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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상황도 감수했다”며 “묘역이 등산로 옆이라서 훼손 우려가 있고 석물 도난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문화재로서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묘역에서 조선의 대표적인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로 쓰인 묘지석이 발굴돼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묘지석 자체만으로도 문화재급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인천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중 문화재위원회가 개최될 ...
박경호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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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물의
훼손의도없어 연수구 경고 그쳐
전문가 “귀중 유물 세심한 보호”
지역사회차원 지원 목소리 커져
인천 연수구 영일 정씨 집안의 묘역에서 발굴된 조선의 대표적인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6월 11일자 1·3면, 6월 12일자 1면 보도)는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존재 자체가 문화재급으로 평가받는 유물인 만큼 민간 차원인 ...
박경호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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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우량 선생 묘소서 발굴 묘지 2기
'동국진체' 완성한 조선후기 이광사 작품
문화와 문명 발전시켜 온 기록의 힘 증명
새로운 인천 문화정책 구현 가늠자 되길
얼마 전 인천에서는 작지만 매우 귀한 발굴 작업이 있었다. 지난 6월 11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 영일 정씨 묘역에서 묘지(墓誌) 발굴이 이루어졌다. 우의정을 ...
정진오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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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것 같아”
붕당의 '붕'자 삐뚤게 써 소신 반영
임학성 교수·남달우 소장 연구 맡아
인천 연수구 영일 정씨 집안의 묘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조선의 대표적인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글씨(6월 11일자 1·3면 보도)를 인천의 국가문화재로 만드는 작업이 추진된다.
영일 정씨 판결사공·승지공파 종중은 11일 오전 동춘동 선영에서 학남(鶴南) ...
박경호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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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교체로 쓴 정우량 선생 묘지석
영일 정씨 종중, 오늘 발굴 '보존'
인천 연수구 동춘동 '영일 정씨' 집안의 묘역에 묻혔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글씨가 빛을 보게 됐다.
영일 정씨 판결사공·승지공파 종중은 11일 오전 동춘동 묘역에 있는 문충공(文忠公) 정우량(鄭羽良, 1692~1754) 선생의 묘를 ...
박경호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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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로 서체비교 의미
인천 연수구 동춘동 '영일 정씨' 묘역 내 정우량(鄭羽良·1692~1754) 선생 묘에 묻힌 묘지석에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묘지석 글씨를 쓴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는 강화와 인연이 깊어 인천의 인물로 분류할 수 있다.
소론계열 명문가 후손인 이광사는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 노론이 득세하면서 집안이 몰락했다. ...
박경호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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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샘이 숨었다'하여 '천은사'라 이름을 바꿨다.
이후 원인 모를 화재가 끊이지 않자,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 두려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필체인 수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를 써 일주문 현판을 달았더니, 다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판글씨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세로로 쓴 이유가 여기에 ...
박정욱
201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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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 인천시민의 행사로 개최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강화양명학은 인천 강화에서 배태심화된 사상으로 한국 근대사상과 민족독립 사상의 중요한 원천이 된 사상이기 때문에 인천의중요한 정신문화자원이다.
하곡선생을 비롯한 이광사 이광려 이광명 등 강화학파인물들의 사상과 실천을 계승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인천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기를 바란다.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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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 인천시민의 행사로 개최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강화양명학은 인천 강화에서 배태심화된 사상으로 한국 근대사상과 민족독립 사상의 중요한 원천이 된 사상이기 때문에 인천의중요한 정신문화자원이다.
하곡선생을 비롯한 이광사 이광려 이광명 등 강화학파인물들의 사상과 실천을 계승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인천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기를 바란다.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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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분보다 인륜을 택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코자 노력했던점은 높이평가할수 있다.
이념과 가치를 넘어 가장 존중받아야 할 덕목은 인간에 대한 사랑 과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 이기 때문이다.
이경석 신도비.왼쪽이 원래의 것으로 박세당이 짓고 당대의 명필 이광사가 썼다.
오른쪽은 후손이최근에 세운 것. /경기문화재단 문화유산본부 제공예술회관제공문화유산본부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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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로 이주했고 이는 강화학파의 태동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정제두가 강화도로 이주하자, 정제두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인물이 강화도를 찾았다.
정제두의 제자가 되고자 이광명과 이광사·신대우 등이 강화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정제두를 스승으로 모셨고, 정제두 가족과 혼인 등으로 연을 맺었
다. 양명학이 강화도라는 지역에서 혈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최재목 ...
박성현,정운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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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제두 양명학의 대부 12.이형상 지방수령의 모범 13.김재로 20 년간 정승을 지낸 관료 학인 14.정우량 영조의 총애 속에 정승에 오르다 15. 윤동규 조선 성리학의 정점 16.이광사 조선의 독자적인 필법을 개발하다 17.이승훈 조선 천주교를 세우다 18.어재연 외세에 맞서 죽음을 택한 장군 개항기 19.강화석 근대교육의 선구자 20.이건승 양명학자 21.연기우 강화 ...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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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평대군,김구, 양사언, 한석봉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또 양송체(兩宋體)라 불린 송시열과 송준길의 글씨, 김수증의 예서를 일컫는 곡운체(谷雲體) 의 대표작들도 소개된다.
동국진체로 이름난 윤순 이광사,정조가 가장 아꼈던 조윤형의 수준 높은 글씨들도 감상할 수 있고,추사 김정희와 그 제자 흥선대원군의 글씨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람회에서는 이처럼 조선시대 최고 명필들의 이름난 비석 글씨들을 ...
201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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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라고 요약한다.
이런 만남은 서로가 잘 준비돼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강화학파의 계보를 이으며, 원교체란 독특한 서체를 완성한 위대한 서예가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와 그의 친구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의 만남도 예사롭지 않다.
상고당은 18세기 조선의 대표적 서화(書畵) 수집가였다.
당시 중국이나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서체는 모두 상고당의 ...
201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