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들 66년째 가족 생사조차 모르는 한많은 사연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17’ 형은 동생 못보고 그만…
상봉단에 누락된 ‘1세대들 만남’ 정부가 답해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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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위원
대문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골목길 끝까지 따라왔던 동생이 형을 쳐다봤다. “형, 아무래도 안되겠어. 난 집에 갈래.” 잡았던 손을 스르르 풀며 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 갔다. 형은 뛰어가는 동생을 향해 외쳤다. “한달 뒤에 올게!” 1949년 여름 어느 날, 평안북도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17번지 앞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형은 동생과 그렇게 헤어졌고, 한달뒤 돌아가겠다는 형은 6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대가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포탄이 떨어졌다. 혼비백산.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말한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반은 여기 남고 반은 내려가라. 그리고 곧 다시 만나자.” 그래서 가족의 반은 남쪽으로 내려오고 반은 그냥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들도 지금까지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고, 그 나이 많은 어른 역시 세상을 떠난지 한참 지났다. 실향민 중 이 정도 슬픈 사연이 없는 집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몇 안되는 가족이 모이면 어른들은 고향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 이야기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6·25 전쟁 얘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어린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모이면 왜 무용담을 풀어 놓듯 오랜 시간이 지난 고리타분한 얘기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지, 마치 장롱속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보고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게 먼 옛날 얘기가 아니었다. 불과 10여년전에 끝난 전쟁 이야기였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였던 2002년 월드컵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면 우리 아이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린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때 어른들도 불과 10여년전에 끝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어제 일처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때 가족들은 마치 엄숙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듯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일종의 가족가(歌)였다. 이미 어른들은 한참 취해 있었고 어린 우리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도 많이 들어서 가사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 이 노래 뿐만이 아니다. ‘애수의 소야곡’ ‘불효자는 웁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나이는 어렸지만 우리는 그 정도의 노래는 다 따라 불렀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왠지 이 노래가 가장 슬펐다.

지금 금강산에서 이산 가족 상봉행사가 열리고 있다. 96가족, 389명의 남측 상봉단과 이들과 만나는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은 동반 가족을 포함해 141명, 모두 합해도 500여명 남짓이다. 지난달 9일 대한적십자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무작위 컴퓨터 추첨은 로또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무려 662.9대1을 기록했다. 추첨장에는 머리가 하얗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추첨과정을 지켜보다 추첨에 떨어지자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생존한 이산가족 중 80살 이상 고령자가 3만5천997명이다. 이들의 요구는 오직 하나다. 만나게 해주지 못한다면 생사확인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물론 역대 어느 정권도 생사확인 조차 해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2월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 이후로 4천807명의 실향민 1세대가 세상을 떠났다.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17번지에서 이별 장면을 연출했던 형도 그토록 보고싶던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정부에 상봉 정례화 등 활성화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일회성 이벤트화를 지적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당은 그렇다 치고 과연 야당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야당이 여당이었던 시절 햇볕정책과 동시에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강력히 요구하고, 그것만 관철시켰어도 이산가족의 슬픔이 지금처럼 처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상봉단에서 누락된 1세대 실향민들은 그리운 가족을 언제 만나러 가는지 이제 현 정부가 답해야 할 때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