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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당청, 유승민 사퇴이후 다시 수직적 관계 순치 형국
새정치, 당안팎 내홍·분열 심화로 갈등 고착화 양상
야, 정부 견제 동력 잃고… 여, 존재감 찾기 어려워


1996년의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국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다. 그리고 그 해 말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강행하고 1997년도 초의 수서 비리와 이후 닥친 김현철씨 구속 등 가파른 레임덕은 김영삼 정권을 식물정권으로 전락시켰다. 임기 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6%대였다. 정권은 김대중 정부로 넘어갔다.

내년 총선은 1996년의 15대 총선 이후 20년만이다. 그리고 다음 대선의 시기도 그 당시와 같다. 청와대로서는 15대 총선을 반면교사 삼아 20대 총선에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측근 친위그룹의 의원들을 여의도에 입성시키려 할 것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때는 대구지역 출신 의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반면 대구 경북 출신의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이 박 대통령을 수행했다. 이른바 ‘유승민 찍어내기’때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대구지역 의원들에 대한 압박과 경고의 의미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측근 그룹에 대한 공천에 대한 의지를 의도적으로 대외에 천명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며칠 후 인천행사 방문 때 새누리당 인천출신 의원들이 모습을 나타낸 것과 대조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첫 해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국정의 축을 상실했고, 다음 해인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갈 길 바쁜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는 메르스 사태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이로 인해 조성된 남북긴장을 적절히 관리함과 동시에 방중외교 성과 등으로 국정 지지율은 박근혜 대선 후보 당시로 복원되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독무대 정국이 여의도 정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평가에 이론(異論)이 없다. 정부 여당은 박근혜 정권이 임기 반환점을 돈 이후 노동개혁을 최대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노·사·정 타협과 함께 한국노총이 이를 수용함에 따라 노동개혁의 전망도 밝아 보인다. 이는 정국 주도권 장악으로 귀결된다. 게다가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한·미정상회담과 10월 말 또는 11월 초 개최가 유력한 한·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연말까지 줄줄이 잡혀 있는 다자외교 행사들을 무난하게 치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해 가면서 새누리당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오픈 프라이머리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하지만 이미 새누리당 당헌·당규의 우선 추천제까지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 김무성 대표로서는 청와대에 판정패 한 형국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퇴진 이후 당·청 관계는 다시 수직적 관계로 순치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과 혁신안이 통과되었으나 야권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기인하는 원심력은 강화되고 있다. 당 안팎의 내홍과 분열상이 심화하고 있다.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제기돼 오던 계파 갈등은 국민공천제로 잠시 관심이 비껴갔으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천정배 의원 발 신당 창당과 분당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갈등은 구조적이며 고착화돼 가고 있는 양상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의 승리를 점치는 전망은 현 단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참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건강하지 못한 야당은 갈등을 조정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정당체제의 강화와 모순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현재의 여당이 그렇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격차가 크지만 여당 지지율은 야당의 무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미 야당은 내부의 권력다툼에 청와대를 견제하고 비판할 동력은 물론 의지도 상실했다.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야당, 입법부의 한 축임을 인식하는 지성있고 품격있는 여당의 존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강화된다면 정치실종과 정치부재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당·청과 여권 내부의 역학관계에서의 적절한 조화와 상호 견제가 절실하다. 한국정치에서 정치복원은 현재로서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