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파란만장한 삶을 접은 정몽헌(54) 현대아산 회장은 현대그룹 창설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이자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은 후계자다.

정 회장은 지난 1948년 9월14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의 176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보성고와 연세대를 거쳐 75년 11월 현대중공업 차장으로 현대그룹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현대건설 부장과 상무를 거쳐 지난 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 시절 문과대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꼼꼼하고 학구적인 성격으로 아버지 정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지난 92년에는 현대전자를 창립, 단기간에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대열에 올리는 등 기회에 밀어붙이는 '현대맨'의 뚝심을 과시했다. 또 같은해 현대상선 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됐을 당시에는 사식을 거부하는 의연한 자세로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역시 내 아들'이라는 칭찬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98년 그룹 공동 회장 취임에 맞춰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을 관장하기 시작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특히 지난 99년 반도체 부문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인수한 옛 현대전자가 세계 D램 부문 세계 1위로 급부상하면서 정 회장의 전성기가 활짝 열리는 듯했다.

정 회장은 그 이듬해인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을 통해 형 몽구(현대자동차그룹 회장)씨를 제치고 공식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왕자의 난' 이후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그룹에서 분리되고, 설상가상 그룹의 모태격인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까지 유동성 위기 끝에 출자전환으로 떨어져 나가, 현대그룹은 재계 10위권 밖의 소그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 회장 본인도 '왕자의 난'을 계기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같은해 6월 현대아산 회장에 취임 이후 대북사업에만 전념했지만, 지난해 9월 대북송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국 대북사업에 발목이 잡혀 비운의 기업인으로 세인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정 회장은 최근까지도 개성공단 개발과 금강산 육로관광 사업을 위해 미국과 일본을 잇따라 방문하고 육로를 통해 북한을 다녀오는 등 외견상 매우 의욕적인 활동을 해왔다.

평소 소탈하고 사려 깊은 성격으로 조직의 효율성과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 정 회장이지만 업무에 관해서는 부친 정주영 회장 못지 않게 '불같은' 성향이 있었다고 현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정 회장은 취미로 스키와 테니스를 즐겼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현정은(현대상선 현영원 회장의 딸)씨와 1남 2녀를 남겼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