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서조선' 발행
158호 弔蛙 통해 '한두 마리는 살아남듯' 말살정책 극복의지 표현
해방 후 장봉도 푸른학원 이어받아 빈민구호·교육사업에도 힘써
태평양전쟁 발발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초반 서울에서 발행된 한 기독교 잡지 첫 장에 의미심장한 내용의 권두언이 실렸다.
권두언의 제목은 개구리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의 ...
김민재
2019-08-22
-
... 산분해간장은 일본 식민지 유산입니다'이란 주제로 일제의 대표적인 적폐식품인 산분해간장 추방을 첫번째 실행과제로 제시했다.
산분해간장은 청산되어야 할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식품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물자로 한반도에 들어왔다.
산분해간장은 콩을 발효하지 않고 염산으로 단백질을 분리해서 만든 간장맛 소스다. 미생물이 진행하는 발효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간장이 아니다.
단백질을 ...
이종우
2019-08-16
-
... 조선과 전혀 다르다. 이에 반해 아베 정권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당시 정한론 논쟁처럼 내부 모순을 외부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임진왜란, 정한론,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등 위기를 외부 침략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내부는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로 단속했다. 그만큼 위기에 약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끝은 엄청난 패망이었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김준현 ...
김준현
2019-08-09
-
... '양주성금속비'를 각각 시유형문화재(77호)와 문화재자료(29호)로 지정하고 29일 이를 고시했다.
명대철제도종(제작시기 1638년)은 중국 허난성(河南省) 태산행궁에 걸려있던 도교 범종으로 일제가 태평양 전쟁 시기 무기 원료로 사용하려고 부평 조병창으로 공출해 왔다.
이 범종은 해방 이후 다른 쇠붙이들과 함께 조병창에 있던 것인데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져 원대철제범종(시유형문화재 3호), ...
김민재
2019-07-30
-
...
DMZ내에 북한등 피해국들 함께
역사적 교훈 남길 '박물관' 건립을
지난 27일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여한 김원웅 광복회장이 “항일독립투쟁을 공감대로 남북교류협력을 ... 제안했다.
김 회장은 “이번 대회 본 행사 발표를 통해 DMZ 내에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피해국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박물관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며 “전쟁을 통해 자행되는 ...
신지영
2019-07-30
-
일제 강제동원 규명·사죄 촉구에
11개국 300여명 공동노력 뜻모아
제2차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가 아시아 11개 국가,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 나온 것”이라며 “이는 과거 죄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조선 식민지 지배의 향수를 자극해 전쟁 가능한 국가를 실현하고 군사대국화로 가기 위한 속심의 발로”라고 발언했다.
또 “최근 조선반도에서는 ...
신지영
2019-07-29
-
... 뜻모아
아베정부 보복조치 규탄공동선언도
이용수 할머니 “北, 위안부 해결을”
제2차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가 아시아 11개 국가,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 국가와 국민들 앞에 진솔하게 사죄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라며 “일본이 과거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준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
신지영
2019-07-29
-
...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갔다. “미국 사람을 겁내지 마시오.” 그는 자기 모국어로 말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4년 9월. 미 해병대가 치른 '사이판 전투'에 소위로 참전한 종군기자 ... 만행을 우리 동포에게 알리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조광원 신부는 '한인자...
김주엽
2019-07-18
-
... 조치로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가 시끄럽다.
일본 정부가 공개한 통계를 토대로 우리 정부가 추산한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인원은 782만여명에 달한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제외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들 대부분은 태평양전쟁에 일본군과 노동자로 강제동원돼 이름도 모르는 섬에서 죽어갔다.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강제로 끌려간 ...
김주엽
2019-07-18
-
... '세 개의 마름모'를 뜻하는 '三菱'(삼릉)을 한자로 쓰는 지역은 인천 부평이 유일하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이어진 일제강점기 말, 미쓰비시는 일본 군함도 탄광 등 국내외 수많은 사업장에 한국인 10만명 이상을 강제 징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9년 인천 부평에는 전쟁물자를 찍어내기 위한 한반도 최대규모 군수기지인 일본 육군 조병창이 들어섰다.
미쓰비시는 1942년 ...
박경호
2019-07-09
-
... 공장건축비 및 기타비용을 부담했으며 경도직물은 직기 및 부대설비를 각각 현물 출자했다.
중·일전쟁(1937~1945) 발발 이후 일본이 만주 일대를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일본상품시장도 덩달아 ... 100여대와 염색가공 설비, 보일러, 기숙사 등을 완비하고 종업원 200여명(남자 약 40명)으로 태평양전쟁 와중인 1943년 봄부터 인견과 시루빠(Silver)를 직조했다.
나날이 급증하는 수요에 ...
이한구
2019-06-18
-
... 떠났다. 일본 지방재판소는 우리나라 1심법원에 해당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최대 신사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장소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등을 포함해 약 246만명이 이곳에 합사돼 있다. 이중 조선인은 약 2만1천명으로 추정된다.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징용 피해자들이 침략전쟁의 자발적 참여자로 추앙받고 있는 셈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07년에 이어 ...
공승배
2019-05-29
-
... 나갔습니다. 사할린에 혼자된 부인들이 많았던 이유입니다. 6개월이나 지났을까요. 일제는 아버지와 오빠를 일본 남쪽 끝 규슈의 탄광으로 옮겼습니다. 생이별이었고, 그게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 사할린은 옛 소련 땅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거기서 15년 넘게 방직공장에 다녔습니다. 그 덕분에 아직도 러시아 돈으로 연금을 받기는 합니다. 스물이 되었을 때 역시 사할린에 징용돼 ...
박경호
2019-05-28
-
... 위치를 가늠해 본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생 그의 성장기 전체는 일제 강점기에 걸쳐졌다. 태평양 전쟁과 이후 육이오 한국전쟁을 통하여 문학의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초점화할 수 있었다. 최인훈은 ... 3개월여를 인민군 치하에서 보낸다. 다시 1·4 후퇴 이후의 정적 감도는 서울에 남은 끝에 전쟁의 죽음과 폐허, 모순과 불합리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
이 선생의 첫 작품은 ...
방민호
2019-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