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의 늪이 깊어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온 서민들이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자살 등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카드빚에 쫓기고 부채에 짓눌려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서민들은 최빈층인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과 달리 사회 안전망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몰려 죽음을 택하는 비극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통신회사에 다니던 조모(34·용인시 풍덕천동)씨는 회사 동료들로부터 빌린 돈과 카드 빚 등 1억원을 갚을 길이 없자 지난 29일 오후 4시께 방에서 잠을 자던 60대 노모와 세살배기 아들을 목졸라 살해했다. 이어 퇴근한 아내도 목졸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조씨는 흉기로 손목을 자해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발견돼 목숨은 건졌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조씨가 이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유흥비로 사용한 카드빚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도박이나 경마등 방탕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조씨는 지난 95년부터 회사동료들로 부터 돈을 빌리고, 카드를 마구 발급받아 유흥비로 쓰면서 점차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가계대출 분위기에서 조씨는 여러 신용카드를 이용해 빚을 갚는 이른바 '돌려막기'로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을 길이 없자 결국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이라는 극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또 수원에서는 30대 아들이 쓴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 이모(63)씨가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30일 오전 아들의 카드빚 3천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갚은 뒤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안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씨는 '아들아 잘 살아라, 네 이름으로 통장을 해 놨으니 찾아서 갚아라'라는 내용의 짧은 유서만을 남겼다.

가족들은 이씨가 숨지기 전 주에도 3천200만원을 대출받아 아들의 카드빚을 갚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경제적 고통으로 인한 자살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 사회학자들은 “IMF이후 등장한 신빈곤 계층의 서민들이 임시변통으로 이용한 신용카드 대출이 전가족의 빈곤화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며 “탈출구를 잃은 이들이 자살은 물론 각종 범죄에 빠져들어 사회적 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