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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지역 사회는 좋은 차와 맑은 물의 만남과 다르지 않다. 지역 역시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과 투명한 지역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말이다.이처럼 사람과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역일수록 애향심이 강하고 고장을 떠나지 않는 지역민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타 지역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터전을 향유하고 전파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권성훈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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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떡으로 기억되는 목사님과 스님이 있다. 목사님은 빵으로, 스님은 떡으로 사람을 기쁘고도 즐겁게 한다. 갓 구워낸 빵과 막 쪄낸 떡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다. 바로 이수기 목사님과 형석 스님이다. 이 목사님과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에 빵과 케이크를, 성탄절에 떡과 팥죽을 수년간 보내고 있지만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이다. 몇 번 만남을...
권성훈
20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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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향수는 과거에서 파생된 추억이다. 미적인 공간을 함의한 좋은 기억은 소위 고향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성장을 함께해온 모교에서도 향수의 결로 묻어있다. 오래전에 떠나 왔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러한 기억의 저장고에는 추억의 노래가 되살아나기도 한다. 바로 중고교 시절 목청 높여 불렀던 교가가 그것이다. 교가는 누구에게나 강한 기억...
권성훈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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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얼과 꼴'의 합성어다. 인간 내부에 있는 '얼'은 정신이며 외부에 있는 '꼴'은 모양이다. 얼은 보이지 않지만 꼴은 보이는 것으로, 누구나 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외면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고 병들고 죽지만 내면의 얼굴은 시간을 초월하며 죽어도 죽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인간 정신이 지향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
권성훈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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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김동훈은 시대를 달리하는 건축가다.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고, 김동훈(1955~)은 현재 대학교수 출신으로, 이 둘은 200여년이라는 역사와 시대를 넘나드는 인물이다. 수원에서 획기적인 건축물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실행한 건축가로서 정약용과 김동훈은 공통점이 있다. 정약용의 수원화성 축성과 김동훈의 수원시 연화장이 그것이다....
권성훈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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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토속 음식을 가업으로 이어나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경제적인 사정과 구직난도 한 몫 하겠지만 부모님의 가업을 천직으로 아는 젊은 세대다. 이들의 특징은 2대와 3대에 걸쳐 고유한 음식 맛을 전하기 위해 조리법을 익히며 식당업을 지켜나간다는 자부심이 새겨져 있다.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단골손님이다. 주인과 단골손님은 서로 가족...
권성훈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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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축성한 정조(조선 22대 왕)는 시인이었다. 정조는 시인으로서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의 샘물을 언어의 두레박으로 공급하며 인간 정신을 우위에 두었다. 평소 책 읽기와 글쓰기를 즐겨 했던 정조가 추구했던 인간 정신은 저서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을 통해 인문학의 정수를 펼쳤다. 여기에 19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했던 정조는 인문학에 대한 ...
권성훈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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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남문 감돌던 습습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면일손을 놓고 달려와 팔달산 언덕을 오른다.낮은 담장과 굽은 성터에서 풍겨오는흙냄새가 어머니 젖가슴처럼 마음을 열고 반긴다.담장 아래 토닥거리는 키 낮은 햇빛과느리고 뒤끝이 흐린 수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외할머니 집으로 가던 골목길은 끊어졌으나풍상의 세월을 열고 닫는 수원 남문은오늘도 세상사를 의연하게 ...
권성훈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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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일상에서 분리된 산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왔다. 도달하기 힘든 산일수록 높고 깊고 험한 통로를 가졌다. 이러한 산을 오를수록 세속에서 멀어지며 성스러운 공간으로 접어드는 느낌이 든다. 자연과 동화된 상태에서 낙엽을 떨구듯이 자신을 비워가는 노정이 펼쳐진다. 거기에 사회 속에서 겪고 있는 일들과 지나간 일들이 바람결에 스쳐 지나가면서 근원적인 삶을...
권성훈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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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낙산공원 산책길좀 채 곁을 주지 않는 늙은 소나무 뒤편 그늘에키 작은 노루발 꽃 피었다 //절벽마을 골목에 서서 두 귀를 쫑긋 세워보면 앞뒷집, 윗집과 아랫집 할 것 없이잠 없는 노루 잰 발걸음 소리 새벽을 열고 //패션산업 막다른 마을 배후에사냥꾼에게 쫓겨 온 보조미싱사가 산다 밑실에 걸어놓은 봉제된 꿈들은그녀의 지그재그 서툰 발자국만 남기지만드르...
권성훈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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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물 웃음으로 받아낸 그의 한생알아 본 눈 있을까 마음이 있을까발밑에 쓰러진 질경이 염치없는 날 본다밟히고 끊어져도 꽃잎 일어 재우는 밤정 많고 눈물도 많은 바람의 명치라서묻어둔 심화로 피운 어혈은 망울망울 단심. 양점숙(1949~)질경이는 양지바른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6월이 되면 개화하는 질경이의 꽃말은 '발자취'로 어디서나...
권성훈
20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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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앉은 새가 제 심장을 쫀다천지가 찢겨진 새의 심장으로 가득하다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도편의점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당신도새의 심장으로 두근거리는 시간아무도 모른다 누구나 새의 죽음 속에서 살아있음을새는 죽어서 꽃을 남기고꽃은 죽어서 당신을 남기고최라라(1969~)2월에 만발하는 동백은 11월 말부터 꽃을 피운다. 다른 꽃들이 다지고 난 후 추...
권성훈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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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 가세요조심스레 내려가가만히 앉으세요그리고숨을 쉬세요부드러운 둘레와밝은 둘레와입체적 기쁨 속에서문태준(1970~)집은 안식의 공간이다. 삶에 지친 영혼과 고단한 육신을 품어주며 세상에 나아갈 채비를 하는 장소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거주지로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머무는 곳이 집이 된다. 이른바 꽃은 집과 같이 시들 때까...
권성훈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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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소읍, 어느 성인의 탄신을 기리는 축제라던가?떠들썩 떠들썩한 축제 행렬 막 지나간 길, 꽃으로 가득한 트럭 위에서 사내들이 던진 꽃들 질펀하게 깔려있네 //흠! 흠!붐비는 재스민 금잔화 향기 맡고 나타났을까. 난데없이 어슬렁거리며 등장한 흑소 몇 마리.더 넓을 순 없는 여물통, 뜨겁게 끓는 아스팔트에 깔린 꽃들을 우적우적 씹고 있네 //갈비뼈 아른아...
권성훈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