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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파리의 스산한 가을에, 한국이 단풍처럼 물들고 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앞두고, 국립국악원이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콘텐츠 마다 색깔이 분명하지만, 프랑스의 언론은 특히 세 명의 여인을 주목했다. 김금화(굿), 안숙선(판소리)은 이미 기립박수를 받았다. 요즘말로 ‘격한’ 반응이다. 또 한 명의 여인이 프랑스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바로 무용가 안은미. 파리의 곳곳에서 ‘EUN-ME AHN’이 적힌 포스터나 배너를 만난다. 파리의 가을바람에서, 그것도 덩달아 춤을 추는 듯하다.

안은미의 춤 공연은 분명 아름다운 이변이다. 한달도 넘게 공연이 되는데, 모두 다 매진이다. 안은미의 춤에는 해학이 있다. 객석에서 과묵하기로 유명한 파리지앵도, 안은미의 춤공연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번 파리 가을축제에선, 안은미의 댄스 3부작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사심없는 댄스(Dancing Teen Teen), 조상님을 위한 댄스(Dancing Grandmothers)에 이어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댄스(Dancing Middle-Aged Men)까지 선보였다.

대한민국의 12명 아저씨들이 파리로 향했다. 여기 아저씨들은 대한민국에서 반듯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아저씨들에게도 저마다 내재된 끼가 있다. 이번 공연에선 아저씨들은 저마다 솔로로 춤춘다. ‘예비군가’에 맞춰서 교통정리하듯 춤을 추는 대기업과장님(이승엽)이 있다. ‘한잔의 추억’에 맞춰서, 거나하게 취해 객기를 부리듯 춤추는 대학교수(오동석)도 있다. 노가리 안주가 유명한 호프집을 경영하는 아저씨(성성열)는, 로맨틱한 색소폰에 맞춰 춤을 추다가, 객석을 향해 장미꽃을 던진다. 은행에 근무하는 아저씨(정연우)는 마치 음주 댄스 같다. 눈은 이미 벌게 있고, 추다가 계속 넘어진다. 나름대로 슬랩스틱을 설정한 거다. 아저씨들의 배경음악은 색소폰(안승구)으로, 프랑스 샹송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트로트와 7080노래를 넘나든다. ‘한옥의 현대화’를 외치면서 스스로 ‘동네목수’라 칭하는 아저씨(조전환)는 시종일관 ‘대패춤’만을 출 뿐이다. 그런데 이런 대패질의 완급을 통해서, 큰 나무 대패질과 작은 나무 대패질의 다름도 묘하게 전해진다. 한옥을 짓는 공간에서의 대패질을 통해서, 소나무 향도 또 흙내음도 전해졌다면 과장일까?

12번째 아저씨는 바로 나(윤중강)다. 나는 일어서서 ‘아리랑’하고 크게 외쳤다. 색소폰이 느리게 연주하는 아리랑 속에서는, 우리가 대한민국 ‘아저씨’임을 또 크게 외친다. 한국의 전통춤사위를 제 나름대로 응용해서 춤을 추다가 - 어쩌면 발광을 하다가 - 쓰러진다.

이때, 또 다른 아저씨 이희문(경기민요)이 전통적인 발성으로 아리랑을 부른다. 이 전통아리랑은 락 비트의 빠르고 경쾌한 아리랑으로 변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연장 천장에서 물을 내리는 장치를 한 거다. 아저씨들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이어진다. 막춤을 추는 아저씨들이 이리 말하는 것 같다. “예술이 별거냐? 춤이 별거냐?” “한국에서 놀던 가락, 파리에서 못 놀쏘냐!” 비는 점차 거세지고, 음악이 꺼져도, 조명이 꺼져도, 아저씨들은 계속 춤을 춘다. 이 때 내리는 빗물이 마치 눈물 같다면, 아저씨의 센티멘탈일까?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거기서 그렇게 놀았다. 조명이 다시 들어오니, 객석의 파리지앵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10. 2 ~ 3. 예술문화의 집, Maison des Arts et de la Culture)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