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생명사랑 밤길걷기’ 큰 관심
‘자살률 OECD 1위’ 오명 벗기위한 지원책 시급
가정이 ‘생명 소중함’ 깨닫고 자살예방 앞장서야

“어둠속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걷는 우리가 있습니다.”

지난 11일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는 해질 녘 수원 광교공원에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세계자살예방의 날(10일)을 맞아 본보와 수원생명의 전화가 공동주최한 ‘해질 녘서 동틀 때까지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에 참가하기 위한 행렬이다. 1천500명의 사람이 삽시간에 공원을 가득 메웠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이 행사는 자살예방 범시민캠페인이다.

자살충동을 느낀 어떤 이에게는 우울증을 더해주기라도 한 듯 음산한 가을비가 내려 참가자들 얼굴에는 이 행사가 왜 필요한지를 스스로 자각할 정도로 의연함이 묻어났다. 80대 한 노인은 “지난 3회 대회까지 모두 참가했다”며 “고독감과 우울증 등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데 아직 피지도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나 같은 노인도 생명의 소중함 때문에 이 행사에 또 참가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 오명국가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다양한 대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없는 탓에, 자살 1위 오명국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기도만 해도 지난 2013년 자살 사망자는 총 3천368명. 10만명당 27.9명, 하루에 무려 9.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기도내 31개 시군 중 자살예방센터가 설립된 곳은 10개 자치단체가 고작이다. 도내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연천군·포천시에조차 자살예방센터가 없다. 임시방편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 내에서 해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임상심리사 등 전문인력이 없어 실질적인 자살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된 자치단체도 예산과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자살 의심자로부터 걸려오는 기본적인 상담전화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도가 설치한 경기도자살예방센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한 해 동안 2만6천537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왔지만, 이중 절반이 넘는 1만3천657건을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 10대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수치도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2시간으로, 미국 국립수면재단이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하는 수면시간(8.5∼10시간)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자살생각, 자살시도, 자살계획 등을 최대 2.5배까지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국내에서 나왔다.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유기봉 교수와 연세대 보건대학원 박은철 교수팀은 2011∼2013년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 참여한 중·고생 19만1천642명을 대상으로 수면과 자살 행동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연구결과를 영국에서 발간되는 국제학술지(BMJ Open)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런 정도면 ‘내 아이는 아니겠지 또는 괜찮겠지’하는 어리석은 속단은 금물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부모들이 인식해야 한다. 생명의 가치를 가족 모두가 서로 곱씹고 가정이 자살예방운동의 선두에 서야 한다.

/김성규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