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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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11)]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 펼치고, 어른들은 걱정과 근심 날리고 지면기사
KT&G 상상마당 춘천 (옛 춘천시어린이회관) 의암호 수변에 '종이비행기' 닮은 멋스러운 건축물야트막한 동산 등진 '배산임수' 아름다운 풍광 자랑'한국의 로렌초' 김수근 설계… 붉은 벽돌의 대향연리모델링 전 '강원도 어린이회관'… 동심세계 초대춘천시의 서쪽을 둘러싼 의암호. 그 수변을 거닐다 보면 '종이비행기'를 닮은 멋스러운 건축물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자태가 '나비모양'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두 세번 고쳐봐도 나비보다는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종이비행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KT&G 상상마당 춘천(이하 상상마당 춘천)'이다. 옛 이름은 춘천시어린이회관, 그 전에는 강원도어린이회관으로 불리던 장소다. 지금은 공연장과 스튜디오, 연습실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 가운데 한 곳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지만 1980년 개관 당시에는 거의 유일한 문화공간 역할을 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탁월한 입지야트막한 동산(삼천동생태공원)을 등지고 의암호를 앞마당처럼 거느린 대지 위에 건물을 쌓아 올렸으니, '상상마당 춘천'은 지세(地勢)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도 감탄사를 절로 뱉을 정도의 입지다. 더군다나 의암호를 퍼내거나 메우지 않는 이상 근처에 딱히 건물이 들어설 공간이 없고, 의암호 바로 다음 순서가 산이고 그다음도 산이기에 스카이라인이 44년 전, 건물이 들어설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니 아름다운 풍광이 변함없이 흐르고 또, 펼쳐짐은 물론이다. 춘천시 도심에서 살짝 외진 곳에 있어 접근성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곳에 처음 닿았을 때의 느낌은 그러한 작은 번거로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상상마당 춘천에 다다르는 길은 두가지 있다. 강원국악예술회관 쪽에서 완만한 경사의 언덕 끝을 목적지로 정하고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춘천 MBC를 지나 숲길을 건너 야외공연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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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10)] 제주목 관아·관덕정… 제주도민 혼(魂) 담긴 불멸의 유산 지면기사
조선시대 통치 중심지 '제주목 관아' 세종 16년 전소 일제강점기 집중 훼철되며 관덕정 빼고 모두 사라져탐라국 시대부터 건물 형성… 1999년 복원사업 돌입도민들 기와 5만여장 헌와… 귤림당·망경루 등 복구도내 最古 목조건축물 '관덕정' 보물 제322호로 지정제주읍성은 조선시대 제주의 중심지였다. 성곽 길이는 3㎞에 이르렀고, 바다 방향을 제외하고 동문, 남문, 서문 등 3개의 문이 있었다. 제주목 관아와 관덕정은 제주읍성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관덕정은 개방적이면서 목사와 판관의 집무 영역 중간지점인 읍성의 중심부에 건립됐다. 내륙지방 정자(亭子)와 누(樓)에서 사례를 볼 수 없는 목사가 행정을 집행하는 관아의 성격을 지닌 건물이었다.제주목 관아와 관덕정이 자리한 곳은 '선덕대(宣德臺)'라는 사대(射臺, 활을 쏠 때 서는 자리)가 있던 장소로 이전부터 광장의 기능을 갖는 곳이었다. 이러한 성격은 조선시대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 광장으로 기능이 확대됐다.■ 조선시대 제주 정치·행정·문화의 중심, 제주목 관아제주목(濟州牧)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다.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星主廳)' 등 주요 관아시설이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목 관아는 세종 16년인 1434년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진 후 바로 역사를 시작해 다음 해인 1435년 골격이 이뤄졌다. 사실상 조선시대 내내 중·개축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훼철(毁撤)되면서 관덕정을 빼고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제주읍성 해체, 그러나 광장은 남아제주읍성이 해체되고 내부 공간 구조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일제강점기 신작로의 개설과 1926년 제주읍성 인근 산지항 축항공사로 해석되고 있다. 산지항 축항을 목적으로 북수구에서부터 서문과 남문 중간지점까지의 성곽을 해체하고 성돌을 공사에 사용하게 된다.일제강점기 객사와 객사 남쪽 목사의 영역인 상아(上衙) 영역에는 학교와 경찰서 등의 관공서가 설치됐고, 남쪽 판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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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9)] 굴곡진 한 세기, 미래 세대에 부친 인천 우체국 역사 지면기사
지역 자체가 박물관인 개항장서 꼽히는 랜드마크 '市 유형문화재 8호' 1924년 개청후 올해 100주년일제시대·한국전쟁 등 지켜본 건물, 상징성 높아조적조임에도 석조 건축 '서양식 역사주의' 따라'ㄷ'자 형태에도 동북측 모서리에 정문 설치 독특95년간 우체국으로 쓰이다 작년 정부로부터 매입市, 행정 절차·리모델링 거쳐 2027년 박물관 계획인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 일대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지은 근대 건축물이 밀집해 있으면서 잘 보존돼 있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지역이다. 제물포구락부, 옛 인천부청사(현 중구청), 만국공원(자유공원), 옛 일본 제1은행 지점(인천개항박물관), 옛 일본 제18은행 지점(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옛 일본 제58은행 지점(요식업중앙회 중구지부),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 옛 대화조 사무소(카페 팟알), 인천세관 옛 창고와 부속동, 답동성당 등 근대 건축물만으로도 시가지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즐비하다.지역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인 인천 개항장에서 랜드마크를 꼽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단연 '인천우체국'(인천시 유형문화재 제8호)이다. 인천우체국은 1922년 12월1일 착공해 이듬해 12월10일 준공했다. 1924년 2월9일 공식 개청 행사(낙성식)를 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다. 이 건물은 인천중동우체국이 2019년 5월24일 오후 6시 업무를 종료하고 인하대병원 옆 정석빌딩 임시청사로 이전할 때까지 95년 동안 우체국으로 쓰였다. 문화재로 관리되는 우체국 건물은 인천우체국, 진해우체국(1912년), 곡성 삼기우체국(1948) 등 3곳이 남아있는데, 이 가운데 인천우체국이 가장 규모가 크다.'팔도건축기행' 인천우체국 편은 인천문화재단이 지난해 말 펴낸 '인천우체국 기록화 조사보고서'를 주로 참고했다.■ 우체국 역사 첫 페이지 쓴 인천인천은 우리나라 우체국 역사의 첫 페이지부터 등장한다. 조선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 부산항을 열었지만, 외국에 문호를 연 실질적 개항은 1882년 미국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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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8)] 초록 숲길 상상, 파란 하늘 공상, 하얀 구름 몽상, 어둠 속에서 명상… 대구 사유원 지면기사
30여년 세월 땅과 나무 아우르고 고전 뜻을 현대 삶에 새기려 2021년 9월 탄생 한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프리츠커상 알바로 시자 건축 등 이뤄진 수목공간원소요헌·소대·내심낙원·현암 등 숨가쁜 도시의 삶서 찾아갈 수 있는 마음 쉼터숨 가쁜 도시의 삶에서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쉼터, 품위와 격조를 갖춘 오롯한 공간과 장소를 생각하게 된다. 수목 원림 물 바위 언덕 바람 계절의 자연 속에서,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사유적 이름의 건축과 공간들을 사색하게 된다.30여년의 세월을 땅과 나무를 아우르고 공간을 설계하여 고전의 뜻을 현대 삶에 새기고자 하는 사유의 정원, 사유원(思維園)은 2021년 9월 세상에 펼쳐졌다. 지난해에 팔공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신공항 예정지 군위군은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팔공산 아래 터널길을 지나서 청평 못 기슭 사유원은 도시에서도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사유원은 자연 수목원이 아니라, 건축 공간이 있는 수목공간원(樹木空間園)이다. 2018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 건축(3 작품, 카를로스 카스타네 공동), 한국의 대표 건축가 승효상 건축(9 작품), 최욱 박창렬의 건축과 지금 국립미술관에서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전영선의 조경, 고기영의 조명, 중국 서예가 웨이량의 작품들이 새겨져 있다. 알바로 시자와 승효상의 건축 공간을 따라서 사유해 본다.■ 비움에서부터-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지킨다'. 도덕경 제16장 구절을 일깨우는 치허문(致虛門)은 입구의 정문 건축이다. 여기서부터 머릿속을 텅 비우라고 이른다. 이곳은 팔공산 북쪽 3 능선 2 계곡 지형의 99만1천735㎡ 산지이다. 18곳의 건축과 장소, 11개 산책로, 의미와 뜻을 사유하면서 능선과 계곡을 걷게 된다. 4시간여 사유의 순례길을 내려서 치허문을 나서면 새로운 채움이 도시로 향하게 할 것이다.■ 소요헌 (逍遼軒)- 입구에서 '꼬부랑길'을 오르면 알바로 시자의 소대(전망대)가 우뚝 서 있고 소요헌(아트홀)이 길게 누워있다. 그의 3개 작품은 대학 캠퍼스를 제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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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7)] 경남문화예술회관… 여유 넘치는 남강, 살며시 진주를 밝히다 지면기사
故김중업 건축학적 아름다움 빚어… 1988년 위용도시 랜드마크이자 예술 향유하는 대표 문화시설전통 건축 기둥·공포·지붕… 현대적 외관 재구성네가닥 반원형 열주 상부, 옛 관아건물 형식 도입뮤지컬·발레·오페라·연극 등 연간 100여건 공연경남문화예술회관은 대한민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 고(故)김중업 건축가의 건축학적 아름다움이 빚어낸 공간이다.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건축적 랜드마크는 물론, 도민이 예술을 즐기고 누리는 기능적 랜드마크로서 경남 대표 문화예술기관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이곳을 찾았다.진주 도심을 흐르는 남강변을 쭉 따라가다 보면, 경남문화예술회관이 한눈에 보인다. 진주를 밝히는 건축물답게 멀리서 봐도 그 웅장함과 기개는 예사롭지 않다.밖에서 보면 하나의 웅장한 건물로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부를 둘러보면 다양한 건축적 요소를 지닌 흥미로운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 건축의 결합=경남문화예술회관은 김중업 선생이 1981년 공모에 당선돼 1984년 설계를 완성하고 1988년 준공됐다. 현상설계 공모 당시에는 건물이 들어설 부지가 진주성 내에 잡혀 있었다. 김중업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천년의 도시인 진주의 역사성과 진주성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설계 의도를 살펴보면 그 마음이 전해진다."임진왜란 때 끝까지 민족수호의 아성이었고 논개의 의기와 더불어 유서 깊은 진주성이 남강의 우아한 자태를 빚어 대지조건이 특이하고 매년 개천제가 열리는 오랜 전통이 더욱 보람있는 일이라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기에 전통과 오늘의 만남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야 하고 모이는 이들에게 뿌듯함을 던져 주려고 애썼다."스스로 가장 아끼는 도시 중 하나로 꼽았던 진주에 세워지는 건물인 만큼 김중업은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본래의 질서를 보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고심했다. 현상설계 당선 이후 막상 건물을 지으려고 하자 고(故)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국립진주박물관이 이미 진주성 한편에 위치해 있고, 진주성의 공원화 사업, 문화재 보호 등으로 건물을 지을 만한 땅이 없어 최종적으로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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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6)] 고귀한 신앙 차곡히 쌓인 美의 완성체 '전주 전동성당' 지면기사
1791년 믿음을 당당히 드러낸 윤지충·권상연… 한국 천주교 첫 순교터 아픈 역사 전주본당 초대 주임신부 보두네, 기금모아 그 터에 성당 지어… 1931년 건물 완성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 아름답고 웅장… 붉은 벽돌로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지난 한해 1천5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최근 총선을 앞두고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찾으면서 전국적으로 더욱 유명해진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은지 오래다.전주에는 이보다 먼저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불리던 전동성당이 있다. 전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첫 순교터라는 아픔도 간직하고 있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에 비잔틴 양식이 녹아 한국의 종교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힌다.■ 130여 년 역사 간직전동성당이 건립되기 이전인 1891년부터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전주본당)으로 삼아 미사를 시작했다. 보두네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84년 사제서품을 받고 프랑스를 떠나 1885년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충청도와 경상도 지방에서 한국의 풍습과 언어를 익힌 뒤, 1889년 봄 전주본당(현재 전동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한다.그러나 당시 전주는 개항지가 아니었고, 전주감영이 위치하고 있어 보두네 신부는 전주에 곧바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전주 근교인 대성리에 머물면서 전교 사업을 시작했다. 보두네 신부는 교우들의 성당 신축기금과 자신이 절약해 모은 돈으로, 한국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의 순교 정신을 기려, 그들이 순교했던 순교터를 매입해 본당의 터전을 마련했다. 전주에 신작로가 생기며 풍남문 성벽을 헐자, 전주부의 허가를 얻어 이 성벽의 돌과 흙을 사용해 그 돌로는 성당의 주춧돌을, 그 흙으로는 인부 100여 명이 직접 벽돌을 구워서 건물을 올렸다.본당이 처음 생겼을 때에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는 거의 없었고, 주로 산골인 대승리, 고산 되재, 천호동, 배재 등지에 신자가 밀집해 있었다. 그러나 1894년 동학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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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5)]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온(ON)종일 '빛' 지면기사
2005년 우규승 건축가 '빛의 숲' 설계 공모 당선 지하 4층 25m '지하공간' 건물 배치로 기억 보존5·18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기념 위해 조성낮에는 자연조광, 밤에는 인공조명이 공원 밝혀"탐험하고, 찾아가는 건축입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하 문화전당)을 소개하며 유현준 건축가가 한 말이다. 그는 "문화전당은 개미굴처럼 계속해서 방이 연결되는, 무궁무진한 관계를 갖는 좋은 설계"라고 말했다. 정형화되지 않았기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자 건물이 주인이 아닌, 사람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벤트가 주인이 되는 공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공공건축의 의미가 '쓰임'에 있다고 한다면, 그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건물이라고도 했다. 유현준 건축가는 70만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영상 '공공건축은 잘 만들 수 없을까'에서 한국의 가볼 만한 공공건축으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원주의 뮤지엄 산과 문화전당을 꼽았다. 아시아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과 생활문화를 만나는 복합문화공간인 문화전당은 지난 2015년 개관 후 세월의 흔적이 쌓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곳곳에 조성한 정원은 푸르름을 더해가며 휴식처를 제공하고 아시아문화광장은 워터슬라이드장과 자동차극장으로도 변신, 무한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문화전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갖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전당이 생산한 다양한 콘텐츠 역시 인기 상한가를 기록중이다. 지난해에만 연간 250만명이 문화전당을 찾았다.■ 기억, 빛, 숲, 광장지난 2015년 개관한 문화전당은 연면적 156.673㎡, 지상 4층, 지하 4층 규모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예술의 전당을 넘어서는 매머드 공간이다.1980년 5·18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부지에 건립된 문화전당은 '장소적 의미'가 큰 건물이다. 문화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역사를 품은 장소였기에 그 '기억'을 보존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2005년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작으로 선정된 우규승 건축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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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도청 결과… 2026년 미술관 변신 첩보입수 지면기사
[팔도건축기행·(4)] 대전 '옛 충남도청사'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묵묵히 자리 지킨 건물1930년대 모더니즘 양식, 2012년까지 도청사 사용2층과 연결되는 중앙계단, 가장 화려한 장식 눈길올해 착공 들어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 '재탄생'작품전시·교육기능… 스마트 개방형 수장고 운영옛 충남도청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건축물로, 대전역 광장과 마주 보는 도로, 중앙로 끝에 자리하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8호인 충남도청사는 1932년 8월 완공돼 2012년 12월까지 80년간 도청사로 사용됐다.설계는 조선총독 건축과의 이와스키 센지와 사사 게이이치가 맡았다. 1931년 6월 15일 착공해 이듬해 8월 29일 완공됐으며, 시공은 대전의 건축청부업자였던 스즈키 겐지로였다. 부지 6천평은 모두 공주의 갑부로 유명한 김갑순이 기부했고, 총공사비는 17만65원으로 현재로 치면 70억~80억 원가량 소요됐다.■ 1930년대 모더니즘 양식 옛 충남도청사옛 충남도청사는 1930년대 모더니즘 양식으로 구성됐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도청사엔 경사 지붕이 많았으며, 중앙에 탑을 세우거나 벽체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창과 벽체의 수직성을 강조하는 등 웅장함을 갖춘 외관이 주를 이뤘다.그러나 1930년대부터 국제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평지붕이 많아지고 장식도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단순한 외관으로 변모하게 된다.충남도청사는 1930년대 도청사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입면상 수평이 강조되는 평지붕이면서도 도지사실이 위치한 2층 중앙부를 높게 해 관청 특유의 권위감을 부여했다. 벽체도 세부적인 장식들을 없애고 단순하게 처리했다. 1층과 2층 사이 창대(窓臺)와 그 아랫면을 돌출시켜 장식 문양을 박아 넣어 20년대 장식적 요소를 이어가기도 했다.특히 옛 충남도청사 후면으론 특징적인 중앙 계단실 입면을 볼 수 있다. 계단 중간 부분(계단참)의 입면은 정면 도지사실 입면에 버금갈 정도로 공을 들였다. 수직으로 긴 3개의 창을 정면처럼 나란히 배치했고, 벽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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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3)] 바라본 풍경을 캔버스 삼아… 뛰놀던 자연은 팔레트 삼아 지면기사
양구 '박수근미술관' 파란색 하늘과 맞닿아… 자체로도 훌륭한 미술 작품벽면은 화백 특유의 '화강암 질감' 옮겨 놓아 인상적아래로 작은 냇가 품은 풍경 '빨래터' 세트장 떠올라아이들을 위해 그린 동화책·수집한 엽서·서신 전시'시간美·아방가르드' 정의한 메모, 노력한 흔적 발견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은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 화백. 그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현재는 양구읍) 정림리다.박수근 화백은 위로 누나 둘이 있는 집 안에서 귀한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 두살 되던 해, 양구보통초교를 다니던 어린 박수근은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L'Angelus)'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그만 넋을 잃고 만다. 그는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겠다"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몰랐던 그에게 고향 양구는 그대로 화지였고, 그대로 팔레트였고, 그대로 작품의 소재였다.■ 대지 위에서 박수근의 마띠에르를 만나다그런 박 화백의 고향, 그가 태어난 생가터에 올려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박수근 기념전시관)은 주변에 어떠한 간섭도 없이 파란색 하늘과 맞닿아 있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어느 건축가의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 나간다"는 말을 고스란히 실천한 그런 곳이라고 할까.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면 이내 조우하게 되는 미술관의 벽. 화강석을 깨고, 괴어 높게 쌓아올린 그 벽은 박수근 화백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특유의 화강암 질감을 입체적으로 옮겨 놓아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설계 특성상 이 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술관 벽면의 곡선을 따라 반 바퀴 정도, 안 쪽으로 또 안 쪽으로 흐르게 된다. 마치 어느 돌담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 그 길의 끝자락에는 비교적 너른 풀밭이 보이고 곁에 박수근의 조각상(박수근화백상)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물끄러미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1959년 서울 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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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2)] '그리운 낭만' 막이 오르고… 제주극장 '빈티지 감성' 절찬 상영중 지면기사
1965년 세워진 1200석 규모 '동양극장' 시대 풍미하다 이제 건물만 자리 지켜1세대 현대 건축가 故김한섭 교수 설계바다와 산지포구 모티브… 랜드마크로1963년 개관 운치 있는 '서귀포관광극장'방치되던 건물, 2013년 이색공간 탈바꿈매주 토요일 클래식·대중음악 무대 올려미디어 파사드로 이중섭 삶·작품 소개도어떤 장소 또는 건축물이 한 사람의 추억이 되려면, 그곳에서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장소도 건축물도 세월을 입어간다. 그 세월을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뉠 만큼 1960년대부터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영화를 상영하며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을 선물했던 건축물은 이제 그 역할이나 장소의 의미가 잊히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제주의 문화예술 공간을 들여다보며 현재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의미를 찾아본다.■ 1965년 완공 제주 최대규모 영화관 '동양극장''동양극장'은 1965년 세워진 제주 최대 규모의 영화관이다. 제주 동문시장과 함께 나란히 들어선 제주 최초의 복합문화건물이었다. 건물면적은 3천690㎡로 본관은 2층이지만, 영화관 객석을 포함하면 지상 4층 규모다. 동양극장의 규모는 1천200석이었다. 당시 제주극장이 475석, 대정읍의 상설극장이 350석, 대한극장이 598석, 삼일극장이 756석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동양극장은 1990년(추정) 현대적 추세에 걸맞은 시설로 개보수되며 '시네하우스'로 명칭이 바뀐다. 관람석과 스크린 사이의 공간을 10m 이상 확대하고 좌석과 좌석 사이가 넓어졌다. 첨단 영상과 음향시설을 도입하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렸다. 복도는 각종 전시회 개최가 가능하도록 밝은색의 벽돌과 석재로 마감했다. 이후 2000년 상영관을 2개로 증축하는 개보수를 했지만, 현재는 폐업한 상태다.한 시대를 풍미했던 극장은 이제 건물만 남아 추억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동양극장과 동문시장 일대 건축물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근현대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파도치는 바다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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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1)] 역경 딛고 빛나는 불멸의 가치… 이 또한 김대건 신부와 닮았다 지면기사
용인 '은이성지 김가항 성당' 1845년 중국 남경교구서 한국인 첫 사제서품 받은 곳2000년 상해정부 푸둥개발정책에 따라 철거 절차건축부재 그대로 용인 남곡리에서 새로운 역사김 신부는 천주교 박해 속 25세 나이로 순교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에 선정건축은 사람들의 여러 생활을 담기 위한 수단이다. 어떤 목적을 갖는 가에 따라 건축에 들어가는 기술과 구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건축물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철학에 따라 여러 형태를 띠게 된다. 건축은 사람들의 생활을 담는 만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과 닮는다. 한국지방신문협회는 공동으로 대한민국 각 지역의 건축물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팔도건축기행'은 지역의 랜드마크에서부터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건축물까지 다양한 관점으로 조명해 건축물에 담긴 사람들의 꿈과 욕망을 살펴본다. → 편집자 주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42번 국도를 달리다,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골목길은 산자락에 다다라서야 끝이 나는데, 그 곳에 누군가 숨겨놓은 듯 작고 아름다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산으로 둘러싸여 호젓한 곳에 고즈넉이 들어선 새하얀 외벽의 건물. 회색 지붕 위 작은 십자가와 '天主堂(천주당)'이라는 한자가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오는 이들을 반겨주는 이 곳은 '은이성지 김가항성당'이다.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87번지. 숨겨진 동네라는 뜻으로 '은이(隱里)'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곳에 들어선 김가항 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주요 성지에 위치하면서 중국 원나라 때인 17세기 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다. 2016년에 복원된 김가항 성당은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까.■ 김가항 성당의 구조와 역사김가항 성당은 중국 원대인 숭전년간(1628~1644년) 상해 황포강 건너 김 씨 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김가항'이라 이름 붙은 곳에 큰 주택을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