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약 맺은 사람이 집주인이 아니라구요?"

지난 2002년 의정부 지역에서 청소업체를 운영하던 신모(79)씨와 그의 아내 김모(66)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원룸건물 주인에게 월세계약 체결 권한을 위임받았다. 원거리에 사는 건물주가 자주 건물을 찾을 상황이 못되자 평소 성실하게 원룸을 관리해 오던 신씨 부부를 믿고 계약 권한을 위탁한 것.

그러나 성실하던 신씨 부부는 알고 보니 사기 전과가 있는 '부부 사기단'이었다. 부부는 건물주가 정해진 날짜에 입금되는 월세금만 확인할 뿐 계약 내용은 크게 개의치 않는 점을 이용, 월세계약 위임장을 위조한 뒤 위탁받은 건물들을 전세로 내놓고 세대 당 2천만 원~3천500만 원씩의 보증금을 가로채기 시작했다.

이런 수법으로 신씨 부부가 지난 2007년부터 4년간에 걸쳐 가로챈 돈은 총 31명의 전세계약금인 8억 9천만 원. 부부는 건물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매월 50여만 원의 월세를 입금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나머지 돈은 사업자금이나 개인채무를 갚는데 썼다.

지난 2011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의 신고로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신씨 부부는 가족과 연락을 끊은 채 4년 간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 9일 이들은 부인 김씨의 당뇨 증세가 악화해 동두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가 잠복 중인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의정부경찰서는 1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신씨를 구속하고 김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가 고령이지만 서민의 전재산인 전세보증금을 날린 피해자들의 고통을 감안해 구속했다"며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반드시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고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등 세입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정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