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들은 또 성공한 근대 3대 혁명가로 1922년 터키의 국부인 케말 파샤(Pasha)와 1952년 이집트의 나세르(Nasser), 그리고 1961년의 박정희를 꼽는다. 20세기 최고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Drucker)는 ‘2차대전 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중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박정희의 경제 발전’이라고 했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하다. 그 나라 수준에 맞게 다소 제한된 자유를 독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박정희 독재 운운’을 반박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는 또 아시아에서 조국의 위기를 구한 지도자로 박정희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덩샤오핑(鄧小平)을 꼽았다. 그런데 중국의 빈곤을 퇴치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도입의 모델이 바로 박정희의 경제개발 기적이었다.
서울 세종로의 세종대왕, 이순신 동상은 각각 세종시와 충무시 또는 충무로로 옮기고 대신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게 보수파 주장이다. 화폐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주춧돌(基礎), 박정희는 대들보 아닌가. 정치인이라면 우리 현대사의 진면목 해독력(解讀力), 사리의 앞과 뒤, 겉과 속을 가리고 뒤집어 판별할 줄 알아야 기본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