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401000212000010041
일본에선 독일―‘Deutschland(도이칠란트)’를 ‘도이츠(ドイツ)’로 표기한다. ‘잉글랜드’를 ‘잉글’로 줄인 꼴이다. 그나마 ‘도이치’도 아닌 ‘도이츠’라니! ‘도이칠란트’의 취음(取音)인 ‘獨逸(독일)’과 ‘獨乙’ 또한 웃기지만 한국은 ‘독일’을 택했고 중국에선 ‘獨逸’이 아닌 ‘덕국(德國:더궈)’이라 부른다. 하지만 글자 뜻은 둘 다 근사하다. ‘홀로 빼어나고 편안한 나라’가 ‘獨逸’이고 덕 있는 나라가 ‘德國’ 아닌가. 어쨌든 독일의 체면과 신뢰가 말이 아니다. 1938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폭스바겐(Volkswagen)―국민(들) 차가 77년간 꼿꼿이 지켜낸 신뢰와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상실했기 때문이다. 독일 언론은 폭스바겐이 자살을 선택했다고 썼고 그 자동차에 조화(弔花)를 얹어 장례식까지 치렀다. 사망까지는 몰라도 크랑켄바겐(krankenwagen→구급차)에 실려 간 것만은 틀림없다.

‘made in germany’는 완벽한 품질과 안전성,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런 폭스바겐이 지난달 하순 배기가스 편법 꼼수가 들통 나자 전 세계에서 리콜 사태가 벌어졌는가 하면 승용차 500만대, 상용(商用)차 180만대, 아우디 210만대 등 1천100만 대가 수리에 들어갔고 미 텍사스 주 해리스군(郡)은 1억 달러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그런데 소송 제목이 별나게도 ‘국민건강을 해칠 공포감 조성’이었다. ‘독일의 대처’ 메르켈 총리 지지율도 70%대→50%대로 폭락했다. 엊그제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은 54%로 2011년 유로 존 재정위기 후 최저였다. 그래선지 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일독일 25주년 기념식에 간 그녀는 더더욱 ‘롱 페이스(침울한 얼굴)’가 됐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신뢰다. 인간사랑, 물건 선택도 신뢰가 먼저고 버팀목이다. 폭스바겐이 망친 독일제품에 대한 신뢰는 히로시마 원폭보다도 타격이 크다. 하지만 EU의 맹주 독일은 아직도 시리아 난민의 꿈이다. 지난달 말 오스트리아~독일 국경의 100m 다리 위에선 수백 명의 난민이 10도 이하의 추위에도 독일 입국 절차를 기다리며 50시간이나 떨었다. 그들의 꿈을 품기 위해서라도 독일의 신뢰 상실은 더 이상 안 된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