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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下)] 사람이 산다 지면기사
로컬크리에이터 이종영씨 등수원 향교로 인근서 의기투합카페·빵집 등 옛 중심지 활력 '공간을 되살려 사람이 설 곳을 만든다'.조인희(34)씨는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에서 커피전문점 '노스목위닷파'를 운영한다. 입주 건물은 3층짜리 가정집이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1974년 12월에 사용승인을 받았다. 족히 50년은 다 된 낡은 집은 한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방치된 폐가였다. 향교로에서도 골목을 찾아 들어가야 해 입지 조건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그럼에도 조씨는 고쳐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때마침 골목 경제가 화두였다. '동네 한 바퀴', '골목식당'이 주목받는 시기였다. 지역을 살리는 로컬크리에이터 주식회사 동네형의 대표 이종영(42)씨가 향교로에서 자리를 잡고 골목 상권 활성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씨의 희망은 확신으로 바뀌었다.이종영씨와 조인희씨는 영동시장 청년몰에 입주했다가 경영난을 겪은 청년 사장들에게 향교로 주변으로 모이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호응해 청년 사장 그렇게함박이된다(옛 시나브로카레) 김중수 대표와 미나리빵집 장예원 사장이 시장 한편에서 역사·문화가 녹아있는 수원의 옛 중심거리로 옮겨왔다. 저렴한 관리비와 월세는 차후 생각할 문제였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장사가 잘 돼야 했다."내가 먼저 자리를 잡을 테니까 당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동시장 청년몰 사장님들도 향교로로 오시라고 추천했어요. 동네형 이종영 대표님이 가진 인프라가 있으니 하나둘씩 옮겨서 기반을 잡을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조인희씨) '공생 관점'서 도시재생 토의역사·문화 자산 극대화 노력때마침 경기도청 주변 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했다. 공간을 되살려 잘 살아보자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모인 청년들은 도시재생을 함께 잘 사는 공생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매주 목요일은 주민, 청년 상인들이 모여 도시재생 사업 현안을 놓고 토의하는 날이다. 이들은 향교로의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이 가진 산루리 독립운동마을, 향교, 부국원 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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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잃어버린 도시의 활력 되찾기 '분투하는 사람들' 지면기사
부천 원미┃턱없이 짧은 사업기간 마을관리협동조합 결성으로 돌파구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구현"인천 용현2동┃'비룡공감 2080' 주민 의견 충분히 사업 반영에 공들여… "합의 이루는 과정에 집중"부평 11번가사업┃미군 정화조부지 '혁신센터'-굴포천 '생태하천' 환골탈태 "자긍심 회복 초점"도시재생이 법률상 용어로 등장한 시점은 2013년 12월이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법)이 제정되면서 도시재생은 법률에 근거한 정의를 갖게 됐다.도시재생으로 통칭할 수 있는 국가 주도 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노무현 참여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마을)만들기, 이명박 실용정부의 도시활력 증진 지역개발사업이 있었다.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 선도·일반사업은 2015년,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2018년 들어 본격화했다. 그렇게 따져보면, 도시재생은 성패를 섣불리 예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주거복지의 실현과 도시경쟁력 강화,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4대 목표다. 잃어버린 도시의 활력을 되찾는 도시재생의 길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경기도와 인천시 도시재생의 속살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5년짜리 도시재생은 없다멀고도 아름다운 동네 원미(遠美).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 장소는 원미동 23통 5반이다. 23통은 실제 존재하는 행정구역은 아니지만, 원미1·2동 곳곳에 소시민들의 팍팍한 삶을 느낄 수 있다.부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부흥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1978년 지어진 원미동의 2층짜리 연립주택을 맞닥뜨리게 된다. 낡은 연립주택 1층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기둥만 남기고 외벽을 허물어 약초, 야채를 파는 시장 점포로 활용되고 있었다.원미는 소설이 그린 1980년대 중후반에 멈춰있었다. 주민들은 '심곡천으로 다시 쓰는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경기도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사업비 도비 50억원, 시비 50억원)에 공모해 소설의 배경이라는 상징성을 내세워 대상지로 선정됐다.문제는 5년에 불과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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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수원시 도시재생 사례 지면기사
현장지원센터, 행정-시민 뒷받침 기능사업완료땐 철수… 직원 고용불안 문제비영리조직과 계약 등 전문인력 필요성도시재생은 공간을 넘어 삶을 바꾼다. 건축, 도시계획, 디자인, 사회적 경제,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분야가 뒤섞인 복합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경기도청 주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박재희(26) 주임은 원도심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참한' 도시재생의 매력에 빠졌다.공교롭게도 박 주임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되살리는 예술 작업을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오거리에 살았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 시절 고등동오거리 골목길엔 술래잡기와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린이들이 가득했다.박 주임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도시재생의 매력에 빠져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어 지원했다"며 "고등동오거리는 지금은 아이들의 흔적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동네지만 지역의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해 사람들이 보다 잘살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는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지에 있다. 기초지자체 단위의 기초센터와 광역지자체 단위의 광역센터는 도시재생 사업을 행정과 시민 사이에서 뒷받침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현장센터가 사실상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현장지원센터는 경기도엔 44곳, 인천시엔 15곳이 있다. 1곳당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9명까지 총 150명이 근무(2020년 12월 말 기준)하고 있다. 현장 인력들에게 다만 아쉬운 점은 사업이 완료되면 센터 철수와 함께 퇴사해야 하는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이다.박 주임보다 1년여 일찍 입사한 윤준식(27) 대리는 "도시재생 현장 인력은 소모품에 가깝다"며 "애정을 가지고 사업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낄 때도 있는데, 정규직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래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과 상인들도 현장지원센터의 잦은 직원 교체에 피로감을 느꼈다. 지자체 행정기관이 직영으로 현장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담당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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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전문가들이 보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지면기사
홍경구 교수┃도시인구 4500만, 급속히 증가… 신·구 도심 공공시설 불균형 해소 위해 시작박인규 센터장┃주민 역량 함께 키워 가는 것… 화단 가꾸고 벽화 그리는 단계는 뛰어 넘어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심폐소생술과 비슷하다. 도시의 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급한 대로 마중물 공간을 짓는 등 응급 처치를 하는 것과 같다. 일단 숨을 붙여 놓고, 도시가 소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정부는 5년간 50조원을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투자해 전국 500곳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며, 일자리까지 창출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구도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곧 변화가 생길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그러나 사업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화려한 포장지를 뜯어보니 정작 내용물은 빈약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두겠노라고 자신했던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전문가들 역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불완전성'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홍경구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한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비롯한 구조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도시재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1960년 약 1천만명이었던 우리나라 도시 인구는 2010년이 되면서 약 4천500만명으로 늘었다. 50년 동안 3천500만명을 도시에 수용한 것"이라며 "부산시 인구(350만명)를 수용할 도시를 5년 주기로 2010년까지 계속 만든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에 도로나 학교, 공공시설 등 소위 기반 시설이 제대로 조성될 수 있었을까. 굉장히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전했다.홍 교수는 이어 "적어도 이런 배경을 가진 구도시와 신도시 사이 공공시설의 불균형은 해소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사업이 도시재생"이라며 "낙후한 많은 도시 중에 도시재생 사업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곳을 선별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그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공동체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서 의미가 있다고도 평가했다.홍 교수는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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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上)] 급속한 도시화의 그늘 지면기사
재생(再生)은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그 의미 그대로 도시재생은 '생기를 잃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접근 방식은 조심스럽고 느리다. 기존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도시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를 확충하는 식이다. 그림으로 치면 원화를 살리면서 생기를 살리는 '리터치'를 하는 것과 같다.그렇다 보니 돈은 돈대로 쓰는 것처럼 보여도 눈에 띄는 확실한 변화는 찾기 힘들다. 최근에는 '대문을 고치거나, 벽화를 그리는 게 도시재생이냐'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쇠퇴한 도시에 5년간 약 50조원을 투자하는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무용론'과 같은 신랄한 비판에 직면했다. 도시재생은 낙후한 도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헛돈' 쓰지 말라는 것이다. 자족기능 부족·개발정책 후순위너무 빠른 인구집중 부작용 낳아열악한 곳 살리는 도시재생 이유 통계청에 따르면 1950년 한국의 도시화율은 21.4%였다. 도시화율이란 전체 인구 가운데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인구 10명 중 8명은 도시에 살고 있다. 불과 70년 만의 일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도시화는 1970~2000년 사이 30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1970년 40.7%에서 2000년 79.6%로 거의 2배가량 뛰었다.급속한 도시화는 두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만듦' 그 자체에 집중한 도시화는 각 도시에 필요한 자족 기능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또한, 새로운 도시가 계속 생겨나다 보니 이미 조성된 도시는 개발 등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교통, 허름한 주택, 모자란 주차장 면수, 상권 쇠퇴 등 구도심의 문제점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에 가깝다. 文정부 국정과제로 '50조 투자'차라리 재개발이 낫다 비판론도 이런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기 위해 재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새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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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쇠퇴 원도심 부천 소사… 경기도 유일 도시재생 사업 완료 지면기사
부천 이전에 소사가 있었다. 원도심 소사는 도시 성장의 밀알 역할을 다한 뒤 쇠락의 길을 걸었다. 뉴타운 사업 지정은 활력을 잃은 소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해제 이후 계획 없이 난립한 신축 다가구주택은 삶의 질을 더욱 떨어뜨렸다.도시재생으로 변화를 꿈꿨다. 부천시는 2016년 도시재생 사업 공모에 소사본동 일원(근린재생형)과 춘의동(경제기반형)을 신청해 2개소 모두 선정됐다. 소사마을은 지난 2월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도시재생 사업을 끝낸 곳이다. 첫 단추를 끼운 만큼 관심이 쏠렸다. 도시재생, 과연 마을을 바꿀 수 있을까. 행정구역은 경기·전화번호는 '인천 032'경인선 철도역 부천 있기 전부터 자리잡아 # 부천의 발원지 '소사'부천은 부평과 인천의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지명이다. 지명 유래에서 볼 수 있듯이 부천은 경기도지만, 오히려 생활권은 인천과 가깝다. '032' 지역 번호만 봐도 그렇다.소사는 부천의 중심이었다. 부천이 있기 전에 소사가 먼저 있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철도역의 이름은 소사였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소사읍은 그대로 시로 격상됐다. 소사가 부천시의 발원지로 꼽히는 이유다.토박이말로는 '소새'라고 불렀다. 풀이를 해보면 동쪽에 있는 높은 산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동쪽을 바라보면 해발 151.9m 높이의 할미산이 보인다. 여전히 마을 어른들은 소사라는 지명을 어색해 하며 소새, 소새울이라고 부른다. 소사는 한자로 쓰고 쓴 대로 부르다 보니 굳어졌다고 한다.소사는 1988년 중동신도시 건설로 행정, 상업, 교통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낡은 공간을 그대로 두고 새로 탄생한 계획도시로 부천의 중심이 옮겨갔다. 노후 건축물 절반 넘고 범죄발생률 높아# 소사의 쇠퇴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소사는 낡았다. 도시의 쇠락은 21세기 들어 극명해졌다. 인구 감소와 함께 지역 자립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사업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소사본동과 소사3동 일부 집계구(통·반 단위) 인구는 2000년 3만6천196명에서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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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도시재생 '이제 막 첫 발' 지면기사
지구 지정후 수년간 중단·해제 '부작용'우후죽순 빌라 신축… 주거환경은 악화원도심이 병들었다. 초기 도시발전에 중심 역할을 한 원도심은 생기와 활력을 신도시(신시가지)에 모두 빼앗겼다. 시름시름 앓는 원도심을 되살리는 길이 도시재생이다.병든 원도심은 '철거형 재개발'로 옛 모습을 전부 잃어버리고 새로 태어났다. 전면 철거형 재개발만이 도시 정비의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졌다.뉴타운 사업은 원도심에 더 큰 생채기를 냈다. 2006년 7월 시행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근거로 우후죽순 지정했다가 해제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널뛰고 주민 찬반 갈등을 남겼다.경기도는 2007~2009년 12개 시에 재정비촉진지구 23개를 지정했다가 2010~2015년 9개 시 15개 지구를 차례로 해제(실효)했다.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수년 동안 지구 내 개발 사업이 전면 중단돼 원도심 쇠락을 부추겼다. 지정 해제 이후엔 우후죽순 다가구주택(빌라)이 들어서 주거 환경이 더 악화됐다.인천시는 5곳을 지정했다가 최근 동인천역 주변까지 4곳을 전면 해제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주안 2·4동 지구도 재개발 14개소 중 9개소를 해제해 사실상 사업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일반 도시정비 사업도 구역 지정부터 준공까지 평균 8년 이상 걸린다.재개발의 기원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일대가 최초의 재개발지구였다.재개발의 역사는 50년을 훌쩍 넘긴 반면, 도시재생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경기도 100명 중 32명꼴 '쇠퇴지역' 거주인천시 153개 읍·면·동 가운데 97곳 달해 재개발과 뉴타운 일변도로 원도심 개발이 흘러간 사이 경기·인천의 쇠퇴지역은 꾸준히 늘었다. → 그래프 참조쇠퇴지역은 ▲인구 ▲사업체가 최근 5년간 3년 이상 연속으로 감소한 지역 ▲전체 건축물 중 준공된 뒤 20년 이상 지난 건축물이 차지하는 '노후건축물 비율' 등 3가지 지표 중 2가지 이상 조건에 부합한 지역으로 분류한다.국토교통부 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에 따르면 전국의 읍·면·동(행정동) 3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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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공동체 되살린' 안양 명학마을 도시재생 지면기사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크게 5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 표 참조지역의 특성과 거주민의 욕구에 부합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유형별로 투입되는 예산과 구축되는 기반 시설 역시 천차만별이다. 도시재생 사업의 일차적인 목적은 '거점'을 만드는 것이다. 이 거점은 주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 도시 경쟁력에 보탬이 될 혁신 센터 등 공간을 의미한다. 도시재생 사업에선 이런 거점을 '마중물'이라고 칭한다.낡은 동네를 고치는 건 도시재생의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다. 사업지 주민들도 도로를 넓히거나 보행로를 정비하고, 노후 주택을 수리하는 주거 환경 개선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외부인의 시선에선 미미한 변화일지라도, 실제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작지 않다.도시재생 사업은 이 모든 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설계됐다. 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주민 스스로 마을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함이다. 당장 거액을 들여 지은 공간도 주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 언젠가 낡기 마련이다. 이번 사업을 마중물 삼아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발전을 고민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게 만드는 것.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도시재생 사업의 목표는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을까. '안양 8동 두루미 명학마을'의 사례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진행 과정을 살펴본다. '명학' 자부심과 달리 낙후 문제 앓아재개발 지정·해제, 찬반 갈등 아픔도2018년부터 대안으로 도시재생 시작 # 두루미가 울고 간 마을안양시 만안구 명학마을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명학(鳴鶴)' 바위가 나온다. 조선시대 청풍군수를 지낸 심동의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팠는데, 돌 밑에 있던 두 마리 학 중 한 마리가 바위에 날아와 울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명학마을이라는 지명도 이 바위의 영향을 받았다.명학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에 대한 애정이 깊다. 명학마을의 도로명주소는 '명학로'인데, 원래 이곳 도로명주소는 '안양로'로 정해졌다고 한다. 명학이란 이름에 자부심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