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득구
강득구 (새정치·안양2) 경기도의회 의장
정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방안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역사교과서가 검정제로 완전 전환된 것이 2011년이었는데, 불과 몇 년만에 국정으로 다시 바꾼다는 방침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로 전환됐던 것이 바로 1974년 유신시대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한다는 것, 국가가 소유한다는 것, 하나의 관점으로 단일화한다는 것은 ‘역사’의 의미로 옳지 않다. 역사적 사실은 불변하는 하나이지만 그 사실의 기록, 곧 역사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그리고 역사 교육은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그것이 국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헌법은 제31조 4항에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참고할 만한 헌법재판소 판례도 있었다. 1989년 한 중학교 국어 교사가 국정교과서 제도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1992년 8대1 의견으로 국정 교과서 제도를 합헌으로 판단하면서도 한국사 교과서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 흐름에도 맞지 않다. 국제연합(UN)은 2013년 국가가 단일한 역사 교과서를 강요하는 것은 아동권리규약에 명시된 권리와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국정 교과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다.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정에서 검인정을 거쳐 자유발행제로 바꿔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나라는 북한, 러시아, 방글라데시, 터키, 아이슬란드, 그리스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정부는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 과장하고 있다며, 국정 교과서를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고 한다. 역으로 그런 편향적 사고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역사 왜곡 교과서가 될 것이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국정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왜곡한다면, 앞으로 무슨 낯으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을 비난할 수 있을까.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궤변 중의 궤변이다. 국정 교과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가 될 수 없다. 일선의 교사들은 국정 교과서가 나오면 학습 자료를 따로 만들겠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은 지금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정 교과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역주행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 자체로 ‘교과서’다. 우리는 역사의 심판이 준엄하다는 교훈을 역사로부터 배웠다.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2013년 5월, 미 의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했던 이 말을 스스로 되새겨봤으면 한다.

/강득구 (새정치·안양2) 경기도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