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디가 밀라노의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연습 중 트롬본 주자가 깜빡 조느라 박자를 놓쳤다. 베르디가 호통을 치자 그가 변명처럼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어 너무 쪼들리고 지쳐 있습니다. 12~3시엔 과외 레슨을, 7시까지는 카페 연주를, 저녁 오페라가 끝나면 호텔 문지기를 서야 합니다.” “맙소사, 그럼 잠은 언제 자나?” “바로 지금 오페라 시간에 조는 겁니다.” 겉보기엔 그럴 듯한 악단 멤버의 삶이 생활고 덩어리였던 것인가. ‘삶의 질’이라면 짧고 굵게 사느냐, 가늘고 길게 끄느냐가 문제다. 대왕 중의 대왕 알렉산더가 그리스의 통속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소원이고 뭐고 햇볕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했다. 그런 디오게네스는 83세, 알렉산더는 33년 살았다. 모차르트 35년, 셰익스피어와 나폴레옹은 52년씩 살았고…. 그래선지 부자에다 재상까지 지낸 문호 괴테가 최고의 삶의 질을 누린 사람으로 꼽힌다.
인생은 전혀 난파 날짜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항해―고해(苦海)다. 무(無)에서 출발한 짧은 망명길이지만 삶의 질은 좀처럼 나아지기 어렵다. 술술 잘 풀리는 사람과는 반대로 사사건건 허들에 넘어지는 삶도 흔하다. 나아지려니, 비상하려니 꿈꿔도 영영 서막(序幕)으로 막이 끝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선지 셰익스피어도 ‘햄릿’을 통해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 것이 문제’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뇌했다. 그런데 가장 큰 불행은 행복불감증이다. 거지 디오게네스, 구걸 시인 김 삿갓을 누가 불행했다고 할 건가. 산소호흡기로 숨 쉬지 않는 것만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하고 멀쩡한 청력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에, 괜찮은 시력으로 새빨간 단풍에 취하는 것만도 행복 아닐까.
엊그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삶의 질’ 보고서는 한국이 36개국 중 27로 전년보다 두 단계 떨어졌다고 했다.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20%나 많고,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도 없고, 자녀와 함께 있는 시간도 짧고 등등이 이유다. 그래도 뻐기며 잘 나간다는 OECD 국가 중 그 정도면 괜찮은 삶의 질 아닐까. 꼴찌도 아니고….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