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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웅 나갔다 만난 외국여자
메모지 내밀며 안산가는 길 물어
버스 탈때까지 있으려 했는데
“고마워요” 하며 가보라고해 당황
더 머물면 부담줄까 돌아섰지만
‘잘 갔는지’ 온종일 떠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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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가
지난 달, 1호선 전철이 멈춘 날이 있었다. 엄마를 배웅하러 동인천역에 갔다가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아직 뉴스에도 나오기 전이었다. 역은 아수라장이었다. 노인들이 역무원을 붙들고 당신들의 행선지를 애타게 묻고 있었다. 결국 엄마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섰는데 누군가 “저기요,” 불렀다. 외국에서 온 여자분이었다. 몸집이 작았고 메모지를 한 장 들고 있었다. “나 한국말 잘 못해요.” 그녀는 메모지를 내밀면서 신포시장은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메모지의 숫자들은 버스 번호였다. 신포시장은 버스를 안 타도 지하도를 따라가면 된다고 했더니 인천역은요? 다시 물었다. 가시는 곳이 인천역이에요? 신포시장이에요? 했더니 안산이라고 했다. 순간 나도 아득해졌다. 전철이 아니라면 대체 인천에서 안산은 어떻게 가는가?

더듬더듬 대화해보니 그녀는 동인천역이 안 된다고 하니까 인천역으로 가서 1호선을 탈 생각이었다. 여기로 올 때 인천역에서 내려 누군가 적어준 그 번호들의 버스를 타고 신포시장으로 가서 출입국사무소를 다녀왔던 것처럼. 그녀가 돌아올 때 인천역이 아니라 동인천역으로 와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또다시 알려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통 전철을 탈 수 있고 버스로도 한번에 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길로는 집에 갈 수 없었다. 내가 부평에서 전기가 나가서(그때만 해도 단순 정전인 줄 알았다) 모든 전철이 끊겼다고 하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휴대전화 앱에서는 버스를 타고 송도역으로 가서 수인선을 타는 경로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떡해, 버스 안내방송 잘 못 알아들어요.” “그러면 경찰서에라도 안내해드릴까요?” “거기 가면 어떻게 해줘요?” 하기는 경찰도 수인선 타는 경로를 알려줄 것이다. 그러니까 길은 그것 하나이고 하필이면 전철이 끊긴 날 이국의 낯선 도시 이 자리에 있게 된 당혹감과 두려움을 이기고 그녀가 이동해가는 것밖에 방법은 없었다.

다시 역으로 가서 직원을 찾았다. 승객들에게 둘러싸여 쏟아지는 질문들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이지 않습니까?” 하면서 난처해했다. 그 틈에 내가 외국분이신데 안산까지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자 한숨을 쉬었다. 뜻하지 않게 도움을 준 건 각자 자신들의 일로 역무원을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서 46번 타고 송도역 가면 되는데, 하는 말들이 나왔고 그게 1호선보다 나은데, 빠른데, 하는 동의가 이어졌다. 이미 알고 있던 경로였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자 비로소 용기가 난 것일까? 그녀는 버스번호와 옥련고개, 송도역, 오이도 같은 경유지들을 메모지에 적어달라고 했다. 사실 말 자체는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보다는 사람들의 끄덕임, 동의, 괜찮다는, 어렵지 않다는 표정 같은 것을 믿는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그녀가 “아가씨도 송도역 가요?” 하고 물었다. 그녀에게는 나도 안산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라고 하자 그녀는 그러면 이제 그만 가보라고 했다. 고마워요,하면서. 버스 탈 때까지 있을 작정이었던 나는 당황했다. 버스기사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송도역에 내려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건 내게는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이었는데. 하지만 더 머무르면 혹시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싶어 그만 돌아섰다. 이제 갈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을, 괜찮다는 말을, 좀 나아진 표정과 옅은 미소 들을 나도 믿었다. 하지만 그날 하루 종일, 그 이후에도 떠올렸다. 그녀는 집으로 잘 갔을까, 하고. 잘 갔으면 좋겠다. 그곳은 안산이니까, 안산이니까 더 헤매지 않고 무사히.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