는 날 위해 좋은 음식을 챙겨 먹이느라 당신 몸 불편한 것을 참으며 애쓰는 모습이 날 더 아프게 한다오.당신의 병이 퇴행성 뇌질환이라 걱정을 많이 하지만 이몸이 부서질때까지 당신을 간호할테니 아무 염려마시오. '영원한 사랑' 변함없으니 날 믿고 마음편안하게 치료에 전념하구려. 여보! 은모래가 반짝이는 강촌에 살고픈 당신의 그 소원 꼭 들어주리다.나쁜기억은 모두 잊고 좋은 기억만 하고 삽시다.당신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 할 수 있다오.부디 건강지키기 바라며 사랑하오!'홍'을 사랑하는 '용'건강상 수상자 신용득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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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믿음상 수상자 박준씨의 편지
사랑하는 아내 미정에게!20여년전쯤 되나보다. 지금생각해보면 참으로 호기로운(?) 청혼이었다.남들 다한다는 청혼 이벤트는 고사하고, 단신을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에서, 만난지도 5년이 넘었으니 이제 결혼하자는 멋대가리 없는 청혼을 했었다.그런데다가 나하고 결혼하려면 나의 어머니도 모셔야 한다고 했지그런데도 당신은 아무런 불만 없이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다.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평수도 작은 집에서 시어머니하고 정말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다.남들이 말하는 고부갈등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참으로 무심했던거지.그러던 어느날...잠결에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물었고, 당신은 그제서야어머니와의 갈등을 얘기해 주었다.아이 교육문제로, 반찬문제로, 때로는 어머니가 자주 쓴ㄴ 그릇을 치운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았지만. 혹시나 내가 불편할까, 더 큰 다툼이 될까 혼사서만 속앓이를 한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참으로 미안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무던했고 무지했던 내가 한심했다.고부갈등이 없을 리가 없을텐데...살아온 방식이 천양지차인 두 사람이 만나것이니 서로를 이행하고 맞추려면 쉽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사랑하는 미정.일찍 홀로되신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어떻게든 편온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혼자서만 고군분투했던 것을 몰랐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남편은 말 그대로 남의 편인냥,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어머니 잘 모시란 말만 되풀이했으니...당신이 어머니를 모신다고 했던건 나를 사랑해서였지,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건 아니였음을 왜 몰랐을까? 그리고 어떤 관계든 갈등은 있는 것이며, 그 갈등이 반드시 문제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왜 또 몰랐을까?그리고 난 정말로 무지했다 시댁에서 결국 당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줄 사람, 그리고 당신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언젠가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무심히했던 보호자란 서명...당신의 보호자, 아내의 보호자는 남편이라는 것을 '못난 남편들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깨우쳐라' 알려주는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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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믿음상 수상자 이예린양의 편지
To. 사랑하는 엄마엄마~ 나 큰딸랑구 예린이야.사랑해요, 축복해요, 행복해요, 감사해요.나는 엄마가 자기전 이 말을 해줄때가 제일 좋아.언제부터 시작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계속 할거야.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처럼.여름에는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가을에는 잎이 떨어져가는 나무들 속에서 푸르른 잎을 키워내는 소나무처럼겨울에는 속이 꽉찬 따뜻한 호빵처럼.하루의 끝을 행복하게 마무리 해주니까.그래서 나는 더 자주 해줄래.내 마음을 모두 담아서.2021.5.23from. 큰딸랑구 예린믿음상 수상자 이예린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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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믿음상 수상자 엄다현씨의 편지
21년만에 '그녀'에게 보내는 반성문음...어떻게 운을 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항상 제 곁에 계시며, 저의 편이 되어주시는 '그녀'. 제게 고맙기만 한 존재남은 평생을 그녀를 위해 살아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부족하다고만 느껴집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이 자리를 빌려 마음을 전합니다.어렸을 적에는 항상 친구를 대상으로 편지를 써왔는데, 이렇게 '당신'만을 위해 편지를 쓰려니 어색하면서 동시에 복이 매어옵니다.어렸을 적, 학교에서 수학여행만 가면 당신께서 짐을 싸 주셨던게 기억납니다. 항상 비밀리에 두장가량의 편지를 써서 수건 사이에 돌돌 말아 숨겨놓으셨지요. 고작 이틀 못보는건데 당신께서는 왜 그리도 아쉬워하는지, 왜 항상 출발전에 나를 꼭 껴안으셨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숨겨놓은 편지를 찾고, 그 편지를 친구들과 함께 큰소리로 읽으면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는지 모르지만 당신께는 편지 같은거 부끄럽고 애 같으니까 쓰지 말라 투정부렸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되는 행동이 많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예쁘게 머리를 땋아 달라 했지만, 완성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에 당신께 울며불며 소리를 지른적도 있지요. 아침 6시부터 졸고 있는 나의 머리로 연습을 해보시고, 수차례 끊어지는 고무줄에 다가워하시면서도 머리를 완성시켰다는 사실은 제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땡볕에 모자를 쓰고 가라고 슬리퍼 신고 뛰어오시던 당신이 부끄러웠던 것 밖에 모릅니다. 세 개의 새싹을 피운 후, 20년 넘도록 당신 인생이라곤 없는 듯 살았던 그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요즘 세상과는 다르게 힘들게 살아온 당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행복'이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고 살아왔을법한 이야기 같습니다. 내가 당연시 여기는 '가족'이라는 존재, 친구라는 존재, 행복, 그것들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당신의 이름 석자마저 빼앗았으니...시간을 돌이켜 당신의 삶을 보상해주고 싶습니다. 어느덧 제가 20대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20내는 너무 어리고, 그 청춘은 너무나 짧다는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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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정혜원양의 그림편지
건강상 수상자 정혜원양의 그림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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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믿음상 수상자 이명자씨의 편지
사랑하는 막내딸에게. 몇 자 적어본다.요즘 봄 날씨에 비도 많이 오고, 때이른 날씨로 한 낮에는 이마에 땀방울 송글송글맺히고 더운데, 직장생활 하느라 무척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것 알고 있다. 하지만주어진 일과 책임감에 최선을 다하여 후회없는 삶이 영위되어야겠지. 더욱이 요즘같이 코로나가 사그러들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데 날짜 시간 맞춰 백신 접종 잊지 말고 하도록 하렴.온국민을 꼼짝 못하게 발을 묶어놓고 엄마가 하는 자영업도 무지 힘들고 어렵지만 슬기롭게 잘 견뎌나가고 있는 중이란다.가까운 거리 같은 하늘 아래 인천에 살고 있는 막내딸이지만 서로 바쁜 관계로 얼굴도 잘 못보고, 코로나로 인해 서로 만나 밥도 같이 못먹고 안타까운 현실이구나. 잘 이겨내어 7월 아빠 칠순에는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으련만, 곧 이렇게 되겠지. 우리 식구 모두 희망을 가져보자.네가 결혼한 것이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 2019년 12월 8일, 하와이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것이 너에게는 일생에 가장 큰 행운인 것 같다. 많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성대히 결혼식을 마쳤으니 말야. 늦깍이 36세 신부가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하여, 만날 걱정거리인 숙제를 풀어 두 다리 쭉 펴고 편안히 잠을 잘 본 것도 그때인 것 같구나.엄마는 네가 막 돌 지나서부터 시작한 장사를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넌 언니와 둘이 엄망의 따뜻한 정도 못 트끼고 자라 항시 마음이 아팠지. 언니한테 혼나고, 싸우고 울 때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벗어놓은 옷을 끌어안고 엄마 냄새 맡으며 엉엉 울고, 밤 10시 넘어 돌아왔을 때, 울다 지쳐 4살 위 언니를 암마 삼아 서로 곡 끌어안고 잠든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져 피 눈물 흘리며 운물을 삭이고, 그렇게 애처로운 마음 가슴에 못이 박혀, 지금 그 나이 38세에도 애정결핍으로 손톱 물어뜯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하단다. 그럴때마다 네 얼굴을 볼 수가 없고 죄책감이 드다.그래도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 예쁘고 착하게 커서 좋은 신랑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더 이상 소원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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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행복상 수상자 정낙민씨의 편지 지면기사
아버지께 아버지. 민이에요. 요즘 들어 자주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른답니다. 아버지에게서는 늘 비릿한 냄새가 났어요. 저는 그 비릿한 냄새가 역겨워 곱창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아버지 곁에도 자주 가지 않았어요. 매일 아침 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곱창을 손질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치 웅크린 사자 같았어요. 고무장갑을 끼면 답답하다며 추운 겨울에도 맨손으로 곱창을 손질하느라 아버지의 두 손은 빨갛게 불어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아버지가 마치 나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지냈어요. 대신 두 살 터울인 혁이가 제 몫을 했죠. 툭하면 식당에 나와 잔심부름을 하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무엇보다 곱창을 잘 먹었어요. 아버지가 만든 곱창이 제일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혁이를 보며 저는 혁이가 틀림없이 아버지 식당을 물려받을 것이라 생각했어요.그리고 저는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근사하게 살 것이라는 치기 어린 결심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은 저에게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혁이는 식당일과는 무관한 생활로 자리 잡고 살아가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꾸려가는 생활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다른 무엇보다 전문적인 배움이 없었던 터라 회사에 들어가도 몇 년을 버티지 못했어요. 그렇게 여러 회사를 전전하면서 저는 자신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고 결국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았죠. "워쩌겄냐? 자리 잡을 때까지 내 일 좀 도와라. 나도 이제 일이 힘에 부쳐 힘들었는데 잘 되었어야. 내일부터 곱창 손질은 니가 혀라." 그 날부터 저는 아버지 식당에서 아버지가 손질하던 곱창을 아버지처럼 쭈그리고 앉아 손질해야 했어요. 그리고 어거지로 곱창도 먹게 되었고 손님도 맞이했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예전에는 죽기보다 싫었던 이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처럼."그래 민아 잘했다. 아버지 잘 모셔라. 아버지가 하던 일을 대를 물려 하는 것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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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사랑상 수상자 홍원주씨의 편지 지면기사
외아들이 된 장남에게! 형제 중 장남에서 이제 장남 겸 외아들이 된 내 아들아! 그간도 잘 지냈느냐? 지금 우리 집은 온통 꽃 대궐이란다. 산수유 꽃이 피더니 할미꽃이 피고 진달래꽃이 피었다. 향기의 여왕 작약꽃이 반발하고 아카시아꽃이 벌들을 불러모으고 있구나.그렇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단다. 그 이유는 7년 전 네 동생이 산재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처럼 큰 사고로 근로자 5명이 동시에 숨졌지만 그 후로도 김용균 사고로 김용균법이 생기고 산업안전법이 생겨도 계속해서 산업재해 사고 뉴스가 그치지 않는구나.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가슴을 쓸어안고 슬픔에 잠기는구나! 자고로 부모가 죽으면 천붕이요, 자식을 먼저 보내면 참척이라고 했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못해 살고 있단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자식을 잃고 열하일기를 쓰며 상처를 달랬다. 작가 박완서 선생도 참척을 당하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쓰며 아픔을 달랬단다. 어디 자식을 잃은 슬픔이 유명인사만 겪는 것은 아니란다.특히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아비가 무능하여 대학공부도 시키지 못하고 전세방 하나도 얻어주지 못한 자괴감이다. 몇 달만 있으면 정규직이 되고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길 수 있다던 막내였다.사랑하는 아들아! 나도 무척이나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단다. 투기하지 않고 도박판에 가지 않고 오직 가족을 위하여 일했단다. 그렇지만 유산 한 푼 물려받은 것 없이 도시에서 다섯 식구가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구나. 지하셋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세월이 십 년이 걸리었다. 무려 31차례 이사를 전전하다가 환갑이 지나서 비로소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었단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살만하니 네 동생이 우리 곁을 떠났구나. 충격이 너무나 커서 식음을 끊기도 했다. 편한 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는 24시간 막내를 그리며 살아왔단다. 해마다 봄이 오면 신록은 다시 피지만 한 번 간 막내는 소식도 없구나. 동생과 그렇게 의좋게 지내던 너도 무척이나 쓸쓸한 줄 안단다. 먼 인천에서 이곳 양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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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행복상 수상자 양성자씨의 편지 지면기사
사랑하는 아버지께 아버지 보내주신 붕어즙 잘 받았습니다. 속만 썩이는 사위 뭐 그리 예쁘다고 때마다 보양식이랑 몸에 좋다는 약들을 보내주시는지요. 영특한 둘째 딸이라고 자랑하며 귀해 하시던 아버지의 바람만큼 잘 살아주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아버지는 무엇이든 아낌없이 다 보내주시는데 저는 제 형편 고려한답시고 손꼽을 만큼 용돈 조금 보내며 생색만 내기에 바빴습니다. 좀 섭섭하더라도 아버지는 저를 이해할 거라고 저 편한 대로만 생각했습니다.큰 애 초등학교 입학 때 보내 주셨던 축의금과 함께 필통 속에 잘 깎여진 연필들을 선물 받고 얼마나 울었던지요.일찍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4남매 가장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무릎이 까이고 손바닥이 물러질 때까지 미싱을 돌리며 가방을 만드셨던 아버지. 개성 강한 5남매를 다독이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손수 연필을 깎아주시며 아버지가 못다 한 공부의 한을 풀어주길 바라셨지요.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자식들이 각자 짝을 찾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아버지 얼굴에 웃음꽃이 핀 것도 잠시, 든든한 맏사위가 암으로 세상 떠나던 날. 아버지는 얼마나 큰 통곡을 하셨던지요. 설상가상으로 저마저 남편과 불화로 친정으로 갔던 날, 시간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남자들은 다 그렇다며 용서해주라 하셨지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제가 화내며 참으로 부끄러운 투정을 했던 저는 아무래도 당신 딸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해야겠습니다.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큰 사위 보내고 새롭게 시작한 낚시, 아버지 취미생활인 줄 알았습니다. 물 맑고 좋은 곳 찾아 붕어를 낚아 올리는 것이 붕어즙 때문이라는 것을, 큰 사위 부재가 충격으로 남아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들의 건강을 챙기는 깊은 뜻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그 큰 사랑은 평생 제가 갚지 못할 마음의 빚입니다. 이제는 저희가 아버지를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끝까지 못난 불효자라 죄송합니다.그동안 넉넉히 드리지 못했던 용돈을 보냅니다. 하찮은 돈 몇 푼으로 아버지 은혜 다 갚을 수 없지만 불효한 저희를 용서하시고 못난 둘째 사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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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정재균씨의 편지
보금자리 지킴이 아내에게창문 밖 동산에 신록이 짙어지고 아카시아 꽃내음 풍겨오는데점심식사후 차한잔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 혼자 집에있는 당신을 생각하며 추억을 돌이켜 봅니다.하늘의 인연으로 결혼하여 서울이라지만 낯선곳에서 시작한 우리의 신혼, 구월동 길병원 개원하며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34년되었으니 제2의 고향이 되었네요.유방맘 투병 후 잔병치레하면서도 아이들 뒷바라지와 살림하느라 바빳는데 요즘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진통제에 취해 사는 당신이 안쓰럽기만 합니다.지방 근무로 주말부부가 되어 지내는 중에 당신의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 과정이 있었는데 곁에서 병구완 하지못했으니 지금도 죄인되어 미안한 마음이에요.이런 우환을 겪으면서도 딸을 혼인시키고 아들은 첫 직장에 취업했으니 자식 농사 잘 지은 당신의 공로가 큽니다.어려운 생활 가운데 알뜰히 내조하며 누굴 탓하지 않고 자족하는 삶에 우리가정도 풍족해지는 축복을 받았지요.선친을 병으로 일찍 여윈 막내가 정형외과의 한 분야를 담당하여 환자를 부모, 형제같이 돌본다는 사명감으로 한 우물 파 온 지난날이 후회스럽지 않습니다. 정년퇴임 후 전공을 살려 다시 일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보람찬 일인지요.가족의 소중함과 화목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에게 고난은 더 큰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보,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노후에는 여우 나는 산골 얘기하며 여왕보다 더 행복한 찬가를 부르도록 당신의 백년지기가 되어 줄게요.매일 전화로 문안하지만 이제 손편지를 자주 하여 펜팔로 만난 우리의 소통을 이어가도록 합시다.코로나 19로 면역력이 약해 집에 갇혀사는 당신,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장미공원이라도 산책하기로 해요.누구보다 아내와 엄마 역할을 잘해온 멋있는 당신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맙지만 다시한번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주말을 기다립니다.2021년 5월 강화에서 당신의 영원한 바라기 정채균 씀건강상 수상자 정채균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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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인일보 '손편지 공모전'] 건강상 수상자 이지은씨의 편지
사랑하는 용석씨,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우리가족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세상의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똑같은 하루를 보냈어요.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무엇부터 써 내려가야하나 생각하며 우리의 지난 십년을 돌아보아요. 폭풍우가 휩쓸고 나간 것처럼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네요. 아이들을 키우며 참 어려운 일들도 있었고 하나하나를 결정할 때 마다 우리의 부모님 마저 생각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지금은 이런 평범한일 모두가 참으로 감사한 나날들이에요.우리둘째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는 모래성처럼 무너졌을 거예요. 몸이 불편할 뿐 우리 아이들이 우리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살자고 손잡고 얘기해주었던 그말이 나를 다시 잡고 슬픔을 이겨낼수 있게 힘이 되주었었죠. 그때 꼬옥 잡아주었던 그 따뜻함을 잊지않고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십년 후, 이십년후를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린 싸울일이 없었는데 아이들을 낳고 많이 다투기도 했었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럴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그땐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화를 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날 이해해줄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고 한말, 콧방귀 뀌며 웃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살짝 커밍아웃 해봅니다. 이제 밖에서 시끌버쩍한 소리들이 들리는걸 보니 아이들이 귀가 하나봐요. 우리 하하호호 웃던 일들을 기억하며 오래 함께해요.지난 잠못 이루는 날들 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움을 전하며 사랑하는 아내지은이가건강상 수상자 이지은씨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