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아침 3개·저녁 4개 준다고
타협·양보하는 것처럼 발표
원숭이 반발에 다시 아침 4개로
결정됐지만 저녁도 생각해 볼일
최근 현실정치 스타일과 흡사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말이 있다. 원숭이들과 그들의 조련사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이제부터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를 주겠다”고 하였다. 원숭이들은 몹시 화를 내었다. 그랬더니 조련사가 말을 바꾸었다.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 원숭이들이 기뻐하였다.

어려서 이 고사를 배울 때는 원숭이가 어리석다고 하였다.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일희일비하는 것이 성정이 미숙하고 시야가 편협한 탓이라 하였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어 겉으로는 함께 원숭이를 비웃었으나 실은 속으로 앙앙하였다. 내가 원숭이라도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가 좋겠다. 왜 원숭이를 어리석다고 할까.

그러다가 ‘장자’를 배우면서 ‘조삼모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와 조사모삼(朝四暮三)은 물론 다르다. 아침과 저녁이라는 중대한 시간 차이를 어찌 같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때 강의의 핵심이었다. 그 사이 머리가 컸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솔직하게는 아침과 저녁의 차이를 넘어서 같은 것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나중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은 일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지금 저녁을 믿고, 내일을 믿고, 나중을 믿고, 더 좋은 것이 다음에 온다는 것을 믿을 것인가.

혹자는 믿을 수 있다고 믿으라고 하였다. 본래 원숭이를 기르던 자는 원숭이를 무척 사랑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원숭이가 너무 많아져 할 수 없이 도토리를 7개로 한정하게 되었으며 원숭이를 사랑하므로 이들과 대화하여 합의점을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더 어처구니가 없다. 원숭이를 사랑한다는 자가 능력도 생각지 않고 원숭이를 기르고 불렸으며 무엇보다 7개로 나눠 먹이는데 아침에 4개를 준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고 3개를 주려고 했다는 말인가? 하루 먹을 것이 뻔하다고 아침에 배 곯리고 저녁에 더 먹인다는 생각을 하는 어미는 없다. 원숭이 조련사 마음을 대변한답시고 곡학아세하는 자가 바로 이런 교활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조련사의 간교함을 비판하는 말로 ‘조삼모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옳은 해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질문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궁금하다. 조련사는 처음부터 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 그보다 아침·저녁 나눠주는 도토리를 왜 갑자기 문제 삼게 된 것일까?

최근 현실정치를 겪고 배운 결과, 여기에는 확실히 기초적인 통치 스킬이 숨어있다. 아마도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발표하기 이전에는 아침·저녁 모두 4개, 총 8개였을 것이다. 그런데 도토리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도토리가 왜 부족하게 되었는 가도 따져볼 일이다. 어쨌든 도토리를 8개에서 7개로 줄이기로 하였다. 홀수는 똑같이 나눌 수 없다. 3:4, 4:3 어느 쪽일까? 아침에 4개 주는 것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준다고 발표했을까? 두말할 것 없이 타협·양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예상대로 원숭이의 반발이 있었다. 마치 양보라도 있는 것처럼 일단 아침에는 전과 같이 4개를 주기로 했다. 소위 유예기간이다. 만약 원숭이가 반발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그대로 확정이다.

원숭이가 되어 생각해 본다. 아마 원숭이들이 진심으로 만족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에게 바뀌지 않은 진실은 하루 7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저녁까지 시간이 있고 일단 아침을 지켰다. 저녁도 두고 볼 일 아닌가.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