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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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희망 빠뜨리는 法도 있네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⑨]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작년 5월 국회서 제정후 경매 중단·우선매수권 부여LH 매입후 거주·저금리 대출·분할 상환 마련됐지만드러난 허점에 피해자들 발걸음 여전히 국회로 향해신용도에 발목잡히고 설계도면 달라 공공매입 불가 등생활고·빚더미 갇힌 이들 도와줄 '先구제 後회수' 원해여야 합의 불발에 개정안 표류… 국토부 반대 입장 표명 특별하지않은법 서울 여의도 국회로 취재를 갔을 때 일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5개월 만인 2023년 11월21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 모색을 위한 전국 피해자 간담회'가 열렸다. 전세사기·깡통전세 전국 대책위원회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야당 의원들에게 제안해 성사된 자리다. 평소 자주 보던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주민들도 왔다.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빼곡하게 앉은 참석자들 사이로 '국토교통부' 명패가 놓인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저 의아했다. 기자와 달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그 상황이 익숙한 듯했다.앞서 그해 2월8일 국회에서 열린 '미추홀구 깡통전세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한시가 급하다. 경매를 멈춰달라"는 피해자들의 절규에 당시 참석한 국회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개별 법정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토부를 대표해서 나온 고위 공무원도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를 직접 매입해달라"는 요구에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했다.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틈이 날 때마다 국회를 찾아갔다.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천막 농성….현행법으로는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특별법을 만들어 주세요 이들의 요구는 한결 같았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인 '건축왕' 남헌기(62) 일당에게 속은 행복마을 주민들에겐 특별법 제정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믿었다. 그해 2월부터 삶을 비관한 20~30대 청년 등 4명을 잇따라 떠나보낸 이들이었다.인천 등 전국에서 희생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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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가 만든 터전, 속아서 무너진 일상… '당신 잘못이 아니다'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⑩·끝]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이달 기준 전국 특별법상 '피해자' 1만2928명 달해유례없던 사건들…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드러나 찍지 못한 마침표전세사기는 자산 양극화 시대가 만들어낸 주거 불안의 결과물이다. 평범한 서민들은 초고층의 호화로운 아파트를 사기 어렵다. 이들은 조금이나마 양극화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시의 전세를 택했다. 사기꾼들은 주거 불안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도시화 이면에 가려진 그늘을 시대에 맞는 정책으로 지워내야 한다.- 김태근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세입자114) 변호사집은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이다. 선명히 보이지만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우리는 '전세'라는 사다리를 타고 별에 다가서고 있다. 그런데 사기꾼들에게서 받은 사다리는 썩어있었고, 우리는 거기서 떨어졌다. 피해자들은 국가에 별을 따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사다리에서 떨어진 이들을 치료해주고 사다리만 고쳐주는 것을 바랄 뿐이다.- '전세지옥' 저자 최지수 '건축왕' 남헌기(62) 일당에게 속아 벼랑 끝에 몰린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주민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싼값에 전세계약을 맺은 게 잘못 아니냐"는 냉담한 시선이나 손가락질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며 주민들을 위로하는 이들이다. 김태근 변호사와 최지수 작가도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듯 살아가는 행복마을 주민들의 곁을 지키는, 그런 사람들(2023년 12월21일자 6면 보도=[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11·끝)] 아픔에도 서로를 먼저 생각한 이웃들)이다.행복마을 주민들은 1억원 미만의 돈으로 도시의 전셋집을 마련했다. 대단지 아파트를 살만한 형편이 안됐다. 그저 남들처럼 살기 위해 일자리, 교통편, 학교, 병원 등이 있는 곳으로 향한 게 행복마을이었다. 2년마다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도심 대단지 아파트 주위에만 형성되는 '행복'을 잠시 빌렸던 것이다.전국 곳곳에 이런 행복마을이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시작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의 비극은 행복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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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등치는 세상… 희망은 등지지 않는다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⑧]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下)] 미완의 이야기 경매에 넘어간 집 호수가 호칭으로'201호' 건축왕 피해자중 첫 희생자그가 간뒤 주민간 이름 부르기 시작1주기 추모제 "당신을 잊지 않겠다" 요셉이 남긴 것 201호님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주민들이 8단지 201호에 살던 세입자 요셉(38·가명)을 부르던 이름은 '201호'였다. 벼랑 끝에 선 주민들은 굳이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경매에 넘어간 '집'이 자연스레 자신들의 이름이 됐던 것이다.주민들이 실제 이름을 서로 부르기 시작한 건 2023년 봄이 찾아오고서부터다.앞서 그해 2월 요셉이 세상을 등졌다. '건축왕' 남헌기(62) 일당의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그였다.한 주민이 끝내 삶의 끈을 놓았다는 비보가 행복마을에 전해졌다. 수소문해 인천 미추홀구 한 영안실로 이웃 주민들이 달려갔다. 하지만 영안실 모니터에 보이는 고인들의 이름을 보고도 숨진 이웃이 누구인지 주민들은 몰랐다. 영안실 직원한테 묻고 나서야 고인이 '8단지 201호'이고, 그의 이름이 요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괴로워하던 요셉의 얼굴이 떠올랐다.요셉은 2021년 10월 행복마을로 이사왔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왕래하는 이웃이 적었다. 이듬해 가을 어느 날 요셉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법원의 통지서였다. 형님, 저 이 돈(전세보증금) 없으면 정말 죽습니다. 요셉은 이웃 주민들과 대책회의를 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에다가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부모에게 손을 벌려 겨우 마련한 전세보증금 7천만원은 요셉의 전 재산이었다. 답답한 심정에 임대인에게 연락해 윽박도 질러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요셉은 숨지기 20일 전에 국회에서 열린 '미추홀구 깡통전세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했다. 주민들은 국회가 나서니 곧 해결책이 나오리라 굳게 믿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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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내몰린 생존권… '법 밖에' 놓인 아픔 보듬다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⑤]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中)] 1년 6개월의 기록 '건축왕' 남헌기 재판 308일만에 1심 선고피해자 안타까운 사연·호소 곳곳 눈물바다법정 최고형에도 이례적 '개정 입법' 역설"판사님, 우리 이해해주신듯" 뜻밖의 위로 118쪽짜리 판결문 빨리 오세요! 곧 시작해요 2024년 2월7일. 인천지법 324호 앞에 취재진이 몰렸다.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수백억원을 앗아간 '건축왕' 남헌기(62)의 1심 선고 재판이 열린 날이다.전세사기 피해자인 주민들이 법정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기자를 유독 반겼다. 이 사건이 불거진 뒤 1년6개월여 동안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지역신문 기자가 혹시라도 인파에 밀려 재판을 보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법정 경위가 재판 전 취재진 자리를 안내하자 주민들이 "기자님이 제일 먼저 들어가셔야죠"라며 등을 떠밀었다.취재진과 주민들로 법정은 가득 찼다. 재판장인 오기두 판사와 연녹색 수의를 입은 남헌기 등 일당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자 고요했던 법정의 정적은 깨졌다.이날 재판의 쟁점은 1차 기소된 남씨 사건에 대한 사기죄 인정 여부였다. 남헌기 일당은 행복마을 주민 191명을 속여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법정에 섰다.이 재판은 봄비가 거셌던 2023년 4월5일부터 장장 308일간 이어졌다. 남헌기 일당의 거듭된 증인 출석 요구에 주민들도 생계를 뒤로하고 50차례 넘게 법정에 불려 나와야 했다.정년퇴임을 앞둔 오 판사는 그동안 재판에 출석한 피해자들의 호소와 사연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법의 날'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어요.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우리를 도와줘요' 이런 노래 가사가 나와 있습니다. 지금같이 제가 제 돈을 찾지 못한다면 60이 넘은 나이에 은행 빚을 5천만원을 갚아야 하는데 그것을 갚지 못하면 저 역시 앞서간 세 사람, 네 사람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A씨우리는 365일 야간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월급이 200만원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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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깊게 파인 홈(Home)… 벼랑끝 사투는 '현재진행형'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⑥]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작년 6월 특별법 마련했지만 한계 명확'최우선 변제금 대상' 전체중 51.7%만87.1% 경제적 어려움… 92.7% 우울감 천막 농성장 2023년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천막 농성장에서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주민들과 함께 머물던 지수(활동명)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대단한 사람들이다." 행복마을 주민들이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을 때다. 벼랑 끝 삶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 주민들이 그저 대단하게 느껴졌다.지수는 이른바 '주거빈곤' 세대로 불리는 사회초년생 등 청년들을 돕는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 활동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건축왕' 남헌기(62) 일당에 속아 보증금을 떼인 청년 등 4명이 그해 2~5월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나도 죽어야 (정부) 대책이 마련될까요?- 피해자 D씨그런 말 절대 하지 마세요- 지수행복마을 주민들은 특별법 제정에 주저하던 정부와 국회의 답답한 모습에 지쳐가고 있었다.전세사기 피해 구제 방안이 담긴 특별법은 그해 6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란 이름의 이 법에 따라 뒤늦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한계가 명확했다.잠시 멈췄던 전셋집 경매는 속속 재개됐다. 주민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어느덧 입춘을 맞이한 2024년 2월은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이 벌어진 지 1년6개월, 그리고 특별법이 시행된 지 9개월이 지난 시점이다.지수는 그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은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주민들을 통해 알고 지내던 한 지역신문 기자가 실태조사를 함께 해보자고 제안해 흔쾌히 수락했다.하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행복마을 주민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이런 조사만 벌써 몇 번 했다. 무슨 도움이 됐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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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희망의 덫' 묶인채… 이도저도 못하는 주민들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⑦]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학교·출퇴근 근접성 매력적인 조건들전재산 잃고 새출발 여력 없어 골머리 전세사기 거미줄 법정에서 '건축왕' 남헌기(62) 일당 재판을 지켜보던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2단지 주민 호준(43·가명)의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그의 가방엔 다시 시작된 경매를 미뤄달라는 탄원서가 들어 있었다. 재판이 끝나면 곧바로 법원 경매계에 낼 생각이었다.'징역 4년'. 이는 호준을 속여 전세 계약을 했던 속칭 '바지' 집주인에게 내려진 형벌이다."애가 곧 100일인데 열흘만 시간을 주세요." 호준은 전 재산은 물론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가짜 집주인이 재판장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전세사기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이혼했다는 분도 있다는데….- 호준호준은 행복마을로 처음 이사 온 날을 떠올렸다. 10년 전 작은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호준 부부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차곡차곡 모은 돈을 보증금에 보태며 조금씩 집을 넓혀가는 게 부부의 행복이었다.희소병을 앓는 아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이 근처에 있는 집. 부부의 종잣돈 7천만원 정도로 구할 수 있는 집. 그렇게 부부는 2017년 행복마을 2단지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행복마을이 부부의 종착지는 아니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면 아이를 낳고 큰 집으로 이사할 계획도 세웠다. 행복마을에선 수도권인데도 보증금이 1억원을 넘지 않는 아파트 전셋집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에서도 행복마을 아파트와 빌라 등은 인기였다. 직장이 서울에 있더라도 충분히 출퇴근이 가능한 위치다. 주변에 아이를 보낼 학교도 많다.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건물이 깔끔하고 주차 공간도 넉넉한 편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살기도 좋다. 조건을 맞추다 보니 오게 된 거예요'거미줄'에 걸린 거죠 호준은 그런 행복마을이 못된 사기꾼들이 쳐 놓은 거미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주민들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마련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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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파고든 '범죄'… 2700여개의 '시한폭탄'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④]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명의 신탁해 대출… '돌려막기식' 임대'제도적 문제' 10년 전에도 유사한 사례 '건축왕' 남헌기 남헌기(62). 그 사람이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댄 건 2010년대 초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 등지에서 경매에 싸게 나온 집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런 집을 세놓고, 그러다 돈이 모이면 대출을 받아 직접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지금은 2천700여개에 달하는 집이 그 사람 소유입니다. 물론 모두 본인 명의는 아니죠. 명의를 신탁해 은행 대출을 최대한 끌어왔어요. 명의를 신탁한 사람에게는 대출금의 1% 정도를 보상으로 지급했습니다.이런 집들을 소개하고 중개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50여 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어요.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공격적으로 집을 홍보했습니다.사통팔달이라고 하죠. 특히 미추홀구는 교통 요지에 학교도 많고, 주위 시세보다 저렴하고. 나름 매력적이죠. 근데 집에 근저당이 잡혀 있어서 세입자가 계약을 꺼릴 때가 있어요. 그럼 공인중개사가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대신 갚겠다는 이행각서를 써줍니다. 하지만 이 각서는 법적 효력이 없어요. 세입자는 그냥 공인중개사를 믿고 계약하는 거죠. 나라에서 공인한 사람이 사기를 칠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사실 부동산을 조금만 알아도 구조가 이상하다는 게 바로 보이거든요. 자기 자본 없이 전세보증금에 은행 대출을 더해서 집을 짓고 임대사업을 하는 구조입니다. 카드 돌려막기식으로 이 집 보증금으로 저 집 보증금을 갚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공인중개사들도 돈의 유혹을 못 참았던 거죠. 계약을 마치면 성과급을 주니까요. 보기엔 이상했어도 '설마 큰일 나겠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이런 구조의 임대사업은 비싼 아파트로는 못해요. 시중은행에 한도가 1억~2억원 수준인 전세대출 상품이 많고, 또 그런 상품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이런 집을 찾는 사람들은 다 평범한 서민들이에요.어떤 사람들은 이 구조를 모르니까 "세입자들이 멍청해서 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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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별 당한 세가족, 누가 그들의 '일상'을 앗아갔나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②]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결혼전 모았던 전재산 8500만원, 돌려받지 못해아빠 투잡·엄마 알바… 함께살 '희망' 놓지않아 '아빠 집' 가는날엄마, 우리는 왜 아빠랑 따로 살아요?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1단지 전셋집들이 속속 경매에 부쳐진 2023년 2월. 502호에 사는 성찬(38)·서형(34·이상 가명) 부부는 1층에 주차된 이삿짐 트럭에 분주히 짐을 옮기고 있었다. 부부에게 6살 아들 혜수(가명)는 해맑은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성찬은 아무런 말 없이 혜수의 겉옷 단추를 잠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졌다.부부가 함께 사용하던 침대도, 아내 화장대도, 혜수가 앉아 그림을 그리던 작은 책상도, 아내와 아이의 옷가지도 모두 이삿짐 차에 실렸다. 거실엔 성찬의 짐만 외롭게 남겨졌다. 이삿짐 트럭은 서형의 친정인 충남 금산으로 출발했다. 소풍을 가는 것처럼 기분이 좋은듯 혜수는 콧노래를 불렀다.차로 3시간 달려 금산에 도착한 부부는 부지런히 짐을 풀었다.혜수야 엄마랑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열 밤만 자면 아빠 또 올게 성찬이 혜수를 꼭 껴안았다. 성찬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왈칵 눈물을 쏟는 아들을 두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집주인에게 돌려받지 못한 8천500만원은 부부가 결혼 전 모은 전 재산이었다.곧 유치원에 들어갈 혜수를 위해 부부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성찬은 빠듯한 생활비와 이사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잡'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8시부터 지게차를 몰다 오후 5시30분에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다. 그에게 허락된 수면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남들은 퇴근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저녁 8시30분이면 옷을 갈아입고 두 번째 출근을 했다. 성찬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동이 틀 때까지 연안부두에서 수산물을 옮겼다. 매월 나오는 관리비 10만원이 아까워 성찬은 야간작업장에서 제공하는 숙소로 들어가는 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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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놓은 해머던지기 국대 출신… 사라진 희망에 '죽음으로 외침'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③]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어려운 가정형편속 꿋꿋이 생활… 여동생과 서로 의지 성장증액한 전세보증금 소액임차인 기준 벗어나 한푼도 못 받아 1202호의 탄원서 2022년 봄,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1단지 세입자 효선(31·가명)에게도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리고 1년 뒤인 이듬해 봄, 효선은 세상을 등졌다. 늘 밝고 씩씩한 청년이었다. 같이 버티자고 약속했던 이웃 주민들은 뜻밖의 비보에 그저 허망할 수밖에 없었다. 효선은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출신이다. 고교 시절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효선은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부모와 떨어져 살며 때로는 친척 집을 전전했지만 흔들림 없이 꿈을 향해 나아갔다. 특히 그를 버티게 한 힘은 4살 아래 여동생 지선(가명)이었다.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구김 없이 잘 성장했다. 가장이나 다름없던 효선은 소속팀을 옮기며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효선은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하며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전셋집을 찾던 효선은 2019년 9월 행복마을 1단지 1202호에 입주했다. 선수 시절 착실하게 모아둔 7천200만원으로 보증금을 냈다. 효선은 이사 오고 2년 뒤, 20년 가까이 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인천에는 연고도, 지인도 없었다. 효선은 은퇴 후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외로운 타지 생활을 시작한 효선의 유일한 말동무는 역시나 동생이었다. 여러모로 쪼들려 힘들 법도 한데 지선과 통화할 때면 언제나 밝은 목소리였다. 나, 다른 일 알아봐야 할 것 같아지선은 어느 날 지나가는 듯한 언니의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던 언니였기 때문이다.효선의 전셋집 보증금은 재계약 당시 9천만원으로 올랐다. 아르바이트 등 하는 일은 벌이가 변변치 않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2022년 3월부터 행복마을 1단지 집들이 속속 경매에 넘어갔다. 효선의 전셋집도 그랬다. 지선은 그해 연말이 돼서야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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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행복' 계약서에 속다… 집 빼앗긴 삶, 삶 가로챈 집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①] 지면기사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上)] 행복마을 사람들 관리업체 감감무소식에 입주민 대책회의전셋집 잇단 경매통지서에 다급해진 마음1년6개월간 쫓겨나거나 삶의 끈 놓기도 인천 미추홀구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일명 '건축왕' 남헌기(62)에게 보증금을 떼인 청년 등이 신변을 비관해 잇따라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건축왕이 지은 아파트와 빌라 등 수많은 건물 이름에는 역설적이게도 '행복'이란 단어가 많이 쓰였다.이 사건이 불거진 뒤 1년 6개월여 동안 경인일보 기자들은 피해자들을 만나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다. 희생자 1주기 추모제에 맞춰 그동안 독자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벼랑 끝 삶과 이를 지켜본 기자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장 난 엘리베이터 인천 미추홀구청에서 숭의오거리 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행복마을' 1단지가 나온다. 전셋집 보증금 시세는 8천만~1억원 정도로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 경인전철 1호선 제물포역과 가까워 서울로 출퇴근하기도 좋다. 버스를 타고 조금만 가면 아이들이 다닐 만한 학교들도 있다. 1단지 말고도 행복마을에는 이런 단지가 수십 개 있다. 가구수로만 보면 2천700여 가구에 달한다.행복마을 1단지는 60가구가 사는 작은 아파트다. 도심 여느 단지처럼 이웃 간 왕래가 적고 층간소음 등으로 소소한 갈등도 있다. 청년부터 신혼부부, 노인가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어색했던 입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2022년 8월 여름이다. 6월부터 이어진 장마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고치겠다"고 했던 아파트 관리업체는 한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걸어서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던 주민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채팅방을 만들었으니 의견을 나눕시다'. 현관문 앞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주민 60여 명이 속속 카카오톡 채팅방에 입장했다. 주민들은 약속한 날 밤 옥상에서 대책회의를 열었다. 주민 여럿이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색한 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