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6·25 아픔 간직했지만 ‘그림같은 섬’
섬전체 덮은 야생화들 군락이뤄 ‘꽃향기 가득’
‘빼어난 경치’ 사람 발길에 다치지 않았으면…

서해안 자락은 해안선이 비교적 밋밋하고 섬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백령도는 북한과 인접해 늘 긴장감이 감돌고 있지요. 북한의 포격으로 몸살을 앓았던 연평도 역시 긴장 분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천 아래 지역은 비교적 평온한 지역이지요. 그런데 최근엔 중국 어선들이 몰려와 싹쓸이 조업을 일삼고 있어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서해안에 풍도(豊島)라는 작은 섬이 떠 있습니다. 150여명이 사는 그림 같은 섬마을이지요.

안산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면 풍도를 만날 수 있고 인천항에서도 연결됩니다. 풍도는 청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로 불리었지요. 하지만 청·일전쟁의 첫 전투인 풍도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이 풍요롭다는 뜻의 풍도(豊島)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섬 주민들은 청·일전쟁 때 떠내려온 시신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풍도 산기슭에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었다지요. 6·25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UN군이 길목에 있던 풍도에 들러 태극기를 꽂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작지만 사연이 깊은 곳이지요.

일본과 청나라의 전쟁에 우리의 땅과 바다가 피로 물들고 6·25 한국전쟁의 기억도 남아있는 섬이 바로 풍도입니다. 이렇게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풍도는 오늘도 잔잔한 바다 위에 누워 싱그러운 바람결에 높푸른 하늘을 보며 살아가고 있지요. 섬에 들면 80년 된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가 보입니다. 전교생이 고작 5명이지요. 고령자가 많아 청년회 나이가 60세까지라고 합니다. 뒷산엔 소정방이 심었다고도 하고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풍도로 피난 왔던 인조(仁祖)가 심었다는 500년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처럼 서 있지요. 이 은행나무가 풍도의 상징물인 셈입니다. 마을 곳곳엔 물고기나 조개 같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지요.

풍도는 야생화 천국입니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어느새 야생화가 하나둘씩 눈망울을 굴리기 시작하지요. 양지바른 언덕을 하얗게 수놓는 바람꽃을 시작으로 노란색 꽃잎의 복수초 등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뤄 섬 전체가 꽃향기에 파묻히게 됩니다. 사진작가나 동호인들 세계에선 이미 야생화 촬영지로 각인되어 있을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지요.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꽃들이 섬 전체를 덮고 있어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곳입니다. TV 인기 오락프로인 1박 2일에도 소개돼 제법 유명세를 탄 곳이기도 하지요.

주민들은 구전으로 전해오는 ‘배올로네 노래’라는 민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낙네들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노래지요. 선착장이 없던 시절엔 섬 가까이 온 배가 풍랑으로 정박하지 못하고 섬 주변을 맴돌다 다시 떠나야만 했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애태우다가 해후를 하면 아낙네들은 남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간 뒤 대문에 알록달록한 치마를 걸어 놓았다지요. 남편이 돌아와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표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참 애틋한 사연이지요.

주민들의 배고픈 설움을 채워 보릿고개를 넘겨준 고마운 꽃도 있지요. 참나리 과 야생화로 풍도 섬 전역에 지천인 ‘산나리 꽃’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 풍도 주민들은 이 꽃의 뿌리를 캐어 물에 담그고 쓴 물을 빼내어 익혀서 밥 대신 먹었다지요.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이 넉넉한 요즘에도 그 시절 그 맛이 그리워 가끔 산나리 꽃 뿌리를 캐서 밥을 해먹는다고 합니다. 섬에서 나는 여러 가지 산나물과 함께 먹으면 별미라는 것이지요. 봄이면 두릅나물이 지천이고 약초들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안 피는 꽃이 없다는 야생화의 보고(寶庫) 풍도에 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야생화 공원과 약초재배단지, 수산물 센터와 특산품 판매장은 물론 둘레 길과 탐방로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야생화 군락지와 원통형 등대, 해안산책로, 바다낚시 등 섬 전체가 새롭게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풍광도 빼어나고 물도 맑아 머지않아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에 자칫 원래 주인인 야생화가 다치거나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풍도가 야생화의 천국으로 오래도록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