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에 조성됐다. 일제는 경기도 내륙의 쌀 등 각종 곡식을 인천항을 통해 수탈하고자 수인선 건설사업을 추진했다. 수인선 건설은 송도유원지 조성을 부채질하는 계기가 됐다. 1936년 송도유원주식회사가 창립해 인공해수욕장과 각종 놀이·편의시설을 갖춘 송도유원지를 조성·개장했다. 하지만 송도유원지를 종합휴양지로 만들려는 일제의 계획은 해방을 맞으면서 무산됐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으로 참전한 ...
조경욱 2024-10-10
... 따르면 송도유원지 조성사업은 문학산 일대를 국제관광단지로 만들겠다는 당시 인천시의 시책사업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일제는 청량산을 '송도금강(松島金剛)'으로까지 불렀던 사실도 알 수 있다.송도유원주식회사의 상무였던 후지모토 겐이치가 월간잡지 '경성잡필' 1936년 12월호에서 쓴 '송도유원을 말한다'란 글에는 송도유원지 조성이 '관광 인천'을 내세웠던 시책사업으로, 또한 경성(서울)의 유원지로 ...
정진오 2005-12-15
... 나가이(永井)가 주축이 돼 추진했으며,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가졌던 경성(서울)의 유지들의 임해별장지 조성과도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 글은 당시 송도유원지 조성을 맡았던 송도유원주식회사의 상무가 쓴 것이어서 신빙성이 높다.이런 탓에 8·15 해방직후인 1946년 인천시 지명위원회는 왜색 동명을 우리말로 고치면서 '송도정(松島町)'을 '옥련동'으로 바꾸기도 했다.이희환씨는 “더 ...
... 곳은 요즘의 부동산 개발 방식처럼 예전에도 토지를 매각해 개발비용으로 충당했다는 지적이 많다. 송도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개발열풍에 시달렸던 것이다. 인천학연구원은 11일 1936년께 '송도유원주식회사'가 실시한 송도 별장지 분양에서 일본 여인들이 대상 토지를 낙찰받기 위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사진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 사진은 현 인천시립박물관 자리인 연수구 청량산 일대를 깎아서 만든 ...
정진오 2005-07-12
... 섬도 아닌 뭍에다 붙인 억지 지명인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조선을 강점한 이후 저들의 명승지인 '송도'라는 지명을 여러 곳에 마구 갖다 붙였다. 1913년 부산에서 일본거류민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부산시 서구 진정산 동쪽 해변을 송도해수욕장으로 개발하면서 이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포항에서는 일본인 지주 대내치랑(大內治郞)이 분도(分島)의 백사장을 대여 받아 소나무를 심어 ...
경인일보 2005-06-29
2024-10-10 10면
'송도유원지' 일대 이대로 두나
2011-08-30 03면
2005-12-15 01면
2005-12-15 03면
2005-06-29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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