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전문가 '확성기 공방 중단' 입장 유효거리 7㎞인데 北 마을 7.5㎞밖두달여 소모적… 건강·생존 위협 보수성향도 '자발적 인내'에 한계"차라리 더 강력한 심리전을 펴야" 박선원 의원, 국방장관에 대책 요구북한의 소음공격에 인천 강화군 송해면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군의 대북 방송이 북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의문시되고 있다. 대북 방송의 효과는 불확실한 데 반해 우리 주민의 피해는 명확한 만큼 대북 방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대북 방송 중단을 가장 바라는 것은 북한의 소음공격으로부터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는 강화군 송해면 주민들이다. 이들에게서 대북 방송을 중단해달라는 요구를 듣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 군이 대북 방송을 중단하면 북한의 소음공격도 멈출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송해면 주민들이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정부를 믿고 두 달 넘게 참아온 이유는 안보를 중요시하는 보수적 주민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더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인내를 요구하기 힘든 지경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확인되는 분위기다. 주민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남북이 심리전(戰) 일종의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야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한 60대 주민은 "이곳에서 하루 종일 소음 피해를 직접 겪어보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며 "보수·진보를 따질 문제가 아닌 주민 건강과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두 자녀를 키우는 30대 주부는 "두 달 넘게 이어진 남북 확성기 공방이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무의미한 공방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 소음공격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소음공격이 중단된다면 창고에 쌓여있는 쌀이라도 북한에 퍼주고 싶다"는 말까지 주민들 사이에서 나온다.주민 피해만 일으키는 실효성 없는 확성기 공방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진보 쪽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북한이 자국의 군심이나 민심이 흔들릴 것에 대비해 우리 군의 대북 방송에 소음방송으로 맞대응하고 있지만 정작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에서 그 누구도 들을 수가 없다"면서 "상대방의 심리가 흔들리지 않으면 심리전이 아니다. 차라리 더욱 강력한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박선원(민·부평구을) 국회의원 역시 대북 방송 재검토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군이 보유한 대북 확성기는 유효거리가 7㎞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은 7.5㎞ 밖에 있어 실효가 없다. 게다가 북한은 대부분 산악 지형이어서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것이 박 의원 설명이다. 그는 "차라리 현 정부가 원하는 의도대로 북한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주민만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강화 접경지역 마을 주민을 다가오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해 피해 상황을 널리 알리고 국방부 장관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 관련기사 (방음벽도 못 세운다… 막아낼 수단 '도발 의지 제거' 뿐 [北 소음공격, 대책없는 정부·(下)])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북한이 설치한 대남 스피커로 연일 소음공격을 하고 있는 25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북한 마을. 2024.9.25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연일 이어지는 대남 소음공격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스피커 모습. 2024.9.25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보수·진보 전문가 '확성기 공방 중단' 입장 새로운 유형 도발… 방어수단 없어 방음벽 요구도 군사적으로 불가능음파공학 기술 막대한 시간 걸림돌'남북 긴장 완화' 적극 노력 주장도 두 달 넘게 인천 강화도에서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소음공격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대남 도발이다. 방공호나 대피소도 무용지물이고 방어수단도 마땅히 없어 강화도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번 소음공격이 또 다른 형태의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가운데 북의 도발을 예방하기 위한 다각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이번 소음공격은 남과 북이 공방을 벌이며 발생했다.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에 맞대응해 북은 오물풍선을 띄워 보냈다. 이에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은 즉시 이에 대응해 대남 소음공격을 감행했다.문제는 이러한 소음공격에 딱히 방어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소음을 활용한 공격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방어수단도 딱히 연구된 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북의 소음공격에 지친 강화도 주민 가운데 일부는 방음벽 설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군사적으로 불가능하다. 방음벽을 설치하는 것은 유사시 우리의 눈을 스스로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파공학, 소음공학 특성을 활용한 기술적 대응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연구비와 시간이 필요하고 효과도 불분명해 다른 국방 사안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다분하다.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소음공격은 비대칭 전력을 활용한 심리전으로 봐야 한다. 공격을 막아낼 방어수단이 없다는 얘기"라면서 "적의 도발 의지를 제거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수단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한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이번 소음공격은 인천의 서해 접경지역이 북한의 대남 도발 시험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예측하기 힘든 또 다른 형태의 도발이 서해 접경지역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남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천시·강화군·옹진군 등 지방정부 차원에서 주민들의 우려를 중앙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 우리 군의 심리전 수행시 예상되는 부가적 피해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이치다.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방향을 선회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이미 북한은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패배했다. 우리가 우위에 있는데, 지나치게 공세적으로 나간다면 우리가 입을 부가 피해가 더 많다. 정부는 이러한 피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피해가 적은 방향으로 지자체와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북한이 설치한 대남 스피커로 연일 소음공격을 하고 있는 25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북한 초소 모습. 2024.9.25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북한이 설치한 대남 스피커로 연일 소음공격을 하고 있는 25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북한 접경지 마을 모습. 2024.9.25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상 무너진 강화 송해면 주민들 '마을의 고통' 경인일보 첫 보도국내 방송·日 언론도 실상 다뤄"다른 것이 날아올수도" 공포감해결 논의 자리 반목·갈등까지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을로 변해 버린 건 순식간이다. 두 달 전부터 이어진 북한의 소음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이야기다. 경인일보 첫 보도 이후 국내 주요 방송과 신문, 일본 언론까지 송해면의 실상을 알렸지만 '마을의 고요'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주민들은 언제까지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을지 막막해 했다. 북한의 도발이 어느 순간 소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민들은 시달리고 있었다.지난 23일 송해면 당산리에서 만난 임신부 이선영(38)씨는 북한이 보내오는 밤낮없는 소음에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씨는 "아기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줘도 모자란데 매일 기괴한 소음을 들려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곳은 이씨의 고향으로, 그는 대남 방송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소음은 견디기 힘들었다. 6년 전 이씨는 친정어머니 건강 때문에 인천 도심 생활을 접고 공기 좋고 물 맑은 고향 집으로 되돌아온 터였다. 이씨는 "힘들게 고향으로 왔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된다"고 말했다.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이만호(63)씨는 "조용한 마을이 하루아침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곳으로 변해 낯설다"고 했다. 의용소방대장으로 봉사하며 마을 안전에 늘 신경을 쓰는 그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북의 소음공격이 마을을 헤집어 놓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가끔 귀순자가 넘어왔지만 평화로운 마을이었다"면서 "주민들도 소음에 시달리다 이젠 지쳤는지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반목·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혼란이 북한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마을 어른들은 북한이 6·25 남침 직전에 시끄럽게 떠들었던 때가 떠오른다고 말씀하시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소음 말고 다른 것이 날아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한다"고 전했다.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주민도 부지기수다. 초등학교 1·3학년 두 자녀를 키우는 안미희(38)씨는 최근 병원에 들러 수면제 열흘 치를 처방받았다. 7월 말부터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편두통이 생겼다. 직장은 강화읍에 있고 회계일을 한다. 소음이 없어도 업무 내내 그 소리가 맴돌아 미칠 지경이다. 그동안 가정 상비약인 진통제로 버텨왔지만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 고쳐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그는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다. (일하다가) 자칫 숫자가 틀리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걱정"이라고 했다.안씨도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강화읍 아파트에 살다 아파트 층간소음을 피해 10년 전 친정댁 인근으로 이사했다. 안씨 자택은 주변 논밭보다 4~5m 높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데, 소음을 가려줄 나무도 없어 북의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그는 "층간소음이 싫어서 조용한 고향 마을로 왔는데, 난데없는 북한 소음으로 또 정든 고향을 다시 떠나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동물은 사산하고 낚시터는 발길 뚝…" 북한 소음공격, 막막해진 생계 가축 이상행동·손님 방문도 감소다른 형태 도발 등 불안감 커져가"주민 삶 지켜달라" 정부 향해 호소 북한의 소음공격은 인천 강화군 송해면 주민들이 기르는 가축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안순섭(67)씨가 키우는 염소와 사슴도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씨는 "밖으로 나와 뛰어놀던 염소들이 두 달 전부터는 먹이 활동도 하지 않고 축사 안에서 사료만 먹으려 해 걱정이 크다"며 "사슴들도 불안하고 불편한지 서로 모여 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딱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염소 두 마리와 사슴 두 마리가 사산(死産)한 터여서 그의 걱정은 더 크다.북한의 소음공격이 지속되면서 생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이들도 있다. 송해면 양오저수지 낚시터는 두 달 넘게 손님이 끊겼다. 대부분 손님이 실외에서 낚시를 즐기는데, 북한의 소음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대책은 업주로서 딱히 없다. 낚시터를 운영하는 한재호(63)씨는 "'물멍'이라고 한다. 조용한 가운데 야외에서 낚시를 즐기고자 하는 이가 많다"며 "북한의 소음이 손님들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낚시 동호인 사이에서 소문이 다 퍼져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북한의 소음공격에 당한 손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난다는 것이 한씨 설명이다. 그는 "한밤중 들리는 괴이한 소음에 물에 뛰어들고 싶었다는 손님도 있었다"면서 "생계가 막막하다"고 했다. 낚시터는 24시간 밤낮으로 운영된다. 한씨 가족 5명 모두 낚시터에서 일하다 보니 타격이 막심하다.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던 방갈로도 이제는 텅텅 빈다고 한다.송해면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공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다른 형태의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주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 이만호씨는 "이런저런 고민에 주민들은 지금 충분히 괴롭다. 어쩌면 북한은 자신들이 지금 이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며 "(정부가) 주민들의 삶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로 활동하는 이만호(63)씨가 지난 23일 고려천도공원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철조망 너머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하루 아침에 떠나고 싶은 곳으로 변한 상황이 낯설다"고 말했다. 2024.9.23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대남 소음 공격용 북한 확성기. 2024.9.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소음 공격은 가축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염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안순섭씨. 최근 농장에서 염소 두 마리가 사산해 고민이 크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낚시터를 운영중인 한재호씨는 "북한의 소음이 손님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북한 소음공격' 접경지 무방비… 무너진 강화도 일상 '주민 고통' 경인일보 첫 보도국내 방송·日 언론도 실상 다뤄"다른 것이 날아올수도" 공포감송해면 가축 등 영향 생업 피해해결 논의 자리 반목·갈등까지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을로 변해 버린 건 순식간이다. 두 달 전부터 이어진 북한의 소음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이야기다. 경인일보 첫 보도로 송해면 실상이 알려졌지만 '마을의 고요'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주민들은 언제까지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을지 막막해 했다. 북한의 도발이 어느 순간 소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민들은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 23일 송해면 당산리에서 만난 임신부 이선영(38)씨는 북한이 보내오는 밤낮없는 소음에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씨는 "아기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줘도 모자란데 매일 기괴한 소음을 들려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곳은 이씨의 고향으로, 그는 대남 방송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소음은 견디기 힘들었다.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이만호(63)씨는 "가끔 귀순자가 넘어왔지만 평화로운 마을이었다"면서 "주민들도 소음에 시달리다 이젠 지쳤는지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반목·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혼란이 북한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주민도 부지기수다. 초등학교 1·3학년 두 자녀를 키우는 안미희(38)씨는 최근 병원에 들러 수면제 열흘 치를 처방받았다. 7월 말부터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편두통이 찾아왔다. 그는 "층간소음이 싫어서 도시를 떠나 조용한 고향 마을로 왔는데, 난데없는 북한 소음으로 또 정든 고향을 다시 떠나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북한의 소음공격은 송해면 주민들이 기르는 가축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안순섭(67)씨가 키우는 염소와 사슴도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염소 두 마리와 사슴 두 마리가 사산(死産)한 터여서 그의 걱정이 더 컸다. 북한의 소음공격이 지속되면서 송해면 양오저수지 낚시터도 두 달 넘게 손님이 끊겼다. 낚시터 운영자인 한재호(63)씨는 "조용한 가운데 야외에서 낚시를 즐기고자 하는 이가 많은데, 북한의 소음이 손님들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송해면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공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다른 형태의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주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로 활동하는 이만호(63)씨가 지난 23일 고려천도공원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철조망 너머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하루 아침에 떠나고 싶은 곳으로 변한 상황이 낯설다"고 말했다. 2024.9.23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대남 소음 공격용 북한 확성기. 2024.9.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상 무너진 강화 송해면 주민들 양사·교동면 포함 절반 넘게 피해 市, 관계법령 개정 국방부에 건의서해5도 특별법도 보호는 유명무실"주민 입장 이해 지속적 협의 필요" 북한의 소음공격이 올해 7월 말부터 두 달 가까이 이어져 인천 강화도 주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지만 관계 당국은 이렇다 할 주민 보호 대책이나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접경지역에 사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데, 강화도 해상 접경지역 주민들은 애국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만 강요당하는 셈이다.인천시에 따르면 강화도 접경지역 송해면, 양사면, 교동면 등 3개 면 주민 8천800여 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천600여 명이 북한 소음공격 피해를 입고 있다.인천시는 피해 주민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 법령 개정을 국방부에 건의했다. 현재는 북한 소음공격으로 인한 주민 피해를 보상하거나 지원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재하다.강화도는 북한 해안선과의 거리가 2㎞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접경지역이다. 강화 접경지역 주민과 달리 백령·대청·소청·연평·소연평 등 서해 5도 주민들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크게는 정주생활지원금이 있는데, 6개월 이상 10년 미만 거주 주민에게는 10만원, 10년 이상 거주 주민에게는 16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20년 이상 노후 주택의 개보수 비용을 지원하는 근거도 마련돼 있다. 서해 5도 주민들은 생활필수품 운송비, 유류·가스비도 직간접적으로 지원받고 있다. 올해 이들 사업 예산은 104억원으로, 이 중 80%는 국비다. 다양한 정주 여건 지원사업은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이 근거다. 이 법은 연평도 포격전 이듬해 시행됐다.서해 5도 주민은 특별법이 제정돼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공로를 인정받은 반면 북한의 소음공격을 당하고 있는 강화도 접경지역 주민들을 품을 법안은 딱히 없다.이미 건강·재산상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안보 요소 등 심리적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강화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요구다.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공격이 새로운 '무형의 폭격'이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지 해안경비작전 부대뿐 아니라 주민들도 민간인으로서 북한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강화군 주민들의 이야기다. 주민들은 여야가 합심해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강화도 접경지역 한 주민은 "소음 피해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고 주민들이 살고 싶지 않은 마을로 변한다면 그것이 바로 북한이 바라는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며 "소음 피해를 입어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는 강화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애국심도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인천시 김성훈 시민안전본부장은 "강화 접경지역 주민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 주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면서 "국방부와 지속적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관심을 갖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대남 소음 공격용 북한 확성기. 2024.9.2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가축 이상행동·손님 방문도 감소다른 형태 도발 등 불안감 커져가"주민 삶 지켜달라" 정부 향해 호소북한의 소음공격은 인천 강화군 송해면 주민들이 기르는 가축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안순섭(67)씨가 키우는 염소와 사슴도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씨는 "밖으로 나와 뛰어놀던 염소들이 두 달 전부터는 먹이 활동도 하지 않고 축사 안에서 사료만 먹으려 해 걱정이 크다"며 "사슴들도 불안하고 불편한지 서로 모여 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딱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염소 두 마리와 사슴 두 마리가 사산(死産)한 터여서 그의 걱정은 더 크다.북한의 소음공격이 지속되면서 생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이들도 있다. 송해면 양오저수지 낚시터는 두 달 넘게 손님이 끊겼다. 대부분 손님이 실외에서 낚시를 즐기는데, 북한의 소음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대책은 업주로서 딱히 없다. 낚시터를 운영하는 한재호(63)씨는 "'물멍'이라고 한다. 조용한 가운데 야외에서 낚시를 즐기고자 하는 이가 많다"며 "북한의 소음이 손님들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낚시 동호인 사이에서 소문이 다 퍼져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북한의 소음공격에 당한 손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난다는 것이 한씨 설명이다. 그는 "한밤중 들리는 괴이한 소음에 물에 뛰어들고 싶었다는 손님도 있었다"면서 "생계가 막막하다"고 했다. 낚시터는 24시간 밤낮으로 운영된다. 한씨 가족 5명 모두 낚시터에서 일하다 보니 타격이 막심하다.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던 방갈로도 이제는 텅텅 빈다고 한다.송해면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공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다른 형태의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주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송해면 당산리 마을지도자 이만호씨는 "이런저런 고민에 주민들은 지금 충분히 괴롭다. 어쩌면 북한은 자신들이 지금 이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며 "(정부가) 주민들의 삶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소음 공격은 가축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염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안순섭씨. 최근 농장에서 염소 두 마리가 사산해 고민이 크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낚시터를 운영중인 한재호씨는 "북한의 소음이 손님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2024.9.24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자원봉사자에게 듣는 그때의 기억 고연실씨, 교대로 공항 지키며 선수단 맞이 '특별'교통 정리 맡은 유달주씨, 운전자들 이해로 뿌듯'VIP 의전' 김성희씨 "인천서 개최 자랑스러워"제대로된 기념 행사나 간직할 공간 필요 한목소리사람이 남았다. 시민들의 마음에 각인된 10년 전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기억'은 지금도 빛나는 유산이다.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지역사회에서 그 기억이 흐릿해질까 걱정하기도 한다.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발간한 '공식결과보고서'를 보면, 2014년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아시아 45개국 등지에서 선수 9천436명을 포함해 총 2만7천448명이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대회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1만1천2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통·번역, 환경, 교통, 미디어, 행정 등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렸고, 인천시 공무원 등 지원 요원 7천800여명이 안정적 대회 운영을 위해 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대회 전 과정을 지역 현장에서 지켜 본 시민들까지 어떤 의미로든 인천아시안게임의 기억이 각인됐을 것이다.최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오랜만에 모인 옛 인천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10년 전 이맘때 매일 오전 5시10분께 인천국제공항에 가기 위해 303번 버스에 몸을 실었던 고연실(69)씨는 입국하는 각국 선수단을 맞이하고, 숙소 교통편을 안내했다. 인천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기간만 40년이 넘은 고씨는 인천아시안게임이 가장 특별했다고 한다.그는 "해외 선수단이 인천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는 자원봉사자인 만큼 책임감이 남달랐다"며 "선수단 도착 시각이 새벽부터 밤까지 다 달라서 봉사자들이 교대로 공항을 지켰고, 궂은 날씨에도 선수단이 당황하지 않도록 한발 먼저 움직였다"고 말했다. 유달주(65)씨는 대회 기간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교통 정리 봉사활동을 했다. 차량 통행부터 주차 안내까지 묵묵히 행사 진행을 도왔다. 유씨는 "어떤 운전자가 차량 통행이 잠시 막혀 짜증을 내다가, 제가 상황을 정리해 준 덕분에 웃게 됐을 때 '이렇게 큰 국제행사에 보탬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며 "시민들이 고생한다고 음료수를 주거나 아이들이 인사하면서 지나갈 때 힘든 것이 모두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VIP 의전을 담당했던 김성희(60)씨는 개·폐막식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안내했다. 주요 일정이 있는 날엔 자리를 지키느라 행사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리허설을 즐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김씨는 "아시아드주경기장 옆을 보면 다리 아래 물이 흐르는 곳이 있는데, 그 아래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잠시 쉬며 도시락을 먹고 담소도 나눴다"며 "아시안게임이 인천에서 열렸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인천아시안게임의 '10주년'이란 의미는 잊힌 분위기다. 당시 자원봉사자들은 인천아시안게임을 추억할 적절한 공간도, 제대로 기념하는 행사도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한 자원봉사자는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10주년 KBS 열린음악회에 초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새삼 10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며 "몇몇 경기장 주변에는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렸음을 알리는 기념물조차 없어 시민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인천AG 10년, 무얼 남겼나?·(下)] '세금 먹는 하마' 막으려면, 체육 자산 전담조직 시급하다)/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박경호 차장(문체부), 김희연·변민철 기자·송윤지 수습기자(사회부), 김용국 부장·조재현 차장(사진부)'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수많은 숨은 주역들 중 경기장 주변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담당했던 인천서구자율방범연합대원들이 인천아시안게임 기념관에서 10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수많은 숨은 주역들 중 경기장 주변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담당했던 인천서구자율방범연합대원들이 인천아시안게임 기념관에서 10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유무형 유산 이어갈 정책 필요 정치권 등 각계 '계승·발전' 한뜻 공무원에 수익 창출 시 인센티브독립채산제 등 단기적 처방 조언 글로벌체육진흥센터 추진 움직임타지역 유산사업 검토 도입 주장도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유산을 계승하고, 뒤늦게나마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시민, 체육계, 전문가, 공무원 등 각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를 치르고 남은 경기장 관리부터 지역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기념사업까지 추진하려면 더욱 세밀한 계획이 설정돼야 한다는 것이다.2014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관심 밖인지는 '또 하나의 사회'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살피면 금방 알 수 있다.지난 19일 주요 SNS인 엑스(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천아시안게임' 또는 '인천AG'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에 관한 글은 올해 기준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일부 사용자가 지난 10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 관람권을 구하거나 경기장 활용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게시글 정도만 보였다. 유튜브 검색 결과도 마찬가지였다.아시안게임 경기장 등 유형의 유산은 물론 무형의 유산조차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경기장 활용·기념사업이 핵심"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비롯한 경기장 활용은 수익 창출이 우선이라는 전문가가 많다. 대형 경기장은 수익을 내기 위한 노력이 없으면 무조건 운영 적자가 나는 구조인 만큼, 지속적으로 새로운 대회를 유치하는 등 '세금 먹는 하마'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경기장 활용에 나서도록 하려면 반드시 수익 창출에 따른 인센티브가 뒤따라야 한다"며 "그러한 방식이 불가능하다면 해외 사례들처럼 민간 위탁업체에 넘겨 각 경기장을 일종의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매년 경기장 운영 성과를 공개해야 한다"며 "1년 동안 경기장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시민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 경기장 활용을 통해 정주 여건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등을 측정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단기적 처방을 조언했다.지속적 기념사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으로 일한 김도현 인천시체육인회 회장은 "올해가 10주년인 만큼 대회 개최와 원활한 운영에 힘썼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10주년 기념사업을 치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열린음악회 같은) 일회성 행사보다는 행사 자체의 의미를 돌아보고, 이를 발판 삼아 더 나아가는 자리가 지금이라도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인천아시안게임을 제대로 기억하고, 남겨진 경기장을 활용해 후진을 육성하는 등 인천의 체육자산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지역 유산 사업은?한국에서 대규모 국제 스포츠 대회 유산 사업의 기준이 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경우, 정부가 이듬해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을 설립해 체육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서울올림픽 잉여금 3천110억원 등을 기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조성했다.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22년 10월 서울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서울올림픽 레거시 포럼 2022'를 개최하는 등 현재까지도 유·무형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2019년 재단법인 2018평창기념재단을 설립해 유산·기념사업, 동계스포츠 저변 확대와 발전사업, IOC 협력사업, 동계올림픽 경기장 운영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 평창군 차원에서도 2021년 평창유산재단을 설립해 학술 연구와 콘퍼런스 등 MICE 산업 육성, 평화테마파크 운영, 스포츠 전문 교육, 올림픽·평화도시 간 교류 협력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인천아시안게임은 대회 개최 직후 감사원이 조직위원회에 약 187억원 규모 법인세 납부 처분을 내리면서 잉여금 확보가 늦어졌다. 조직위의 법인세 반환 청구 소송이 이어졌고, 대법원 확정 판결로 조직위가 승소하면서 인천시가 잉여금 가운데 168억원을 최종적으로 확보한 것이 지난해 6월이다. 아시안게임 잉여금이 묶인 기간, 인천시는 유산사업 추진도, 관련 연구나 정책 수립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지금이라도 체계화해야인천아시안게임 유산사업을 체계화할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역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시 재정으로 편입된 인천아시안게임 잉여금 168억원은 각각 서구와 미추홀구에 조성할 다목적체육관 건립에 투입한다. 이를 두고 인천아시안게임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는 정책 방향이 맞느냐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이와 달리, 지역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인천아시안게임 유산 계승·발전사업을 체계화하고, 지역 스포츠 발전 방안을 연구하는 가칭 '인천글로벌체육진흥센터' 설립 추진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센터를 통해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의 결정적 역할을 한 특화사업이자 아시아 스포츠 약소국 지원사업인 '비전 2014 프로그램' 등 스포츠 국제 교류를 재개하자는 구상도 있다.오랜 기간 인천아시안게임 관련 업무에 몸담았던 한 인천시 공무원은 "그동안 법인세 반환 소송 등 여러 가지로 아시안게임 유산사업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대회 10주년을 맞았음에도 결국 인천시 차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조직위에 파견돼 의무반도핑부장을 맡았던 인천시의회 박판순(국·비례) 의원은 "인천시가 유산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것은 제약 조건이 많다"며 "국민체육진흥공단, 2018평창기념재단처럼 인천아시안게임도 유산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해 전문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박경호 차장(문체부), 김희연·변민철 기자·송윤지 수습기자(사회부), 김용국 부장·조재현 차장(사진부)23일 인천시 남동구 만국공원에 설치된 2014 아시안게임 인명기록 기념 조형물에 아시안게임 당시 조직위원회 직원들과 자원봉사을 비롯한 참가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2024.9.23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23일 인천시 남동구 만국공원에 설치된 2014 아시안게임 인명기록 기념 조형물에 아시안게임 당시 조직위원회 직원들과 자원봉사을 비롯한 참가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2024.9.23 /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4700억 짜리 주경기장 활용방안 필요 시설 훼손·철거 스포츠 기능 상실공연 대관 등 수익… 시민공간 없어상권 미발달… 市 차원 대안 답보부산아시아드 국제대회 개최 대조 2014년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45억 아시아 전역에 인천이란 도시를 알린 대규모 국제 행사였다.도시를 밝혔던 성화가 꺼진 지 10년, 아시안게임이 인천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인천아시안게임·패러게임 10주년을 기념하는 KBS열린음악회가 개최된 지난 10일 오전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전체 면적 63만㎡)을 찾았다. 인천아시안게임 개·폐막식을 치른 기념비적 장소이자, 현재 인천아시안게임을 기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형의 유산'이다. 10년 전 영광의 순간, 현재 남겨진 것들, 앞으로 주어진 과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날 저녁에 막을 올릴 열린음악회를 보기 위해 수백명의 관객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면서 아시아드주경기장 일대는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경기장 안에 입점한 카페와 영화관, 예식장은 한산했다. 평일 오전 아시아드주경기장 풍경은 이처럼 인적이 뜸하다. 가끔 대규모 공연 등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결혼식이 있는 주말에만 북적인다. 경기장은 인천도시철도 2호선 아시아드경기장역과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인근 상권은 발달하지 못했고, 주변에는 주거지와 학교 등만 있다.약 4천700억원을 들여 2014년 준공한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이제 스포츠 시설로서 기능을 잃었다. 경기장 잔디는 훼손돼 곳곳이 파여 있었고, 6만석 규모였던 관중석 가운데 절반이 철거됐다. 국제 스포츠 대회도 열리지 않고 있다. 주경기장 옆 연희크리켓경기장에서만 국제 대회가 열리고 있을 뿐이다.경기장에는 인천시설공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인천서부지부 등 공공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영화관, 카페, 스크린 골프장, 예식장, 볼링장 등이 수익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 주경기장 운동장에서는 대형 공연 대관 행사가 종종 열린다. 최근 인기 가수 싸이와 아이돌그룹 세븐틴의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온전히 시민들을 위해 쓰이는 공간은 찾기 어려웠다. 경기장 운영 방향이나 활용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역할을 맡고 있는 류재근 아시아드주경기장 주민참여위원은 "대규모 경기장이 지역에 있으면 여러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면서도 "시민이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시민을 위한 공간을 늘려 지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드주경기장에 대한 인천시 차원의 추가적 활용 방안 모색은 답보 상태다. 또 다른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 부산의 주경기장 활용과는 대비된다.2002년 아시안게임이 열린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은 내년 개최될 예정인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에 맞춰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여전히 국제 규모 스포츠 경기장으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지난해 6월 한국과 페루의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렸고, 같은 해 8월에는 프랑스 프로축구 명문 구단 파리 생제르맹과 전북 현대의 경기가 펼쳐졌다.부산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관계자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노후화된 시설의 보수 공사를 이달부터 진행하고 있다"며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인근에는 사직야구장이 있고 상권도 발달해 많은 시민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인천AG 10년, 무얼 남겼나?·(上)] 하키연맹 공인도 못 받은 '선학'… 대부분 적자 갈길 잃은 경기장)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박경호 차장(문체부), 김희연·변민철 기자, 송윤지 수습기자(사회부), 조재현 차장(사진부)지난 20일 인천시 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이 10년전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 슬로건으로 45억 아시아 전역에 인천이란 도시를 알렸던 영광만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4.9.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은 인천에 도착한 성화를 탤런트 송일국이 송도국제도시에서 봉송하고 있는 모습. /인천사진공동취재단지난 20일 인천시 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이 10년전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 슬로건으로 45억 아시아 전역에 인천이란 도시를 알렸던 영광만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4.9.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지하철역에서 '애매한 거리'홈피 투어 프로그램 예약만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1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5년 개관한 '인천아시아드기념관'이 인천 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도 만만치 않다.지난 10일 오전 인천도시철도 2호선 아시아드경기장역에서 내렸다. 모바일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측정한 지하철역과 아시아드주경기장 내 기념관 사이 거리는 약 1.7㎞, 도보로 25분 거리다.이날 최고 기온이 35℃에 육박하는 무더위 탓에 버스로 이동하는 것을 택했다. 지하철역에서 아시아드주경기장을 잇는 시내버스 노선은 1개로, 배차 간격은 29~36분이었다. 이동 시간은 9분 정도 소요됐다.아시아드주경기장 동문 정류장에서 내린 후 5분 정도 더 걸어서 경기장 입구에 도착했다. 아시아드기념관은 경기장 서쪽에 있다. 안내판을 확인하며 조금 더 걸어서 인천시설공단 사무실 4층 끝에 있는 기념관에 도착했다.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 홈페이지에는 아시아드기념관의 위치를 안내하는 내용이 없으며, '투어 프로그램' 예약 시스템만 운영되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직접 찾아간 기념관에서는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과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기획취재팀=박경호 차장(문체부), 김희연·변민철 기자(사회부), 송윤지 수습기자, 조재현 차장(사진부)지난 10일 오전 찾은 인천아시아드기념관 입구. 2024.9.10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