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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신부)

시성(詩聖) 미당 서정주의 여섯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에 수록된 ‘신부’ 전문이다. 인용이 길었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부분 이라도 잘라내면 신부의 한과 그로인한 절박함이 훼손될 것 같아서다. 성질 급한 신랑의 행위는 사려 깊지 못했다. 이런 남성에 신부의 수동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다림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시의 비극은 절정을 이룬다. 역시 미당이다. 평론가들은 한 술 더 뜬다. ‘신부의 매서운 기다림은 신랑에 대한 독기와 수동적 저항의 의미를 내포한다’‘우연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이 어떻게 운명론에 순응해 나가는지 보여준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기막힌 사연들이 전해 온다. 특히 북쪽의 남편 오인세(83), 남쪽 아내 이순규(85)의 사연이 심금(心琴)을 울린다. 고왔던 새색시 머리엔 어느새 하얀 눈이 쌓였고, 북쪽 남편은 차마 신부의 손을 잡지 못했다. 1년도 못살고 6·25 전쟁 직후 훈련 받으러 간다며 행방불명 된 남편이다. 그리고 65년만의 해후(邂逅). 미당의 시보다 더 질기고 모진 사연 아닌가. “65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그래요. 보고 싶었던 것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눈물도 안 나오잖아. 할 얘기는 많지만 어떻게 다 얘기를 해.”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2박3일 동안 불과 12시간. 그들 앞엔 또 길고 긴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