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해소 도움 안되고 경제권력 대기업 이동만
‘비정규직 줄여야 잠재성장률 상승’ IMF지적 주목해야
박근혜정부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달 휴전선 지뢰폭발을 계기로 북한의 예봉을 꺾더니 지난 13일 1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까지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최대 쟁점인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저성과자 일반해고’ 등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정부 단독으로라도 노동개혁을 위한 입법절차에 착수한다고 최후통첩을 했던 것이다. 청년 및 비정규직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노동개혁을 지지하는 만큼 승리를 확신하는 인상이다. 노동계가 배수진을 치는 등 일전불퇴의 각오여서 전대미문의 대충돌마저 우려되었는데 다행이다.
수출부진과 가계소득 감소로 전년 동기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 2분기에는 2.2%로 곤두박질했다. 일본식 장기불황 터널에 진입했다는 평가마저 들린다. 세계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의 “요즘 너무 사업하기 어렵고 세계경제도 안 좋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3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9일 다보스포럼에서의 경고가 섬뜩하다.
이번 노동개혁의 핵심은 정규직 고임금을 삭감해서 청년고용확대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기아차 양사의 임금 평균이 9천400만∼9천700만원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과 비교할 때 현대·기아차는 3.3배, 도요타는 1.7배”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 대기업들의 사례일 뿐 절대다수 근로자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노동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96년 세모(歲暮)에 김영삼정부가 날치기 통과시킨 노동법 이후 저임금 비정규직을 확대 재생산한 탓에 삶이 팍팍해졌는데 또다시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겠다니 말이다.
부실경영에 제재 대신 혈세로 벌충해주는 정부의 이중 잣대에도 불만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총 168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이 부실대기업에 투입되었는데 회수율은 65%이다. 예금보험공사와 캠코의 발행채권과 차관이자 55조원, 정부발행 국채이자 24조원 등 80조원을 포함하면 공적자금 회수율은 44%에 불과하다. 오너경영인들이 기업자금을 세탁하면 그만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개혁은 금상첨화여서 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내부유보금을 확보했다. 올 1분기 30대그룹의 현금잔고는 710조원이다. 공기업 유보까지 합치면 나라살림 규모 2년치를 훨씬 능가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진 것은 갈수록 잠재성장률이 추락한 때문으로 서민들의 지갑두께가 얇아지면서 민간소비도 덩달아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고용불안 → 소비위축 → 투자부진 → 비정규직 확대 → 고용불안 등 악순환이 성장동력을 갉아먹은 것이다. 소득감소 사례가 상징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2분기 국민소득’에 따르면 2분기 실질국민소득(GNI)은 전(前)분기보다 0.1%포인트 줄었다. 2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증가율 0.3%에 못미친다. 직전 분기대비 국민소득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2010년 4분기의 -1.9% 이후 4년 반 만에 처음이다.
임금유연화가 양질의 청년일자리 증가를 담보할 수 있을까. 결론은 ‘글쎄올시다’이다. 정규직 축소는 경제체질 약화 및 사회적 비용 증가만 촉진할 뿐 청년실업난 해결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경제권력이 대기업으로 이전되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오히려 고용불안 해소에 올인해야 할 시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은 50%를 초과하는 비정규직 수를 줄여야 잠재성장률이 올라간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인상 혹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내부유보금을 풀어서라도 청년고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일본경제가 강산이 2번 바뀌도록 버텨온 비결은 특유의 종신고용과 가계의 높은 저축성향이다. 내수시장은 수출과 함께 경제성장의 양대 축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정책은 오매불망 수출일변도의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에만 꽂혀있다. “미국 경제위기는 레이건정부 이후 지속된 반(反)노동적 경제정책이 노동자들의 구매력감소를 초래했기 때문”이란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질책이 돋보인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