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3·(끝)·에필로그]태동·성장·위기에 그룹 내면까지 살펴… 펜은 멈췄지만 견제의 시선은 풀지않아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3·(끝)·에필로그]태동·성장·위기에 그룹 내면까지 살펴… 펜은 멈췄지만 견제의 시선은 풀지않아 지면기사

    한국전쟁 직후 한국 경제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 집단이 등장했다. 1960년대 이후 공업화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는 재벌이 양산돼 한국경제의 주축으로 성장했다.하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이른 시일 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는 특정 재벌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육성했기 때문이다.이에 경인일보는 152편에 걸쳐 '이한구의 한국재벌사'를 통해 재벌그룹의 태동부터 성장, 위기, 소멸, 작금에 이르기까지 면밀히 들여다봤다.지금은 다소 생소한 경방삼양그룹, 화신그룹, 태창그룹, 삼호방직, 대한유화, 대한그룹, 한국생사그룹 등 한국의 근대 초창기 재벌사부터 삼성, 현대, LG, SK, 롯데까지 현재 대표 재벌그룹의 내면도 살펴봤다.그 결과 재벌들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했지만, 끝없는 외형 부풀리기 끝에 한국 경제를 휘청이게 한 주범이라는 사실도 재입증했다.심지어 대마불사(大馬不死, 바둑을 둘 때 대마는 쉽게 죽지 아니하고 필경 살 길이 생겨난다는 뜻) 신화에 도취된 재벌 기업들이 정경유착과 차입경영을 통해 외형을 부풀리고 우리 경제가 재벌 중심으로 고착화된 점도 드러냈다. 재벌 그룹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역사는 반복된다. 경인일보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는 '롯데-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한 롯데'를 끝으로 게재를 중단하지만 국내 재벌그룹에 대한 견제는 놓지 않을 방침이다.그동안 '이한구의 한국재벌사'에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2]롯데-24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2]롯데-24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 지면기사

    檢수사·경제민주화 영향호텔롯데 상장서 급선회계열사 투자부문만 '합병'순환출자 고리 대폭 개선케미칼 매입 '안정성' 확보신동빈 체제 출발의 첫 과제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었다. 난마처럼 얽힌 순환출자 해소와 '일본 기업'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 시급해 당초에는 일본계 주주비율 99%인 호텔롯데를 2017년 내에 상장시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할 예정이었으나 검찰과 특검 수사로 2017년 상장이 곤란해지면서 지주회사 설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 롯데지주 설립또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경제민주화 분위기가 거세질 수도 있어 이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기도 했다.첫 작업은 2017년 4월 26일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4사가 이사회를 동시에 개최한 것이다. 각 사를 투자회사와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들만 합병하기로 의결했다. 4사는 계열사 지분을 교차 보유하고 있어 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얽히고설킨 순환출자 고리 상당부분이 해소될 예정이다. 순환고리 수는 롯데쇼핑 63개, 롯데제과 54개 등이었다.사전작업을 거쳐 2017년 10월 12일 롯데제과를 모체로 한 롯데지주(주)를 설립했다. 주요 계열사인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를 각각 투자와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후 롯데제과 투자부문을 중심으로 합병해 지주회사로 전환한 것이다. 2018년 2월 롯데지알에스, 한국후지필름, 롯데로지스틱스, 롯데상사, 대홍기획, 롯데아이티테크와 2차 합병을 했다.롯데지주는 자본금 4조8천800억원, 자산 6조3천500억원에 42개 자회사(해외 포함 138곳)를 품었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13개로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이는 1차적인 단계로 중간지주회사에 불과하며, 추후 호텔롯데와의 합병을 통해야만 제대로 된 지주회사가 될 수 있다. 일본 롯데그룹이 지분 99%를 장악 중인 호텔롯데를 상장시켜 롯데지주에 합병하기로 했다. >> 지배구조의 완성2018년 9월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의 보통주 10.5%와 우선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1]롯데-23 신동빈 시대 오픈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1]롯데-23 신동빈 시대 오픈 지면기사

    창업 반세기 총94개 계열사100층↑ 국내 최대 빌딩꿈이명박 靑 입성 후 현실로자산총액 5년만에 2배 껑충신격호 마감 경영혁신 시동롯데그룹은 지난 2017년 4월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임직원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창업 반세기의 계속기업 롯데그룹은 2016년 기준 식품 12업체, 유통 14업체, 금융 11업체, 관광·서비스 39업체, 화학·건설 18업체 등 총 94개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12만5천명, 해외 5만8천명 등 총 18만여 명의 임직원들이 92조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재벌 서열 부동의 5위에 올랐다.>> 롯데월드타워 전면개장특히 123층의 롯데월드타워 전면 개장에 맞춰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빌딩 높이는 국내 최고이자 세계 5위이다. 롯데그룹이 1987년 12월 12일에 매수한 송파구 신천동29번지 일대의 땅 8만7천183㎡에 세워진 것이다.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이 땅에 100층이 넘는 국내 최대의 빌딩을 짓기로 하고 노태우 정부에 줄을 댔지만 실패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허가받기에 매진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한결같이 손사래를 쳤다. 잠실지역의 교통혼잡 문제와 인근 성남비행장(서울공항)의 항공안전 때문이었다. 신격호 창업주의 오랜 숙원은 2008년에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박 정부에 의해 해소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인 2006년 2월에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안을 최종 승인했지만 공군의 완강한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터였다.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28일 청와대의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계획에 우려를 표시한 이상희 국방부장관에게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라"고 다그쳤다. 이 대통령은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는 무리수를 둬가며 2009년에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그 과정에서 용적률과 건폐율도 상향조정돼 층수가 당초 112층에서 12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0]롯데-22 최순실 게이트 연루(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50]롯데-22 최순실 게이트 연루(하) 지면기사

    월드타워점 선정서 탈락부당한 평가 사업권 잃어2017년 2분기 매출 적자호텔 상장은 무기한 연기美액시올 인수 끝내 무산'일해(日海)'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로 당초 재단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의 유족을 지원하고, 스포츠 유망주 육성을 목적으로 발족했다. 자금은 삼성·현대·대우·선경·국제 등 기업들이 출연했다.1986년 사업목적을 국가의 안전보장과 평화통일을 위한 정책연구와 인재 양성 등으로 확대하면서 일해재단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84년부터 5년간 조성된 598억원의 대부분이 재벌을 통해 조성됐고, 이 과정에서 강제성 증언이 나왔다. 일해재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관세청 심사 연이은 좌초연매출 12조원의 국내 면세점시장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여서 면세점 인가 자체가 대박으로 치부됐다. 2015년 7월 '제1차 면세점대전'에서 관세청은 서울시내 대기업 면세점으로 HDC신라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선정하면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의 서울 워커힐호텔 면세점을 탈락시켰다. 롯데는 절치부심 끝에 2015년 11월 '2차 대전' 심사에 기대를 걸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대신 경험이 전무한 두산그룹에 특허권이 넘어갔다. 3천억 원이 넘는 투자에다 1천300여 임직원이 20년 넘게 공들인 월드타워점의 폐점을 의미했다.2017년 7월 11일 감사원에 따르면 관세청은 2015년 7월과 11월 각각 이뤄진 면세점 사업자 1차와 2차 선정 과정에서 계량평가 점수를 고의로 조작했다. 1차 선정에서 호텔롯데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에 밀려 신규사업장이 되지 못했고, 2차 선정에서는 롯데월드타워점이 두산에 밀려 재승인 받지 못했다. 2016년 4월 3차 면세점 선정 과정도 문제가 됐다. 당시 관세청은 서울 시내면세점 4개를 추가 설치하면서 매장당 적정 외국인 구매 고객 수, 매장 면적 등의 기초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가 정량평가 항목에서 앞서고도 부당한 평가를 받아 월드타워점의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9]롯데-21 최순실 게이트 연루(상)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9]롯데-21 최순실 게이트 연루(상) 지면기사

    특허 취득 관련 도움 정황崔연관 K스포츠재단 설립70억 제공 뇌물공여 혐의"미르재단과 몇개월만에총 900억원 기부금 조성"롯데그룹 창업주 일가가 한번에 법의 심판대에 선 경우는 한국재벌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실상 '오픈게임'에 불과했다.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보다 혹독한 대가를 받았기 때문이다.지난 2018년 2월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김세윤)는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을 한 것이다.>> 박근혜 前대통령과 독대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롯데 면세점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면서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기업들에 허탈감을 줬다. 뇌물 범죄는 공정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해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으며 정치, 경제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재벌 회장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판시했다.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6년 면세점 신규 특허 취득과 관련해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순실이 관련된 K스포츠재단에 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70억원을 제공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6월 10일 롯데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 직전에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기부한 출연금 70억 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탈락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자 신동빈 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자리에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재취득을 묵시적으로 청탁했고 그 대가로 뇌물 70억원을 K스포츠에 기부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K스포츠재단의 정확한 명칭은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로 주사무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14길 15-5이고 체육을 통한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했다. 이 재단은 2016년 1월 12일 설립허가 신청을 하자 바로 다음 날 허가가 났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초스피드로 법인설립 허가를 내 준 사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두 곳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8]롯데-20 경영비리로 단죄(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8]롯데-20 경영비리로 단죄(하) 지면기사

    신동주 ·서미경 모녀에급여 명목 508억 부당지급 일감 몰아주기 778억 손실유상증자 계열사참여 수법471억 배임 혐의 10년 구형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1천억원을 구형했다. 최고경영 책임자인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에서 일한 적이 없는 신동주 SDJ 회장 및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의 서미경 모녀에게 508억원을 급여명목으로 부당하게 지급했다는 것이다. 서미경과 신영자 이사장 등에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에 778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점도 적시했다. >> 모든 책임 아버지에 전가또한 부실기업인 롯데피에스넷의 ATM기 구매과정에서 롯데알미늄을 중간업체로 끼워 넣었으며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을 참여시키는 수법으로 471억원의 배임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에 대해 "책임을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전가하고 있고 직접적 이익은 신영자 이사장 등이 취했다고 주장하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등 막대한 이득 얻었다"고 주장했다.신동주 회장에게는 부당급여 391억원 수령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125억원을, 신영자 이사장과 서미경에게는 각각 징역 7년에 벌금 220억원, 1천200억원을 구형했다. 신영자 이사장에게는 면세점과 백화점 입점 업체들로부터 30억원대의 로비를 받은 혐의와 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유통업체의 회삿돈 40억여원을 세 딸의 급여 명목으로 빼돌린 혐의 등을 적용했다. 채정병 롯데카드 대표, 황각교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 소진세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에도 각각 징역 5년을 구형했다.전문가들은 최근 일감 몰아주기가 친족분리 기업에서 벌어지는 사례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친족분리란 삼성그룹과 신세계, 한솔그룹처럼 기업대표나 최대주주가 친인척이지만 다른 대기업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친족분리된 소규모 기업들은 대기업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받는 60여 가지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친족기업들이 그룹에서 분리신청을 하면 상호 주식보유비율이 상장사 3%, 비상장사 15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7]롯데-19 경영비리로 단죄(상)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7]롯데-19 경영비리로 단죄(상) 지면기사

    서울지검, 오너일가등 수사이인원 前부회장 극단선택이후부터 '횡령·배임' 겨냥"범행 지시 형사처벌 불가피"'95세 노인에 중형' 말 많아롯데 창업 68년 역사에서 최대의 시련은 2016년 6월 1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손영배)의 집중조사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서울지검 수사진 200여명은 이날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서울 중구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무실, 롯데호텔·롯데쇼핑·롯데홈쇼핑 등 핵심계열사 7곳,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인 롯데호텔 34층 및 평창동 자택, 주요 임원들 자택까지 모두 압수수색했다. 오너일가가 비자금 수백억원을 조성하고 3천억원대의 횡령·배임까지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4개월여 동안 역대 최대 규모인 320여명의 검찰 인력이 500여명의 롯데 임직원들을 수사했다.>> 檢, 역대최대 320명 투입검찰은 2016년 초부터 대대적 수사를 준비했다. 롯데는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인허가와 부산 롯데월드 부지 불법 용도변경, 맥주사업 진출 등과 관련해 특혜의혹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롯데홈쇼핑은 납품업체 금품 수수비리로 사상 초유의 황금시간대 방송금지 처분을 받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롯데카드는 2천600만 개인 고객 정보 유출 사고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총수일가의 부정부패 의혹도 끊이지 않는 데다 롯데그룹의 일본 국적(國籍) 논란은 설상가상이었다. 아들들은 경영권분쟁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고령의 부친까지 끌어들여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롯데 오너일가 스스로 매를 벌은 것이다.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더이상 진전이 없었다. 롯데그룹의 제2인자인 이인원 전 정책본부 부회장이 2016년 8월 26일 목숨을 스스로 끊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부회장이 자살한 당일 9시30분까지 이 부회장을 횡령·배임 등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를 요구한 상황이었다.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수장으로 총수일가와 계열사 경영까지 총괄하는 위치에 있어 검찰의 기대가 컸지만 결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6]롯데-18 형제의 난(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6]롯데-18 형제의 난(하) 지면기사

    그룹 "신동주가 부친 이용"장남 "정신또렷 승계지목"차남 "판단력 문제" 실토법원 '한정후견' 공식 결정日국적 논란 '적잖은 내상'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은 2014년 12월말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 계열사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데 대한 반격으로 분석된다.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지시는 하루 만에 뒤집혔다.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이사회를 열어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해임해버린 것이다. 롯데홀딩스는 광윤사와 종업원지주회, 롯데홀딩스 이사들이 주식을 각각 3분의 1씩 가지고 있는데 이중 3분의 2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임원직 유지에 부정적이었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신격호 건강문제 제기이 와중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문제가 불거졌다. 2015년 7월 28일 롯데그룹의 공식입장은 "총괄회장은 건강하다"였는데 이후 "고령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롯데그룹에서는 신동주 회장 등이 고령으로 건강상태가 안 좋은 부친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주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이 또렷하다. 정상적 판단에 의해 자기를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주장하자 신동빈 회장은 그동안 부친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형제 간에 상대방의 총괄회장 집무실 출입을 막거나 CCTV 감시 논란을 빚는 등 충돌이 극한으로 치닫자 2015년 12월 18일 신격호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의 부인)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신격호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상황 아니"라며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상적 판단유무를 법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성년후견제도란 치매 등 정신적 제약이 있는 피(被)후견인의 재산뿐 아니라 거주지 이동 등 일상생활과 관련해 최대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자 2013년 7월에 도입한 제도다. 2016년 3월 9일 법원은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5]롯데-17 형제의 난(상)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5]롯데-17 형제의 난(상) 지면기사

    신동주, 이사회 반대 외면IT벤처 10억엔 투자 '실패'신동빈, 중국사업 적자에해명불구 '격노' 접근 차단롯데홀딩스 이사직 '해임'롯데그룹도 국내 재벌승계의 고질병인 '형제의 난'을 피하지 못했는데 신격호 총괄회장이 2013년 12월 소공동 호텔롯데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게 발단이었다.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1살 아래인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의 경영권 갈등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2014년 12월말 신격호 총괄회장이 장남을 롯데홀딩스 이사직은 물론 일본 롯데 계열사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면서부터였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96년부터 장남 신동주 회장에게는 일본 롯데그룹을, 신동빈 회장에게는 한국 롯데그룹을 각각 경영케 해서 그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후계자 경쟁을 시켰다.>> 크게 화 난 신격호롯데그룹은 "신동주 회장이 일본롯데 실적 부진에 책임을 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롯데 관계자는 "신동주 회장이 개인적 친분 있는 인사가 대표인 IT서비스 개발 벤처회사에 이사회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했고 이사회가 정했던 투자금액의 상한선도 어겼다. 10억엔을 투자했으나 성과가 없어 감사까지 했으며 총괄회장에 보고했다. 신동주 회장은 개인판단으로 수차례 투자를 꾀하다 이사회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신동주 회장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이 내가 IT회사에 투자한 일을 아버지에게 이상하게 보고하면서 오해가 생겼다. 아버지가 바로 와서 설명하라고 했는데 내가 일 때문에 바로 가지 못하자 화가 나셨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설득해서 오해를 풀었다. 그래서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지시한 것"이라고 언급했다.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추진하는 중국 사업에서 무려 1조원의 적자가 발생했다는 첩보를 접수했다. 2014년 해외매출 11조원의 30%를 중국의 롯데백화점 5곳과 롯데마트 120곳에서 올렸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4]롯데-16 M&A통한 사업다각화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4]롯데-16 M&A통한 사업다각화 지면기사

    2002년 외식업체 TGI 시작제과업체 (주)기린도 매입유통·중화학건설·금융 등78개 계열사 기업집단 7위한국롯데 매출, 일본 '압도'모기업인 식품제조 부문의 성장도 여전했다. 2002년 5월 호텔 롯데와 롯데쇼핑이 공동으로 외식 사업체인 TGI프라이데이스의 지분 70%를 501억원에 인수한 이후 2008년 8월에는 롯데제과가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을 1천700억원에 인수했다. 2009년 10월에는 중견 제과업체인 (주)기린을 799억원에 인수해서 제과업의 지평을 넓혔다.음료 부문의 확장도 주목거리였다. 롯데칠성음료가 2009년 1월에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를 5천30억원에 인수했으며 같은 해 3월에는 경쟁업체인 해태음료의 안성공장마저 30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롯데칠성 두산주류 인수안성과 충남 천안, 강원 평창에 3개 공장을 운영하는 업계 3위의 해태음료는 2000년 6월 해태그룹에서 분리돼 일본 히카리인쇄그룹(지분율 51%), 아사히맥주(20%), 롯데호텔(19%), 미쓰이상사(5%), 광고회사 덴츠(5%) 등 5개사가 공동으로 참여한 컨소시엄에 매각됐는데 그 와중에 롯데가 안성공장을 인수한 것이다. 아사히맥주는 2004년에 히카리그룹과 덴츠의 해태음료의 지분 21%를 인수해 국내 음료 시장에 참여, 선두주자인 롯데를 견제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후발업체인 롯데는 풍부한 자금력으로 선발기업들에 대한 M&A를 통해 식품업계의 패자로 거듭났으나 유통부문의 성장에는 크게 못 미친다.2012년에는 롯데의 숙원이었던 맥주 제조업에 도전했다. 2011년 2월 신동빈 회장의 "음료에서부터 주류 전 부문에 걸친 풀 라인업을 갖추라"는 지시가 신호탄이었다. 롯데는 생수에서부터 탄산, 주스, 차 음료, 소주(처음처럼), 위스키(스카치블루) 등을 생산하지만 맥주는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3조5천억원 규모의 국내 맥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점유율 1% 차이로 양분하고 있었다. 롯데가 사업파트너인 일본 아사히맥주로부터 제조, 기술 측면의 지원을 받는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3]롯데-15 금융부문 약진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3]롯데-15 금융부문 약진 지면기사

    2003년 롯데카드 발급 시작콜센터 서비스 첫 KS 인증재무상태 악화된 대한화재지분 57%를 3526억에 인수'금융 인프라 확보' 잰걸음여타 재벌들에 비해 금융업 진출이 늦었던 롯데는 2000년대 들어 금융부문을 강화했다. 2002년 9월에는 롯데쇼핑 등이 동양카드를 1천300억원에 인수해서 롯데카드로 상호를 변경했다. 동양그룹은 1995년 9월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의 국내 영업권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에 동양카드를 설립했다. 1998년 1월에는 동일 계열의 동양할부금융(주)와 합병했으나 동양그룹은 외환위기에 따른 자금난 타개 차원에서 동양카드를 롯데에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百 카드사업 흡수2003년 12월에는 롯데쇼핑(주)의 롯데백화점 카드사업을 흡수해서 롯데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2008년 9월 업계 최초로 콜센터 서비스 부문 KS인증을 획득했고 같은 해 9월 전자금융거래서비스 국제표준인증(ISO27001)을 획득했다. 2015년 1월 롯데멤버스 사업부문을 롯데멤버스(주)로 분할, 이전시켰으며 2018년에는 테크콤 파이낸스(TechcomFinance)를 인수했다.2007년 12월에는 호텔롯데, 롯데역사, 대홍기획, 부산롯데호텔 등 롯데컨소시엄이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과 대한시멘트, 대한페이퍼텍이 보유한 대한화재(롯데손해보험)의 지분 57%를 3천526억원에 인수했다. 호텔롯데(27.72%), 롯데역사(22.67%), 대홍기획(4.62%), 부산롯데호텔(1.97%) 등이 대한화재 지분을 나눠 가졌다. 대한화재는 대주그룹 계열 손해보험사로 2006년 9월말 현재 자기자본 1천221억원, 자본금은 421억원이었다.1946년에 설립된 대한화재는 동양화재, 삼성화재 등과 함께 국내 손해보험시장을 견인하는 리더기업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좌초위기에 직면했다가 2001년 12월에 공적자금 380억원을 수혈받으면서 대한시멘트에 420억원에 매각됐다. 당시 대한시멘트는 인수조건으로 2001년 200억원, 2002년 100억원, 2003년 10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2]롯데-14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2]롯데-14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 지면기사

    몸집 2배 현대유화 2003년 인수합병 글로벌경영 토대매출 1조대 KP케미칼 포함말레이 타이탄까지 M&A2017년 영업익 2조9276억2003년 6월 호남석유화학이 자기보다 몸집이 2배 이상인 현대석유화학(대산유화)을 6천억원에 인수했다.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석유화학은 충남 대산읍 대죽리 753번지에 연산 35만t의 프로필렌, 부타디엔, 스티렌모노머, 에틸렌글리콜 등을 생산하는 대단위 석유화학콤비나트로 1991년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막대한 건설비 투자에다 공급과잉에 따른 매출부진으로 고전하던 중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뒤 1998년 12월말에는 채무액이 무려 3조2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룹 핵심' 롯데 케미칼현대그룹은 외환위기로 인한 유동성 애로로 고전 중이었는데 세계석유화학 경기가 최악인 것은 설상가상이었다.2001년 7월 12일 6천221억원의 유동성 긴급지원을 조건으로 대주주인 현대중공업(49.87%), 현대건설(11.63%), 현대종합상사(6.95%) 등이 출자지분에 대한 완전감자에 동의함에 따라 현대유화가 매물로 나왔다. 현대유화는 2000년 매출 2조2천156억원에 3천78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터에 2001년 1/4분기에만 372억원의 경상손실을 입은 상황이었으나 채권단의 긴급수혈로 부채총액은 2조6천억원으로 축소됐다.채권단은 덴마크 석유화학회사인 보레알레스와 LG화학 그리고 롯데의 호남석유화학 등과 매각협상을 벌였다. 이후 채권단은 현대석화를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에 분할 매각하기로 하고, LG화학이 현대석화 1단지를, 호남석유가 2단지를 각각 인수했는데 신규설비로서 효율성이 더 좋은 2공장을 인수한 호남석유가 선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대유화의 자산가치는 스티렌모노머(SM) 부문을 제외해도 2조8천억원으로 롯데는 대어를 낚았다.롯데는 석유화학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확정하고 2004년 11월에 호남석유화학이 KP케미칼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KP케미칼의 지분(53.8%) 및 경영권을 8천135억원에 인수했다. KP케미칼은 20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1]롯데-13 유통사업 해외확대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1]롯데-13 유통사업 해외확대 지면기사

    국내 시장 성장 한계 확인2007년 러·중 백화점 오픈2008년엔 인니 마트 진출2010년 산둥 TV쇼핑 인수호찌민 백화점 M&A 성공적 롯데는 2000년대에 유통부문 해외 확대에도 공을 들여 2007년 9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최초로 백화점을 오픈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국내 업체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백화점을 개설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백화점 사업을 추진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시장의 성장한계가 점차 확인된 탓이다.국내 백화점 업계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롯데가 점유 중임에도 전체 23곳 중 이익을 내는 점포는 서울 명동 본점과 잠실점, 부산점 등 4곳에 불과한 것이다.>> 대륙 창고형 할인점 공략롯데쇼핑은 슈퍼마켓 내지 창고형 할인점의 해외진출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신호탄은 2008년 5월에 중국 마크로(Makro)에서 마트 19곳을 1천615억원에 인수했다. 2009년 12월에는 중국 타임즈(Times)로부터 마트 57점포와 슈퍼 11곳을 7천300억원에 넘겨받았다. 2008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마크로로부터 마트 19점포를 3천900억원에 매입해서 새로운 구매력으로 부상 중인 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대한 진출을 개시했다. 신세계 이마트가 국내에서 유통 1위 자리를 끊임없이 위협 중인 데다 이마트가 선수를 쳐서 중국 공략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점도 롯데 유통부문의 해외진출을 자극했다.2010년에는 산둥 럭키파이 TV쇼핑(Shandong Luckypai TV Shopping)을 인수했다. 롯데는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 롯데홈쇼핑코(Lotte Home Shopping Co, 이하 LHSC)를 설립해 럭키파이 리미티드(Lucky Pai Limited, 이하 럭키파이)를 1천9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대금 중 1천200억원이 웃돈(영업권)이었다. 당초 럭키파이는 홈쇼핑 회사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산둥 럭키파이 등 15개 회사 지분을 보유한 중간 지주회사다. 산둥 럭키파이 외에도 윈난 마일러 TV쇼핑 미디어(Yunnan Maile TV Shopping Media Co)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0]롯데-12 2012년 '하이마트' 인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40]롯데-12 2012년 '하이마트' 인수 지면기사

    국내 M&A시장 '대어' 꼽혀유진그룹·선종구 매각 합의2018년 현재 전국 463개 매장14개 물류·11개 서비스센터전용 자재터미널 1개 운영롯데는 2012년에는 국내 M&A 시장의 대어로 꼽히던 최대 가전제품 양판점인 하이마트를 인수했다. 하이마트는 대우그룹의 위장계열사에서 출발했는데 당시 정부는 제조업체가 자사에서 생산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 때문이었다. 대우는 1974년에 대우전자를 설립해서 카스테레오를 수출하다가 1983년에는 '무지개 세탁기'로 유명세를 탄 대한전선의 가전부문을 인수하면서 선발주자인 LG전자, 삼성전자와 국내 가전 시장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롯데쇼핑이 넘겨 받아김우중 당시 회장은 대우제품은 물론이고 국내외의 모든 전자제품도 함께 취급하기를 희망했다. 1987년 6월 대우 임직원 등의 명의로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 유통업체인 한국신용유통을 설립했다. 1989년에는 일본의 생활가전 및 컴퓨터 주변기기업체인 조신(Joshin)전기와 기술제휴를 해서 용산 전자랜드 1층에 '하이마트' 1호점을 오픈했다.1999년 대우그룹 해체 후 김우중 회장이 해외로 도피하면서 당시 대우전자 선종구 판매총괄본부장이 차명주식 전부를 자신 명의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는 한편 한국신용유통을 대우전자의 국내 판매조직과 통합해서 1999년 12월에 하이마트로 상호를 변경하고 종업원지주회사로 바꿨다. 같은 해에 하이마트는 전국 200여개 직영점과 전국 1일 배송시스템을 구축했다. 2000년 7월에는 새로 인터넷 쇼핑몰(www.e-himart.co.kr)을 오픈하는 등 영업을 강화해서 연매출 1조2천억원을 돌파했다. 2003년 5월 전국 직영 서비스센터를 가동했고, 같은 해 9월에는 하이마트로지텍(주)를 설립했다. 2004년 5월 전자유통업계 최초로 IP기반의 CTI 콜센터를 열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팔린 상품에 대한 정보를 판매와 동시에 기록해서 판매정보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체계인 POS시스템을 도입했다. 2007년 7월 모바일 사업(휴대폰 유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9]롯데-11 2세 경영으로 전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9]롯데-11 2세 경영으로 전환 지면기사

    신격호의 '황제 경영' 탈피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선언10년간 10조투입 35개 인수투자액 1조 이상 4곳 달해2015년엔 재계 5위로 상승국내의 최대 재벌들은 대체로 창업1, 2세대에 의해 완성됐다. 적수공권의 창업자들이 탁월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모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후 창업2, 3세들은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다각화를 통해 몸집을 부풀렸다. 급속히 외형을 확대한 나머지 재무구조가 취약해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개방화 확대에 따른 외생변수는 더욱 치명적이어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재무구조가 취약한 2세 경영의 민간기업들이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롯데그룹은 신격호 창업주가 1946년 일본에서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또한 1967년 한국에서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단독경영으로 일관했다. >> 2011년 그룹회장 취임그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첫째는 1942년생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다. 신영자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31세 때인 1973년 롯데호텔 이사로 경영진에 참여했지만 주변적 존재였다. 막내딸 신유미는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의 서미경의 소생으로 아직은 약관이어서 대권수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격호와 둘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이 유력한 총수 승계후보자였다.1954년생인 신동주는 일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90년에 일본 롯데그룹 이사로 인연을 맺은 뒤 2003년에는 한국의 롯데쇼핑 이사를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한·일 롯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 대표이사이다.신동주보다 한 살 아래인 신동빈은 1977년에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MBA를 이수한 후 1981년부터 8년간 일본 노무라증권에 근무하다가 형인 신동주보다 2년 빠른 1988년에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1990년에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상무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8]롯데-10 국내 최대의 유통재벌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8]롯데-10 국내 최대의 유통재벌 지면기사

    2002년 미도파백화점 인수한화마트·스토어24개 매입우리홈쇼핑 지분 53.03%도2010년초반 유통부문 강화'세븐일레븐'으로 업계총괄2000년대 이후의 다각화는 그간에 벌여 놓은 사업의 외연적 확대였는데 첫째, 유통사업 확장으로써 시작은 2002년 7월에 롯데쇼핑이 경쟁업체인 미도파백화점을 5천420억원에 대농그룹으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미도파백화점은 일제 하인 1938년 일본인들이 설립한 정자옥(丁字屋) 명동점으로 출발한 신세계백화점과 함께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백화점 중 하나다. 1945년 해방 후에는 귀속재산화해서 경영진이 자주 바뀌었다가 1969년 5월에 대농그룹 창업자인 박용학이 무역협회 지분 40%를 2억원에 인수해 상호를 미도파백화점으로 변경했다. 이후 미도파는 신세계, 화신, 신신백화점과 함께 서울 장안의 대표 백화점으로 성장, 재계순위 34위인 대농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 전국 5400개 매장 운영대농은 지방의 주요 도시에 지점을 확대하는 등 외형적 확장에 주력했으나 그 과정에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996년 결산에서 2천931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외화내빈의 처지로 전락했다.신동방그룹이 미도파백화점에 대한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면서 미도파의 주가는 1996년 말 1만2천원에서 1997년 3월 초 4만5천원까지 급등했다. 전경련 회장단이 미도파에 대해 광범위한 공동지원을 약속하자 그동안 꾸준히 주식을 매수해 왔던 성원건설이 보유지분을 모두 미도파에 매각하면서 적대적 M&A는 미도파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다가 미도파는 부도가 나서 롯데쇼핑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롯데쇼핑은 2003년 11월에 한화그룹 계열의 한화마트와 스토어 24개 점포를 1천700억원에 인수했으며 2006년 8월에는 당시 뜨는 업종인 홈쇼핑에 진출하고자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의 지분 53.03%를 4천667억원에 인수했다. (주)우리홈쇼핑은 2001년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7]롯데-9 유통 중심의 다각화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7]롯데-9 유통 중심의 다각화 지면기사

    잠실 롯데월드 백화점 매출업계 전체매출액 30% 차지신문사 인수·편의점업 진출컴퓨터·정보통신사등 설립2000년 인천공항면세점 오픈롯데제과가 국내 제과업계의 정상에 올라선 것은 1979~1980년이었다. 1945년 해방 이래 국내 제과업계를 석권하던 해태제과와 동양제과와의 경쟁에서 롯데는 1980년 매출액 1천억원을 달성해 업계 수위에 랭크됐다.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 제과공급업체로 지정되는 등 1986년에는 매출액 2천억원을 돌파했다.신격호의 사업다각화 노력은 1980년대 들어 더욱 적극화됐다. 1980년에는 식품저장을 목적으로 롯데냉동(주)를 설립하고 사진감광제 메이커인 한국후지필름(주)를 인수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주)롯데자이언츠를 출범시켰으며 광고대행업체인 (주)대홍기획과 롯데물산도 설립했다. 1985년 2월에는 옛 산업은행 부지에 35층의 롯데백화점 신관을 착공해 1988년에 개관했다.>> 1980년대 적극 다각화또 11월 12일에는 서울 잠실의 대지 2만3천평에 호텔, 백화점, 쇼핑몰, 스포츠센터 등을 아우르는 롯데월드를 오픈한 결과 1991년에는 롯데백화점 매출이 1조5천억원을 기록, 업계 전체매출액의 30%를 점할 정도로 도약했다.1984년 5월에는 (주)호텔롯데부산을 설립하고 그해 11월에 부산 서면의 옛 부산상고 부지 1만7천60평을 348억원에 사들여 이 자리에 지상 41층, 지하 5층 규모에 900여객실을 갖춘 '호텔롯데 부산'과 롯데백화점 부산점을 1996년 12월 오픈했다. 1986년에는 국내 최초 민자역사이자 지하 5층, 지상 8층, 연건평 2만6천평의 서울 영등포역사 운영을 목적으로 (주)롯데역사를 설립했는데 당시 특혜시비가 불거졌다.잠실의 제2롯데월드도 주목받았다. 이 땅은 1979년에 율산그룹이 부도로 도산하면서 (주)한양의 소유였는데 1981년 '88올림픽' 서울 유치가 확정되면서 전두환 정부는 잠실지구에 대규모 관광위락시설 건설을 계획하고 이 부지를 롯데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6]롯데-8 롯데그룹 형성·(하)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6]롯데-8 롯데그룹 형성·(하) 지면기사

    막강 자본·질좋은 상품 제공선진화 마케팅 전략등 주효1979년 특급 호텔롯데 신축백화점·패스트푸드업 진출식품·유통등 복합기업 형성롯데제과는 1970년대 급속히 다각화했다. 1970년 10월 껌과 과자 포장에 필요한 은박지 생산을 위해 동방알미늄을 인수해 롯데알미늄으로 개명하고 1973년 11월에는 공해방지 시설업체인 롯데기공과 오디오 생산업체인 롯데파이오니아를 각각 설립했다. 1974년 1월에는 사무기기 메이커인 롯데산업과 11월에는 그룹의 무역창구인 롯데상사를 설립했다. 또한 그해 4월에는 국내 최대의 청량음료 메이커인 칠성사이다를 인수, 롯데칠성음료로 개명했다. 1978년 1월에는 한일향료(현 롯데식품)를 설립했으며 2월에는 삼강하드 아이스크림을 인수해 롯데삼강으로 변경했다. 4월에는 롯데햄우유를 설립했다. 후발주자인 롯데제과는 막강한 자본과 질 좋은 상품 제공, 선진화한 마케팅 등으로 단기간에 업계 정상에 올랐다.>> 롯데제과 '업계 정상'한편 이 무렵 롯데는 종래와는 전혀 다른 신사업에 진출했다. 1973년부터 시작된 관광진흥정책에 따라 서울을 중심으로 호텔신라 등 국제수준의 매머드 관광호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1970년 11월 13일 신격호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박정희는 신격호에게 서울의 요지인 소공동의 반도호텔을 불하해 줄 테니 국제규모의 호텔을 지어 경영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날벼락 같은 이야기에 해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석했던 이후락 주일대사가 쿡쿡 찌르면서 '이 자리에서는 예라고 대답만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도리 없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경제발전으로 관광수요가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 데다 정권차원에서 밀어주겠다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아사히신문' 1988.6.5) 이날 청와대 면담은 제과업체 롯데가 호텔과 유통재벌로 탈바꿈하는 출발점이었다. 1974년 6월 금싸라기 땅인 반도호텔 매각작업에 롯데만 단독 응찰해 41억9천800만원에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5]롯데-7 롯데그룹 형성·(상)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5]롯데-7 롯데그룹 형성·(상) 지면기사

    자본금 3천만원·사원 500명중견기업 '롯데제과' 설립인연깊은 유창순 회장 추대공장2개 가동… 갈월동 '껌'양평동, 빵·비스킷등 생산대부분의 국내 재벌들은 창업에서부터 대규모 기업집단을 형성할 때까지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토착 자본이다. 그러나 롯데는 창업주 신격호가 일본에서 맨주먹으로 창업해 그곳에서 형성한 부와 경영기법을 국내에 도입해서 재벌을 형성한 독특한 이력의 기업집단이다. 또한 롯데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 각각 사업기반을 구축한 유일무이한 그룹이기도 하다.롯데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65년 12월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부터였다. 1945년 8·15해방과 함께 단절된 한국과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나라는 미국이었다.>> 신격호의 모국 투자소련과 중국 중심의 동북아지역 공산화 확대의 저지 대안으로 미국은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구축을 구상했다. 미국은 이를 실행하고자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집요하게 종용했다.1961년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일 국교 정상화 의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국내에선 기업인들이 국교 정상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1960년 4·19혁명과 1961년 5·16쿠데타와 함께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한국경제협의회(전경련 전신)가 중심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제 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외화 확보에 혈안이 됐었는데 대안으로 일본 자본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후부터 국내에 일본 자본의 진출이 격증했다.신격호의 모국 투자는 1965년 12월 한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진행됐다.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신격호에게 한국의 기간산업에 투자해줄 것을 종용했다. 신격호는 내심 고국에서 제철사업을 구상해 일본 가와사키제철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사업계획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으나 당시 박정희 정부는 제철업 국영화 논리를 폄으로써 신격호의 제철업 구상은 수포로 돌아갔다.신격호의 모국 투자는 제과업으로 결정됐다. 1965년 전후에 일본의 롯데는

  •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4]롯데-6 대재벌로의 도약

    [이한구의 한국재벌사·134]롯데-6 대재벌로의 도약 지면기사

    기시 노부스케 前수상 매개프로야구단 오리온스 인수現 총리대신 아베의 외조부1960년대 초 첫 만남 추정국교정상화 이후 위상 짐작1968년에는 나가다 마사이치(永田雅一)가 운영하던 일본 프로야구단 다이마이(大每)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를 인수했다. 모기업인 다이에이가 경영위기 상태였는데 1957~1960년 일본 수상을 역임한 일본 정계 우파 본류의 거물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의 매개로 신격호의 소유로 넘어온 것이다. 기시는 1920년에 도쿄제국대학 법학과 졸업과 동시에 일본 농상무성의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1939년 3월에는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해서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일본 정계 거물과 인연1941년에 귀국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에는 도조 히데키(1884~1948) 내각의 상공대신에 취임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에는 연합군 측에 의해 A급 전범이 되었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된 후 정계에 진출해서 총리대신이 됐다.기시의 형인 사토 이치로는 일본해군 중장 출신이고 1974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1901~1975)는 기시의 친동생이었다. 기시의 본래 성씨는 사토였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에이사쿠는 형인 기시의 도움으로 일본 정계에 입문해서 1964년부터 1972년 9월까지 7년 8개월간 재임한 일본 최장수 총리이기도 하다. 또한 기시는 일본 최장수 외무장관을 역임한 아베신타로(1924~1991)의 장인으로 일본의 현 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적극 찬성혈혈단신의 식민지 백성인 신격호가 자신보다 무려 26세나 많은 기시 노부스케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는 미스터리이다. 1990년대 말에 신격호는 "나와 기시 선생과는 30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다"고 고백한 터여서 기시와 신격호와의 첫 만남 시기는 대략 1960년대 초반쯤으로 추정된다.('신격호의 비밀',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