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승객 476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선장과 선주는 사람보다 화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구조를 위해 출동한 해경은 어민들 보다 미숙했으며, 정부의 대처도 미숙했다. 300명 가까운 소중한 목숨이 사라지거나,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분노하는 와중에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종북이라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실종가 가족 행세를 하는 선동꾼이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또 단원고 학부모 대표가 특정 정당원이라고 반정부적 선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침묵시위에 나선 이들이 일당을 받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지난 대선에는 이런 주장을 국가정보기관이 직접 생산해 조직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민을, 비록 그들이 전부가 아닌 일부라 하더라도, 우선 적으로 규정한다. 저기 빨갱이가 있다! 끊임 없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증오하게 만든다. 

오늘 벌어지는 일은 우리나라에 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 반복되어왔다.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도 아무 죄없는 이들이 빨갱이로 몰려 희생당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희생당한 제주도민은 약 3만 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김금숙의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최초의 만화다.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고, 국대 독립영화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 <지슬>을 만화로 재구성했다. 제목인 '지슬'은 제주말로 '감자'를 뜻한다. 학살과 광기가 지배하던 그 때에도, 동굴에 몸을 피한 동네 사람들은 농을 하고, 서로를 걱정하며, 감자를 나눠먹는다. 만화에서 감자, 지슬은 애뜻한 삶을 상징한다. 

군인들이 들어와 사람들을 죽이자 마을 사람들이 피신한다. 먼저 남정네들이 뒷산으로 모인다. 좁은 구멍에 들어앉아 사태를 파악하려고 한다. 남정네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산으로 들어간다. 눈밭에서 헤매기도 하고, 길 안내를 잘못한 이를 타박하기도 하며, 곶자왈을 지나 동굴로 몸을 숨긴다. 어두운 굴 안에서 마을 사람들은 돼지 밥을 걱정하기도 하고, 장가를 못간 총각을 놀리기도 한다. 비록 학살을 피해 동굴에 몸을 숨겼어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농을 나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에는 일본놈들도 물러났는데 설마, 했을 것이다. 동굴에 몸을 숨긴 이들은 자신이 나라의 적이 아니라 생각했을 것이다.

만화 <지슬>은 영화 <지슬>과 똑같은 같지만, 다르다. 제기가 나뒹굴고, 마을을 불태우는 연기가 들어오는 첫 장면. 난장판이 된 집안에 군인 한 명이 칼을 간다. 바로 뒤에는 여자 시체가 구겨져있고, 새로 들어온 군인은 칼을 받아 사과를 잘라 나눠 먹는다. 영화평론가 박평식은 이 장면을 "어지간한 공포영화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화는 다르다. 같은 장면을 묘사하지만 김금숙 작가의 수묵 담채는 많은 정보가 숨겨있다. 영화를 기억하지 않으면 남자 뒤에 구겨진 여자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흑백 화면보다 만화의 흑백 화면은 더 많은 걸 감춘다. 많은 걸 감추기 때문에 차분하다. 영화의 매력 중 하나였던 농담 역시 영화처럼 선명하지 않다. 학살의 장면도 영화보다 차분하다. 감정은 억누르고, 비극은 숨는다. 대신 몇 번을 되돌려 읽으면 그 안에서 진짜 비극과 마주한다.  나는 세 번째 읽었을 때 첫 장면에서 숨은 여성의 시체를 발견했다. 영화와 다른 만화의 매력이다. 

군인들에게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에게 빨갱이일 뿐이다. 희생자 숫자는 그들의 성과가 된다. 제주 4.3에서 국가는 국민을 적으로 생각했다. 한국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뒤로 수십년이 흘러도 변한 건 없다. 묵묵하게 시중을 들던 군인 하나는 학살에 나선 김 상사에게 말한다. "이젠 그만 죽이세요." 자꾸 그 대사가 귓가에서 맴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