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힌 다음날 아침, 우리동네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교길을 위해 횡단보도에 섰습니다. 밤샘 근무로 녹초가 됐는데, 하필이면 녹색어머니회 당번이었거든요.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 서 있으니 요란한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형형색색으로 꾸민 팻말을 들고 여러명의 어린이들이 목청높여 외치더군요. “기호 1번 000” “전교회장은 000”. 서 있는 자리에서 눈으로 매겨진 기호를 세보니 무려 5번까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우리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어린이들의 세상에선 살아있음을, 그것이 참 새삼스럽게도 감사하게 느껴진 아침이었죠.
어제 새벽엔 스웨덴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비상계엄으로 총칼을 든 군인이 자국민을 탄압해 온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에 새긴 그녀의 소설이 세계의 찬사를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과거인 줄 알았던 비극이 엄혹한 현재가 됐고 우리는 숨죽여 그 순간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한없이 기쁜데, 또 한없이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주 일목요연은 우리의 그 현실을 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