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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갸옷갸옷' 등 사물이나 형태를 순화시킨 어조에서도 지방의 특징어를 살필 수 있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파종하고 있는 이 시는 “저승의 무덤 떠나 이승의 꽃밭으로/이사 가는” 할미꽃을, 어린 송아지와의 시선을 통해 되살려낸다. 여기서 우리는 '고개를 갸옷갸옷'하면서 돌아가신 추억 속에 할머니를 상상 속에서 소환하기도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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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난다는 것은 움츠리고 있었던 '관절'을 지상에서 펴는 것과 같다. 어쩌면 인간의 생애가 “뿌드드드 드드 부풀어오르다” 끝내는 죽음으로 '잠잠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구겨진 '종이 뭉치'가 짧은 시간 보여주는 움직임은 꽃이 피고 시들듯이, 사람이 살다가 돌아가듯이, 구겨져 있는 동안의 삶을 대변해 준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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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같은 그리운 얼굴들이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으로 가슴에' 새겨지고.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던 청춘의 날들이었을 터. '가위, 바위, 보' 이긴 자도 진 자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라디오의 싱싱한 잡음'처럼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가' 지는 '꽃 피는 공중전화'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을 뿐.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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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도록' 겨울 같은 삶을 살지 않은 삶은, 진정한 의미의 봄을 맞이할 수 있으니. 보아라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하는 것은 그 안에 상처가 꽃씨가 되고 꽃씨가 '꽃피는 나무'로 자기 몸을 피워낸 것, '아아, 마침내, 끝끝내' 혼이 꽃씨로서 개화할 수 있는 이치가 거기에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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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활이라는 꽃말처럼 시원하게 탁 트인 곳에서, 넘치는 대지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언제나 삶과 죽음으로 '꽃이 만발'한 대자연은 '어머니, 아버지 묻힌 곳'이며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럼 그 꽃이 다 울음이다”라는 전언을 통해 죽음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이면에는 죽음이 살려낸 생명에의 생태학적 상상력에 다가서게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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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인다. 게다가 '이 세상의 꽃들은 모두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는 전언은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꽃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 의미에 부합하는 텍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나에게 묻는다'는 꽃을 통해 세계에 접근하며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라는 것을 비논리적으로 도달하게 만든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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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면 충분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녹록하지 않다. 그러기에 마음의 정원이 서로에게 생명의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장소가 된다면 이상적인 공동체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니. 그것도 누구나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로 서로의 영토를 가질 수 있다면 울타리 없이도 커가는, 향기로운 믿음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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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지 못하는 애절한 인연의 무상함을 가졌기에. 모든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구원은 당신의 자존심이 '웅크린 바위 피운 꽃'에서부터 개화하는 것. 돌아온 제비꽃은 우리가 돌아가지 못할 그곳에서 '그 화해의 수결(手決)을 확실하게 인쇄해놓'은 구원처럼. 용서도 용서하라고 먼저 와서 흔들고 있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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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닿지 않던가. 어느 가을날 '떨어진 불꽃'같은 낙엽을 보면 불꽃처럼 살다가 식어버린 목숨들이 땅에 밟히는 것같이. 이처럼 인생길에서 멀어져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삶이 '가만히 오므린' 증표다.
한때 어딘지 모르는 중심을 잃고 불같은 꽃을 피워낸 누군가의 얼굴을 대변해 준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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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피우기 위해 가시가 필요한 것으로 서로를 위해 서로가 공존한다.
마치 “꽃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가시를 품는 것”처럼 당신의 사람이 '줄기와 잎이 가시로 덮였어도' 사랑하는 연유도 그러하다. 이별처럼 그 꽃이 떨어진 후에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몸의 그리움'으로 있는 것은 가시만 남아 버린 증표이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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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대가 선사하는 세례에 무릎을 굽히는 것이니. 거기에 '벌 나비가 먼저 알고' 찾아오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는 축제의 씨앗을 퍼트리기 위함이다. 여기서 보면 인간은 권력이라는 공인된 힘을 지배의 수단으로 강제적으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매번 개인의 욕망으로 치달아 실패로 돌아가고야 만다는 점에서 꽃의 엔딩이 될 수 없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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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사진이 펼쳐지는 것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향기 날실'이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 보아라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그 무언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당신 마음 깊은 곳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 그러한 사랑이 '그 여린 날갯짓'으로 가을에 개화하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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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고, '흘러가는 강물 위에 저 반짝이는 햇빛을 펄떡이게 하'고, '저 돌멩이에게 중력을 잊고 뜨게 하'고, '저 비행운과 비행운을 맺어' 준다. 당신도 '지금 파란 하늘'가에서 '온천수 같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가. 그것은 가슴 아플수록 뜨거워지는 마지막 기억이 무덤에서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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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때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거기서 안주하는 자는 자신의 '꽃봉오리'도, 세상의 '우듬지'도 만날 수 없다. 그 운명적인 산실에서 수많은 언어의 껍질을 까고, 행간의 시어가 발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나 시를 쓸 수 있어도 누구나 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