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이라고 요약한다. 이런 만남은 서로가 잘 준비돼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강화학파의 계보를 이으며, '원교체'란 독특한 서체를 완성한 위대한 서예가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와 그의 친구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의 만남도 예사롭지 않다. 상고당은 18세기 조선의 대표적 서화(書畵) 수집가였다. 당시 중국이나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서체는 모두 상고당의 ...
정진오
2012-01-01
-
... 이경석을 옹호하고, 송시열을 비판하는 글이 문제가 돼 정권을 장악한 노론으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려 삭탈관직당했다. 박세당이 쓴 이경석의 신도비는 50여년 뒤 영조 30년(1754년)에야 이광사의 글씨를 받아 겨우 세워졌으나 송시열을 따르는 노론은 이 신도비를 갈아서 없애버렸다고 한다.이경석이 쓴 비문은 '삼전도비'란 이름으로 370년을 넘게 전쟁의 치욕을 후대에 전하고 있지만, 정작 ...
정진오
2011-06-06
-
... 곳은 두륜산 자락에 깃든 대흥사다. 백제때 지어졌고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한 대가람이다. 많은 명사들의 흔적이 오롯한 곳이기도 하다. 대웅보전의 글씨는 남도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썼고, 바로 옆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가 주석했고,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정조가 표충사란 사당을 세우고 현판을 썼다. 서산대사는 대흥사를 두고 '만세토록 ...
경인일보
2008-12-11
-
◇승진 △부사장 김영호 이광사 한상범 △전무 강영식 김흥식 서용원 원종승 △상무 이대열 민병출 석태수 이혁훈 이장연 김종남 권오상 장완수 김광성 허영진 박용순 김충남 김세태 △상무보 이내규 황명선 김재건 김석환 고병우 이진걸 한대항 김준석 우기홍 김용순 조병택 정우진 한상원 조규빈 권영환 김철우 박천규 이유성 ◇승진 전보 △상무 항공종합서비스(주) 이명기 △상무보 ...
경인일보
2004-12-30
-
... 사위 이광명(李匡明)과 신대우가 강화로 옮겨 살게되어 정(鄭), 이(李), 신(申)씨 가문을 중심으로 강화학파란 독특한 학맥을 형성, 200년간 전수되기에 이른다. 다시 부연해 본다. 이광사의 학문은 아들인 이영익(李令翊), 이긍익(李肯翊)으로 승계되는데 이긍익은 근조선에 관한 기사본말체의 야사(野史)를 대표하는 '연려실기술'의 저자로 너무나 유명하다. 이면백(李勉伯)은 '해동순사(海東淳史)' ...
경인일보
2002-11-27
-
... 떨쳤던 정조대왕의 어필(御筆)과 당시 문화절정기를 이끌었던 조윤형·유한지·강세황 등의 필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금석문, 그리고 정조시대 문예부흥의 원류가 되었던 동국진체의 대가 윤순·이광사 등의 금석문 등이 이번 특별전에 전시될 예정이다. 학술적으로도 그동안 정조시대의 업적으로 꼽았던 '문체반정(文體反正)'을 뛰어넘어 정조대왕이 '서체반정(書體反正)'을 시도했었다는 논문이 함께 ...
박상일
200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