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꼬인심사 지적은 말꼬리 잡기식 비난일 뿐
입시지옥·청년실업 대책없으면 ‘탈조선’ 폭발할 수도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지옥불반도’나 ‘헬조선’과 같은 유행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옥불반도는 블리자드사의 리니지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나오는 가상 지역을 패러디한 것이다. 지옥불반도의 관문인 ‘출생의 문’을 지나면 바로 ‘노예전초지’가 나온다. 이 곳을 지나면 ‘대기업의 성채’가 나타나는데 이 성채를 넘지 못하면 ‘자영업 소굴’, ‘치킨사원’, ‘백수의 웅덩이’ 등을 전전해야 한다. ‘공무원 거점’이나 ‘정치인의 옥좌’도 안전지대이지만 대기업 성채보다 공략하기 어려운 요새들이다. ‘이민의 숲’이 있으나 탈출은 어렵다. 결국 희망도 없는 미개지를 떠돌다 탑골공원에서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풍자의 스토리 라인이다.
네티즌들에게 ‘헬조선’은 지옥불반도의 동의어다. 한국의 옛 명칭인 ‘조선’에 지옥이란 뜻의 접두어 헬(Hell)을 붙인 합성어로 지옥 같은 한국이란 표현이다. 헬조선의 사람은 금·은·동·흙·똥수저로 상징되는 다섯 계급으로 나뉜다. 금이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평민들은 ‘탈조선’을 꿈꾸지만 그 실현은 불가능하다.
헬조선 담론이 부상하자, 한국을 지옥에 빗댄 표현의 과격성에 대한 지적도 있고, 모든 문제를 사회 탓으로만 돌린다는 개인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GDP 세계 11위, 국민소득 3만달러의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헬조선 담론이 신랄하고 공격적인 비판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풍자에 속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풍자(諷刺)적 표현에서 공격의 목적은 잘못된 현실의 교정과 개량이지 파괴나 폐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크다. 탈춤의 대사나 행동은 양반과 신분사회에 대한 신랄한 조롱과 풍자를 담고 있지만 해학을 통한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더 크다. 네티즌들의 ‘탈조선’이니 ‘죽창’이니 하는 표현 속에서도 부정적 형식의 언어를 통해 현실극복의 계기를 찾으려는 무의식이 엿보인다.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탈’ 한국을 꿈꾸어 볼 뿐이다. 죽창도 반란의 무기가 아니라 사회비판의 상징일 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표현의 과격성이 아니라 풍자가 담고 있는 현실이다. 이 신조어가 일부 젊은이들의 뒤틀린 심사가 증폭된 것이라는 지적은 말꼬리 잡기식의 비난일 뿐이다. 몇 가지 지표를 보자.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조사한 바로는 한국 청소년의 평균학습 시간은 주당 60시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으며, 학업스트레스 지수도 50.5%로 가장 높다. 이에 따른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취업의 문턱도 가장 높다. 청년 실업률은 10.3%에 달하고 체감지수는 11.3%다. 취업자들도 상당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다.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9.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것도 11년 연속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회원국이 감소 추세인데 대한민국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옥불반도의 ‘노예전초지’나 ‘백수의 웅덩이’는 객관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인 셈이다.
‘지옥불반도’는 조국 탈출을 꿈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청년세대가 스스로 그린 심리지형도이자 자신이 처한 절망적 현실에 대한 풍자적 스토리텔링이다. 이 풍자화에 더러 해학의 요소가 적지 않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임계치에 달한 청년세대들의 고통과 분노가 더 크기 때문이다. ‘헬조선’ 담론이 비판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그동안 복지를 강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입시 지옥과 청년실업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존의 대책이 언 발에 오줌누기식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청년세대의 상상적 ‘탈조선’이 어떤 형태로든 폭발할 수 있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