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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곧바로 북으로 간 '이기영'
최근 그를 기념하는 행사 잇따라
월북작가라고 금기됐던 '민촌문학'
그의 고향 천안에서 새삼 관심 받아
냉전체제 황혼기로 바라볼 수밖에
최근 급변해가는 남북관계는 그동안의 분단체제가 남북 양쪽을 모두 피해자로 만들었으며, 우리 역사를 불구의 것으로 몰아왔다는 사실을 잘 시사해준다. 그 ...
유성호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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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지원 1천만원 평범한 삶 한계
생활고로 성매매나 범죄에 내몰려
적응 못하고 다시 월북하는 경우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안착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3만여 명에 달하는 북한 이탈주민(탈북민)에 대한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
이준석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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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으로 재설정된 채 민간인에게는 거의 망각된 공동경비구역(JSA)에 빛의 축제가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잡고 그 군사분계선에서 '월남'과 '월북'을 시연함으로써 판문점 이데올로기가 햇볕 아래 드러난 바, 미 CNN이 '누들외교'라고 예찬한 평양냉면까지 거들어 휴전협정 65주년 만에 정전을 종전으로 이끌 4·27선언이 탄생한 것이다. ...
최원식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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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으로 재설정된 채 민간인에게는 거의 망각된 공동경비구역(JSA)에 빛의 축제가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잡고 그 군사분계선에서 '월남'과 '월북'을 시연함으로써 판문점 이데올로기가 햇볕 아래 드러난 바, 미 CNN이 '누들외교'라고 예찬한 평양냉면까지 거들어 휴전협정 65주년 만에 정전을 종전으로 이끌 4·27선언이 탄생한 것이다. ...
최원식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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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학자·독립투사등 연대별 수록
친일·월북한 졸업생도 가감없이 다뤄
27회 동문들 창씨개명·학병 거부 순국
작가 함세덕·야구 대부 김선웅 큰 업적
학계·종교계등 사회곳곳 수많은 인맥
12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고등학교가 '인천고 인물사'를 펴냈다.
3만7천명이나 ...
김민재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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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였다.
북한으로 데려가 기술자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김씨의 둘째 아들 행규(77)씨는 전쟁 후 경찰관이 됐지만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됐다고 한다. 알고 보니 행규씨가 '강제의용군으로 월북한 자'의 아들이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김씨는 납북피해가족 증언에서 “당시 아버지는 낮에는 북한의 감시를 피해 저녁에만 집에 들어오셨다”며 “월북과 납북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아버지의 ...
김민재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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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자장 넓히고
그 안에 커다란 개성 살린 시인
해방후 조선문학가로 활동
월북해 서른넷 요절전까지 창작
21C 근대문학사 비극적 시간들
그의 작품·기억속에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기를 거쳐 월북 후까지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했던 오장환(吳章煥, 1918~1951)은 여러 모로 한국 현대시의 자장을 ...
유성호
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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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취를 감췄다. 후손들은 그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고, 미서훈 독립운동가로 남았다. 수원청년동맹과 농민조합 활동을 한 변기재 선생은 일제의 투옥과 고문을 이겨낸 독립운동가였다. 해방 뒤 월북했고, 고아로 자란 아들이 나서 서훈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이 3·1 운동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을 중심으로 지식인과 학생들이 주축이 ...
경인일보
20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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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반대했지. '열심히 잘 커라. 건강하게' 이 한마디 하셨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네.”
변씨는 평생 아버지 '변기재'를 지우고 살았다. 딱 한번 만난 아버지가 사회주의자로, 월북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버지가 궁금했지만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그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오산에 살았는데 전쟁 중에 호적이 불타 버렸어. 당시 어머니가 고아원을 했는데 ...
공지영,김학석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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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만세 외치다 총상입고 끌려가
일본의사 치료 거부 강직함 '유명'
김구등과 교류 건국준비위서 활동
월북설등 '행방 묘연' 서훈 못받아
후손들은 우익단체에 고통 겪기도
일본 순사들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아들은 후다닥 방 안으로 뛰어들어와 아버지의 수첩부터 챙겨 마당 ...
공지영,김학석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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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0--]]//-->평론가 조연현은 '청춘극장'을 “침식(寢食)을 잊게 하는 소설”이라 했다.
조연현(1920∼1981)이 누구인가. 그는 주요 문인들이 대거 납·월북하고 타계한 상황에서 김동리와 함께 한국문단을 좌우하던 최대 주주였다. 당대의 문학권력이었던 조연현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한국전쟁 통임에도 하늘을 찔렀던 '청춘극장'의 높은 인기를 ...
경인일보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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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했을까? 한국작가회의 최원식 이사장은 '주류 문단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이라고 분석했다.
최 이사장은 기조 발제에서 “한하운은 당시 문단의 비주류였을 뿐 아니라. 이병철이라는 월북시인에 의해 시인이 됐다는 점에서 색깔론도 제기됐다”며 “이러한 점 때문에 한하운은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한 유령 시인이 됐다”고 했다.
윤진현 문학박사는 “당시 문단으로부터 소외됐던 한하운은 ...
정운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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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문장'지의 시 부문 추천위원을 맡게 되면서 역량 있는 시인들을 문단에 내보냈다. 그의 추천으로 등단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은 해방 후 한국 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월북 시인으로 알려져 그의 시집은 오랫동안 금서목록에 올라 있었다. 모윤숙, 김동리, 박두진 등 많은 문인들이 그의 해금을 탄원하며 정지용 문학의 회복 운동을 벌여왔다. 마침내 결실을 얻어 ...
김윤배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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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 역사소설은 박종화(1901~1981) 천하였다.
이광수·이태준·한설야·박태원 등 주요 작가들이 대거 납·월북하고 현진건과 김동인마저 타개한 작가 부재의 상황에서 오는 역사소설의 공동화를 막아냈다. 이광수 '단종애사'(1928), 김동인 '젊은 그들'(1930)과 '운현궁의 봄'(1933), ...
경인일보
2017-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