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에 대한 정책이 조금씩 개선됐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3·4세대 젊은 화교들은 대만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차별과 배척은 많이 개선됐으나, 한국에서 일하고 일상을 보내면서 마주하는 '장벽'이 젊은 화교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로 다가오는 것이다.서울에서 중식당을 운영...
유진주;한달수 2022-08-31
화교가 한국사회에 정착해 살아온 시간은 140년 가까이 된다. 화교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화교를 우리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고 자신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 구성원으로 온전히 품지 못하고 '외국인'과 '국민' 사이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교를 '...
김성호;유진주 2022-08-31
#인천 중구 북성동에 사는 60대 화교 A씨는 지적장애가 있는 남편과 딸을 대신해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허리가 굽어 절룩거리면서도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나 최근 남편의 가정폭력에 이어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져 A씨는 식당 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올해 초에는 통신요금을 내지 못해 가족의 휴대폰이 모두 ...
한달수;유진주 2022-08-30
140년 전 한반도에 터를 잡은 화교들의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화교'라는 호칭보다는 다른 경멸의 호칭으로 더 자주 불렸다. 이 땅의 엄연한 정주자임에도 한국사회의 배척 대상이 되곤 했다. 일제의 농간에 억울한 희생양이 되며 '화교배척사건'을 겪었다. 해방 이후에는 토지 소유권을 제한받았고, 매번 거주 허가도 받아야 했다. 납세 등의 의무는 대...
김성호;한달수 2022-08-30
저희는 인천시민의 한 구성원입니다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사는 주희풍(47)씨는 화교다. 공작원이었던 그의 할아버지가 1930년대 항일운동을 위해 대만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그의 아버지는 1948년 인천에서 출생했고, 1975년 주희풍씨가 태어났다. 친누나와 친형의 아이들까지 치면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관련기사 3면 ([가장 오...
유진주 2022-08-29
화교(華僑)가 한반도에 정착해 살아온 시간은 140년이나 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격동의 한반도 역사를 그들도 함께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펼쳤고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는 이 땅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섰다. 중공군과 싸우기도 했다.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의 아픔을 겪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화교가 겪은 역사적 경험이 ...
김성호;한달수 2022-08-29
2022-08-31 01면
한국 생활 '장벽' 3·4세대 정체성 혼란
2022-08-31 03면
“동화 강요하지 않는 공존을… 신·구 화교 구분해서 봐야”
2022-08-30 01면
한국도 대만서도 '평생' 돌봄혜택 못보고 산다
2022-08-30 03면
국민 의무 다해도 '배제 대상'… '혜택'보다 '차별'에 길들여지다
2022-08-29 01면
토박이 뿌리 내렸지만 '서러운 대한외국인'
2022-08-29 03면
어두운 역사적 경험… 우리와 다르지 않은 '140년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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