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 [춘추칼럼] 보수의 '재(再)구성'이 필요하다

    [춘추칼럼] 보수의 '재(再)구성'이 필요하다 지면기사

    '정권·윤석열 심판'… 국민의힘 총선 참패여권조차도 "국민들 불통·민심 외면 느껴"전당대회 룰 개선과 성찰위한 백서 만들고현 체제 지속가능한지 답하는 대안 찾아야'정권 심판론'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국민의힘 참패'라고 쓰고 '윤석열 심판'이라고 읽는다. '비정상적 국정기조', '오만과 일방적 불통의 국정운영', 그리고 독선적 '검사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평가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대패의 책임이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의견이 유권자 10명 중 7명에 이른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70%도 대통령 책임론에 동의한다. 여론조사 꽃에 따르면 총선참패의 책임은 '윤 대통령 54%, 김 여사 10%'로 둘을 합하면 유권자 10명 중 최소 6명이 대통령 부부에게 책임을 묻는다.대통령과 용산의 총선 인식은 다르다. 국무회의 모두발언 형식으로 언급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대통령의 변화 의지가 없다"로 본다. 비공개 자리에서 대통령이 "죄송하다"고 해서 놀랐지만 취임 만 2년을 앞둔 대통령에게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전부라는 것도 '민주국가 지도자 중 거의 없는 일'이다. 용산은 총선결과를 '당의 선거운동이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국정방향은 옳다. 다만 국정을 운영하는 스타일과 소통방식 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한다. 근거는 2년 전 대선승리. 용산은 "국정방향은 지난 대선에서 응축된 국민의 총체적 의견이다. 그 뜻을 받아서 윤석열 정부가 집권했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 때문에 국정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국정기조를 '유지'하면서 소통방식을 다양화하는 '정도의 변화'가 해답이 된다.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에도 소극적이다.'달라진 윤석열'을 요구하는 선거결과에 부응하기 위해 총선 민심을 과연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우려되는 이유다. 야권은 '도대체 답이 없다'라며 "역대급 심판에도 변하지 않고, 국

  • [춘추칼럼] 눈물이 사는 살구나무 언덕

    [춘추칼럼] 눈물이 사는 살구나무 언덕 지면기사

    정의·포근한 공정·아름다운 자유 보이지않아시골마을 새벽 찬란한 봄날이 괴롭습니다'혁신, 끝없는 착오 결론짓는 일' 그게 정치화사한 꽃 피우며 어김없는 새아침 가져와새벽입니다. 늦게 자도 일찍 자도 나는 늘 이 시간 부근에서 눈이 떠집니다. 언젠가부터 나의 잠은 이런 자연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어둠이 가득합니다. 나는 손으로 어둠을 만져 봅니다. 어둠이 부드럽고 편안합니다. 어둠 속에서 눈이 맑아집니다. 내가, 내게 몸을 움직이자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때 문득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몰래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적개심', 이 말이 왜 이때 불쑥 솟아났는지, 느닷없는 이 말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의 역사 속의 기억과 상처들이, 훼손된 민족적 자존심과 인간의 존엄, 내 짧은 삶의 흔적들이 함께 섞이며 소용돌이가 되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나도 이 말이 시키는 대로 일을 저지르며 살았던 것입니다. 적개심으로 일어났던, 일어나고 있는, 일어날 일들이 생각나, 그 일들이 나의 현실이 되어 금방 내가 가난해졌습니다. 혐오, 증오, 적개심, 이런 삶의 끝에 다다른 막말들이 내 일상을 포위하고 있습니다.때로 나는 '이 나라'가 싫어질 때가 다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라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도 떠나지 못하고 사는 내가 우리나라를 두고 '이 나라'란 말이 내 입에서 나오다니, 내가 싫어지고, 싫어지고, 정말 싫어집니다. 선하고 따듯하고 다정다감한 말들이 사라진 자리에 적개심과 적대적이라는 말이 우리의 일상을 살벌하게 지배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공격과 방어와 모면으로 교육된 우리들이 자세와 표정에서는 정의도, 평화도, 포근한 공정과 아름다운 자유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사는 우리나라를 '이 나라'라고 하는 절망적인 말을 하기 싫습니다. 이렇게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게 인생 아니냐고 하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이 지금은 통하지 않습니다.나는 이따금 정의로운 바람을 맞이하러 사람이 살지 않은 우리 동네 서쪽 밤나무 숲으로 갑니다. 영혼이

  • [춘추칼럼] 행복한 '인생 2라운드'를 위한 준비

    [춘추칼럼] 행복한 '인생 2라운드'를 위한 준비 지면기사

    슈바이처 특별함은 가치 알아보고 실행 용기가난한 아프라카 사람들 필요한 의술 공부우리도 여정 멈추고 더 높은 차원 세상보자삶 어떤 가치로 꾸려가는가 결정은 나 자신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시대라 불릴 만큼 우리 사회는 100세까지 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의학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는 '알파에이지'시대로 가고 있다. 그러면서 기대수명은 140세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실리콘밸리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생명연장을 위한 연구가 붐을 이루고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노화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이런 상황에서 60세 무렵 정년퇴직을 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비단 나와 내 주변의 고민만은 아닐 것이다. 인생 2라운드를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막연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떠오른다.슈바이처 박사는 30세에 이미 유럽 지역에서 존경받는 신학과 교수였으며 어려서부터 오르간(organ) 연주자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확고한 인생 계획 즉, '30세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학문과 음악을 하고 그 이후에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자'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의학공부를 시작하고 8년 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장래가 보장되는 프랑스가 아닌 의료기술이 취약한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아프리카의 랑바레네(Lambarene)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성공과 명성을 뒤로한 채 52년이라는 긴 시간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남을 위해 봉사하는 이타적인 삶'이라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슈바이처가 한 중요한 말이 있다. "내 안에 빛(꿈, 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빛나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남들이 정해 놓은 가치, 나만 돋보이고 싶은 가치는 내 안의 빛이 아니다. 안으로부터 저절로 빛나는 나만의 가

  • [춘추칼럼] 한 남자의 응징

    [춘추칼럼] 한 남자의 응징 지면기사

    모함에 멸문 당한 오자서의 '굴묘편시'사마천, 그의 복수·응징 '열전'서 기록정약용·김정희 유배 고통 통한의 마음생명놓긴 쉬우나 살아 재기는 대장부만중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보복은 오자서(伍子胥)의 응징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귀족이었던 오자서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역모(逆謀) 죄로 기소되어 멸문의 화를 당한다. 초나라 평왕(平王)의 신하였던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간신 비무기의 모함으로 큰아들 오상과 함께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오자서는 죽고 싶었다. 혼자서 비겁하게 살아가며 마음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 자신이 없었다.그러나 그 죽음은 가치 없는 죽음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응징할 것을 다짐하며 오(吳)나라로 망명한다. 오자서는 왕위 계승순위에서 밀려 있던 공자(公子) 광(光)을 왕으로 만들며 킹메이커로 부상하여 권력의 중심에 선다.오자서는 권력을 남용한 초나라 평왕을 응징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결국 자신이 만든 오나라 왕 합려의 동의를 받아내어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와 함께 자신의 조국 초나라를 공격하여 수도인 영()을 함락시킨다.자신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평왕이 이미 죽어 무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에서 평왕의 시신을 파내어 채찍으로 300대를 내리쳐 부모의 원수를 갚아준다. '굴묘편시(掘墓鞭屍)', 묘를 파내고 시신을 꺼내서 채찍으로 때린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조선의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 윤씨를 참소하여 죽게 한 신하들에게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였으니, 묘를 파내고 죽은 시신을 훼손하여 응징하는 전통은 동양의 역사에서 자주 있었던 일이다.사마천은 오자서의 지독한 응징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의 옛 친구였던 신포서의 충고를 '사기'에 적고 있다. "그대는 이미 죽은 사람을 묘에서 파내 욕보이니 한때 신하였던 자로 너무 극악무도하지 않은가?" 이런 충고를 들은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해는 저물고 응징할 시간은 없다(日暮途遠, 일모도원). 이런 방법을 써서라도 무도한 대가를 치러야겠다(倒行逆施, 도행역시)."자신의 부형을 죽이고, 집안을 망하게

  • [춘추칼럼] 벚꽃 필 때 죽음을 생각하라

    [춘추칼럼] 벚꽃 필 때 죽음을 생각하라 지면기사

    태어난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영원한 법칙별·암흑물질·바닷가 모래 모두가 '무생명'삭막한 우주속 존재 자체가 기적아닌 기적죽음, 날 만나려면 봄에 오라 웃으며 맞으마통영은 3월 중순에 벚꽃이 피고, 날마다 조금씩 북상한다. 열흘쯤 뒤엔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서 벚꽃은 팝콘처럼 만개한다. 나는 벚꽃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다가 탄식한다. 어쩌자고, 하얀 벚꽃은 벚나무 검은 가지 속 어디에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만개하는가! 봄비가 지나가며 꽃잎을 떨구면 봄은 파장이다. 꽃 진 벚나무 가지에는 연초록의 잎들이 돋아난다. 제국이 멸망하듯이 벚꽃은 무너지는데, 하얀 벚꽃 시체가 낭자하게 흩어진 길을 걷노라면 가슴은 슬픔으로 벅차오른다.젊은 시절, 연락이 끊긴 후배가 머리를 삭발하고 잿빛 승복을 입고 나타나 놀란 적이 있다. 스님으로 변신한 후배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말을 잃었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을 끌어안고 번민했노라고 말한다. 인생의 알 수 없음, 그 수수께끼를 품고 출가를 감행한 후배는 곧 수행을 하러 미얀마로 떠난다고 한다. 후배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떠올렸다. 살아 있는 동안 멈추지 말고 죽음을 생각하라!'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비행해 이 별에 도착하는 데는 약 2만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보이저 2호의 속도는 총알보다 10배 더 빠르게 날아간다. 지구 행성에서는 날마다 몇 만명이 태어나고, 먼저 이 별에 왔던 몇 만명이 생로병사를 겪으며 죽는다. 2만번의 봄이 왔다가 가는 동안 전쟁 고아들은 굶주리며 거리를 헤매고, 유기묘 수 만 마리가 먹이를 찾아 사방을 돌아다닐 것이다.우리가 살아서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데, 나는 당신을 연모하고, 당신은 내 이마를 차가운 손으로 짚을 것이다. 우리는 길흉화복을 겪으며 평생을 살 테고, 그 동안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오고, 폭풍과 뇌우는 우리 어린 자식들을 무서움으로 떨게 할 테다. 우리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 [춘추칼럼]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춘추칼럼]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지면기사

    23일 한국시리즈 개막… 야구팀 우승전략주요 역할 '감독'… 성적따라 언제든 교체여야 '상대 악마화·반사이익 정치'로 경쟁총선때 뽑힌 사람 임기 4년… 결정의 시간'야구가 돌아왔다.' 시범경기가 치러졌고 오는 23일 개막이다. 10개 구단은 자신의 전력과 환경 그리고 최근 흐름 등을 바탕으로 올 시즌 목표를 설정한다. 우승을 겨냥하는 팀도 있고 포스트시즌 진출의 5강을 목표로 하는 팀도 있다.겨우내 국내외에서 진행된 스프링 캠프는 팀 목표를 위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강점을 극대화하려는 구단들의 노력이다. '대한민국에 10명밖에 없는 프로야구 감독'의 운명은 성적에 달렸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팀이 우승을 놓고 경쟁할 수는 없다. 그래서 팀의 목표는 크게 '우승(Win Now)이냐, 정비와 준비(Rebuilding)냐'로 나뉜다.작년 통합 우승팀 LG는 차명석 단장의 '우승 5개년 계획'에 따라 5년차에 우승을 달성했다. 그동안 포스트 시즌 진출은 물론 순위도 계속 상승했고 팀의 예상승수와 우승 경쟁자가 어느 팀일지도 짐작했다고 한다.스프링 캠프에서 10개 구단 감독들은 어떤 목표를 말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이를 바탕으로 올 시즌 우승을 놓고 다툴 팀은 어디인지 그리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팀은 어디인지를 예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팀 리더십의 목표설정과 그 결과를 비교해보자는 말이다.작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다퉜던 두 팀의 리더십은 역시 우승을 목표로 한다. 우승팀은 '왕조건설의 시작'을 다짐한다. '첫 번째 우승은 전력이지만 두 번째 우승은 철학'이라며 팀의 방향성과 컬러를 좀 더 분명하게 가져가자는 다짐이다.'우승 경쟁권의 팀'으로 평가받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던 팀은 리더십을 전격 교체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감독교체와 프랜차이즈 스타의 갑작스러운 이적으로 뒤숭숭했던 팀의 새 리더십은 '리모델링'을 다짐한다.팀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가장 잘 돌파할 수 있는 리더십을 선택한 팀

  • [춘추칼럼] 시인이 사는 마을

    [춘추칼럼] 시인이 사는 마을 지면기사

    일과 놀이가 하나였던 사람들 삶의 공동체아름다운 말속에 가르치고 양성하는 학교논밭·직장 거닐었던 그 강길 지금도 걷는다내 시를 안썼다… 자연이 하는말 적었을뿐나는 강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 태어나고 자라 산다. 나의 조상들이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와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두살 때 전쟁이 일어났다. 집은 불태워지고, 그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잃었다. 피난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재만 남은 집터에 초가삼간 집을 짓고 살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세번째 집으로 1962년에 지으셨다. 아버지는 나무와 풀과 햇살과 흙과 바람으로 집을 지으셨다. 나도 그렇게 바람과 햇살과 흙과 나무로 시를 쓰며 그 시속에서 살고 싶었다.마을을 만들어 살면서 사람들은 마을의 질서를 위해 법을 만들어 갔다. 불문율이다.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막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도둑질을 하다 들키면 추방당하거나 스스로 마을을 떠나야 했다. 거짓말을 하면 평생 신용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은 사는 게 공부였다. 배우면 써먹었다. 자연이 하는 말을, 자연이 시키는 일을 잘 알아서 농사와 삶의 근본을 삶았다. 삶이 예술이었다. 평생 농사를 지었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싸워야 큰다.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고 했다.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삶 속에서 만들어진 마을 법을 지키며 사람들은 같이 먹고 같이 일하면서 같이 놀았다. 일과 놀이가 하나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을 마을 공동체라 했다. 공동체라는 정치·경제·문화·사회적이고 인문적인 이 아름다운 말은, 실은 이 작은 마을 문화에서 만들어졌다. 마을에는 별로 소식이 없었고, 쓰레기가 강물로 나가지 않았다. 가난을 무시하지 않았다. 가난은 남모르게 서로 돌보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마을에서 살아남으면 어디 가서도 살아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어렵고도 아름다운 말이다. 마을은

  • [춘추칼럼] AI를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춘추칼럼] AI를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지면기사

    교육·일상생활 편리하게 이용 역량키우고인간의 탁월한 소양 개발 충분히 포용해야따뜻한 품성·지배되지 않고 효율적 활용땐개인주의 아닌 '사람냄새' 가득한 세상 누려설 명절 휴가기간 동안 SNS에서 따뜻한 에피소드를 접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길 한복판에 폐지가 가득한 리어카를 힘겹게 끄는 노인 옆에서 우산을 씌워드리고 함께 가는 어느 여성의 모습이었다. 목적지까지 비를 맞으며 모시고 간 후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아 저녁을 드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상실감에 젖어있는 추운 계절에 마음의 온도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나날이 눈부시게 기술이 발전하고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것과 반비례로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따뜻한 마음을 잃어가는 요즘에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올해 최고의 화두는 '생각하는 AI'인 '생성형 AI'의 출현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우리 생활에 상당히 밀착하여 다가오는 느낌이다. 삼성전자에서 가장 최근에 출시된 스마트폰에 탑재된 AI는 13개 국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번역할 수 있게 개발되었고, 실제 사용해보니 일상대화는 물론 어려운 말도 대략 뜻이 통하는 수준으로 번역이 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외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고생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최근 AI의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이다. 2021년 미국의 전 외무장관 키신저(Kissinger), 구글의 전 CEO 슈밋(Schmidt), MIT 학장 허튼로커(Huttenlocher)가 공저를 한 'AI 이후의 세계'라는 책에서 AI가 인간의 생활 전반에 있어서 대단한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였다. 2년이 지난 2023년 키신저 등 3명의 공저자들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Chat GPT가 지적혁명(Intellectual Revolution)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뉴욕타임스는 직업세계에서 AI가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대학졸업자의 75% 정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그만큼의 직업군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였다.기

  • [춘추칼럼] 헤어질 결심

    [춘추칼럼] 헤어질 결심 지면기사

    '이혼 통보' 받은 제나라 재상 안영의 마부부인의 말에 겸손함 되찾고 개과천선 이뤄권력자 주변서 이권 챙기는 배우자 부정에'마부 아내' 같은 용기있는 충고, 지금 필요"여보! 우리 이혼합시다!" 마부의 아내는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헤어질 결심을 통보했다. 마부는 갑작스런 부인의 이혼통보에 당황했다. 제(齊)나라 재상인 안영(晏영)의 마차를 모는 직업은 비록 신분이 낮은 일이기는 하나 제나라의 강력한 실세 안영을 모시는 일이기에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에게 잘 보이려 했다.마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을 통보받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혼 사유를 찾을 수 없었던 마부는 아내에게 왜 헤어지려 하는지 물었다. "당신은 재상을 모시는 마부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장에서 본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제나라 실세인 안영은 겸손하게 마차를 타고 있는데, 당신은 권력의 실세인양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마차를 몰고 있으니 당신의 부인으로서 창피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머리를 조아린 게 아니라 마차에 타고 있는 권력자에게 한 것인데, 주제도 모르고 권력의 주변에서 함께 누리려 하니 그것이 제가 당신과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입니다."사마천 '사기' 안영과 마부의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권력의 주변에는 늘 주변 실세가 있다. 권력자는 이미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조심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권력의 주변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사람이 많다. 권력자의 배우자, 친척, 비서실 직원, 수행 기사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은 모(母)권력의 주변에서 자(子)권력을 즐기는 사람들이다.이권을 가진 사람들은 늘 자(子)권력 주변에 모여든다. 명품과 뇌물로 유혹하기도 하고, 아부와 아첨으로 달래기도 한다. 잠깐 잘못하면 무심코 받은 뇌물과 청탁 수락에 모(母)권력이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한다.권력이 무너지는 것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 기생권력에서 시작된다는 예는 역사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환관과 외척들, 십상시와 측근들, 권력에 기대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주변 실세들은 나

  • [춘추칼럼] 자기 혁명을 한다는 것

    [춘추칼럼] 자기 혁명을 한다는 것 지면기사

    전직 기자 자전 에세이 '…경비원입니다'형의 죽음후 내면 관조 상실·치유 이야기연봉 높아도 보람 없다면 인생 헛된 소비관습 껍질 깨고 온몸으로 성큼 나아가라사는 게 답답하고 제 운명이 마치 갑옷을 두른 것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가장이라는 짐을 싣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어디론가 숨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곤 했다. 낯선 고장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울렁이던 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마음의 공허는 메꿔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뒤늦게 더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었음을 깨닫는다.전직 '뉴요커' 기자이던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심장을 두드리는 책이다. 제 결혼식이 열리기로 한 날, 형의 장례식이 치러지는데, 그날이 그의 운명의 변곡점이었다. 형을 잃고 내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 뒤 그 지점에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촉망받는 기자는 엉뚱하게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란 직장을 구해 이직한다. 미술관 한 모퉁이에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이란 가장 단순한 일을 수행하는 직업이다. 미술관 경비원이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게 새로운 일터는 심리 치유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그곳은 속세와 단절된 고요한 피안이었던 곳이었다.사람들은 어떤 계기에 삶의 방식을 바꾸곤 한다. 새 직업을 찾는 시도는 가치의 위계와 자기 시간을 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다. 기업가나 정치가도 변화와 혁신을 외친다. 한 기업 총수가 한 "자식과 마누라를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기업의 혁신이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환기시키는 발언이었다.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미래를 담보하는 위험한 투기일 테다.자기에게 충실한 삶을 산다는 것, 그건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다움이 아닌 것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뭔가에서 벗어나는 것의 최종심급은 혁명이다. 김수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