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의료인들과의 갈등과 소비자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범국민 건강보호 차원에서 전문대학내에 보청학과를 개설하여 보청기산업 종사자들 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후진양성을 위해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적 뒷받침이요구되며, 또한 이와 유사한 안경사 제도처럼 청각사 면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보청기는 특성상 문진을 거쳐 청력 검사를 실시하고 각 개인의 난청유형에 ...
1996-07-30
... 한국도자예술의 찬란한 전통은 어느 시기에 와서 갑자기 단절되었다. 한국 도자예술의 우수성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1950년대말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의 각 대학들이 미술대학 내에 도예전공을 신설하여 후진양성을 하며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한국대학들의 도자교육은 조선시대의 도자에 이어 20세기의 한국 도자문화를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복잡다난했던 혼란한 시대상황으로 인해 ...
1996-07-24
... 다시 도미, 애틀랜타 미술대학과 위스콘신 주립대학 미술대에 초빙전임강사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도 펼쳤다. 79년 국내에 정착한 후 영남대를 거쳐 81년부터 85년 타계할 때까지 덕성여대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이경성씨는 최씨의 작품에 대해 『그는 세상을 긍정보다는 부정하는 태도로 바라보았고 희극보다는 비극적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비극정신이 최욱경의 예술을 창조하는 근원이 됐다』고 ...
1996-07-10
... 86년에 이어 사후 두번째로 마련된 이번 유작전에는 철과 브론즈를 소재로한 「형상」 「聖家放」등 22점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서울대 미대 조형과를 졸업한 송씨는 60년대 모교인 서울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맹렬히 작품활동을 펼쳐 주목을 받았던 인물. 한국 철조각계의 선구자인 그는 독창적인 조형언어로 한국 현대조각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그는 생활주변에 즐비하던 드럼통을 작도로 ...
1996-06-26
... 일제의 국모시애에 대한 보복과 1911년 「안명근 사건」등으로 두차례나 인천감옥에서 옥고를 치렀고 당시 축조된 인천항 제1부두 공사장에서 강제노역을 당했으며 한때 강화에서 서당훈장으로 후진을 양성하는등 인천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한편 崔箕善인천시장은 지난 4월29일부터 5월16일까지 인천종합문예회관에서 개최된 「「백범 김구 선생의 겨레사랑 인천전」에 참석, 백범 동상건립을 추진하겠다고 ...
1996-06-14
... 것이 아니다. 계획 자체는 매우 이상적으로 돼있으나 검사기관과 전문인력은 부족하고 검사체계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았으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더욱이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농약 잔류검사 등 ... 우리의 현실이니 말이다. 따라서 계획이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되려면 우선 전문검사인력의 확보와 양성, 그리고 선진국수준의 검사체계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 또 유해성 물질의 잔류여부 검출은 매우 ...
1996-06-08
... 차지했다. 금석배는 작년 12월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축구원로였던 故채금석옹의 이름을 따 지난 91년 창설된 대회.현역시절「군산 오토바이」로」명성을 떨쳤고 36년 베를린올림픽 예선서 일본대표로 뛰다 부상해 낙향, 이후 고향인 전북 축구의 정신적인 지주로 후진양성에 열을 불태워온 그의 뜻을 기려 제자들과 전북도민이 한마음으로 금속배를 발족시켰다. 【이해덕기자】
1996-05-15
癌투병 체육인에 溫情 "밀물" 仁川 賈熔淳씨 돕기 일일찻집·주민 격려전화 쇄도 암 말기판정을 받고도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매트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賈熔淳관장(26·인천 로마체육관)의 애틋한 사연이 본보를 통해 보도(3월 20일자)된 이후 賈관장을 돕기 위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지역 20~30대 체육관 관장들의 모임인 ...
1996-04-19
... 벌였던 고인은 1931년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빛과 색채의 조화를 꾀한 표현주의적 경향의 화풍으로 주목을 끌었다. 해방 이후 49년부터 11년간 조선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한 그는 국전 초대작가, 운영위원,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7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76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는 등 화가로서 화려한 명성을 누렸다. 82년 타계 ...
1996-04-12
암과 투병하며 후진양성 조용순씨 "이생명 다할때까지 태권도 지키렵니다" 지난해말 암일종 횡문근육증 말기판정 「세계 최고의 태권도 선수를 만들기 위해 ... 최강의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던 자신의 꿈을 후배를 통해 이루기 위해 초등학교 태권도 선수단을 양성중인 로마태권도장에 사범으로 일하게 된다. 성실성에 탐복한 당시 김학진 로마체육관 관장에게 도장을 ...
1996-03-20
... 골프 클럽을 뺏다시피 하여받아 짊어지고 돈을 받는다. 어쨌든 그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후진국 인도네시아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편의시설과 위락시설을 짓기 시작하고 있다. 호수에는 ...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를 배워서 서투른 안내를 하긴 하지만 아직 학력있는 전문 가이드를 양성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관광의 질이 아직 낮은 것은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투도 마찬가지였다. ...
1996-03-06
... 가곡의 진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어도 생전의 月荷는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소리를 했다. 인기과목을 찾아 젊은 소리꾼들이 자신의 곁을 떠났지만 후진양성을 위해 모든 私財를 털어 가곡 연구소를 건립하기도 했다. 정부의 국악진흥정책의 言語의 성찬이어서 사재를 털지 않고는 가곡이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 버릴것 같은 노파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영삼 ...
1996-01-06
... 마지막으로 가곡을 익힌 그는 시조에 입문한지 8년만에 단연 여창가곡의 일인자로 떠올랐다.73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그는 지난 68년 이래 매년 1~2명의 국악도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후진 양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학생시절 그의 장학금을 받은 장학생중의 한명인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김영동씨는『명창이 얼마 안되는 정가,가곡에서 그만한 목소리를 지닌 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
199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