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대표성 부각시킬지 궁금
미국 오픈프라이머리와
역선택 문제·투표방식도 달라
당대표들 공천 본선결과 책임
국민에 떠넘기는건 아닐지 의심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논란이다. 이 제도는 안심번호 이용 대국민 여론조사를 당내 경선에서 실시하고 그 결과로 지역 총선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정치개혁이란 명목으로 여야 대표가 전격 합의한 이 제도에 대해 언론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 간 갈등을 부각시키며 다양한 정치공학적 해석을 한다. 그런데 이 해석들로는 이 제도가 왜 도입되는지,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와 이 제도가 어떻게 다른지, 이 제도 도입이 선거제도적 측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 제도는 누구의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우선, 이 제도가 유권자 참여확대로 후보자의 지역 대표성을 정말 부각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 제도는 경선여론조사 수행 시 이동통신사 배정 가상번호 사용으로 개인정보 유출 불안감을 줄여 응답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반영 비율은 50~100%로 매우 높지만 경선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유권자 수는 매우 적고(예 300~500명/15만 유권자), 경선 후보자는 많으며(예 6~7명), 선거 초기 유권자들의 지지후보 미결정 응답률이 매우 높아(예 40~70%) 그 결과의 실효성 논란이 많다. 특히 응답률을 높여 전체 표본의 숫자를 키운다고 해도 지금처럼 유권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지지후보 미결정 응답이 많다면 이 제도는 무용지물이다. 이 때문에 표본 수로 여론조사 비용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서둘러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여론조사 기관의 비즈니스만 돕는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둘째, 유권자가 지지정당을 밝히지 않고 예비선거 투표를 하는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와 이 제도는 역선택 문제와 투표방식에서 다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타당 지지자가 자당 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역선택을 문제삼지 않지만, 이 제도는 역선택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미국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택한 주(洲)는 역선택이 경선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해 이 제도를 택한다. 역선택이 문제가 되면 코커스(당원경선)나 클로즈드(자당 지지자만 참여) 프라이머리를 선택한다. 이 경우 자신의 정당활동·지지경력·후원금 납부 등이 확인돼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방법도 우리는 후보자 연설만 듣고 온라인으로 투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은 후보자 연설청취와 더불어 관련 정보 숙지를 바탕으로 현장 투표 전 약 1시간가량 유권자들의 각 지역 소그룹 토론 후 직접투표가 이루어진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선거 제도적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공천에 관여하는 당대표·계파수장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본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범국민적 정치참여도가 낮은 현 상황에서 이 제도는 진성 당원을 많이 확보한 경선 후보자에게 유리하다. 이는 진성 당원이 많았던 친노 후보들이 모바일 투표제 방식 경선에서 대거 승리했지만, 정작 야당은 총선·대선·지자체 본 선거에서 모두 패한 사례에서 입증된다. 그런데 공천을 주도한 야당 대표·계파 수장들은 선거 패배 책임논란에 시달렸다. 만약 이 제도가 지금 도입된다면 각 당 대표·계파 수장들은 공천 책임을 지역유권자에게 돌릴 기회가 마련된다. 이는 진성당원 과열경쟁 경선제의 문제점은 가리고, 정당의 책임정치는 희석시키며, 그 결과로 빚어진 정치 불신의 책임은 모호하게 만들어 결국 국민의 정치참여를 더욱 막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제도는 유권자와 정치인 모두에게 더 많은 노력·경험·시간을 요구한다. 미국의 50개주는 유권자 정치참여 수준을 고려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무수한 예외와 함께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선거 때마다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의 도입을 당내 공천갈등 문제 해결을 위해 여야 대표가 추석날 전격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모르겠다. 정치권은 정치개혁이 선거제도 관련 탁상공론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겸허히 수용하기 바란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