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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작가
사도세자 최후의 8일을 다룬 영화 ‘사도’는 아비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회상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바탕은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이다.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지만 생모의 출신이 미천했다. 형인 경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왕이 되었기에 정식 세자 교육을 못 받았다. 경종을 독살하여 왕위를 차지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왕의 자격과 자질을 의심하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던 영조는 아들이 태어나자 일찌감치 세자로 책봉하고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와 사랑은 곧 실망과 증오로 바뀌었다. 자신이 정한 높은 기준에 아들이 못 미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영조는 세자를 야단친다. “이 좋은 환경에서 왜 공부를 안 하니?”

아비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아들은 점차 모든 노력이 헛수고란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의 병을 얻어 기행과 살인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한중록’의 무인년(1758년) 이월 이십칠일 기록을 보자. 세자가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을 죽이거나 하여야 마음이 낫습니다” 하니 영조가 이유를 묻는다. 세자는 대답한다. “사랑하지 아니하시기에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일국의 세자가 아버지의 인정을 못 받아 화가 난다고 홍길동처럼 가출할 수도 없는 일, 정신병에 걸린 세자는 무덤을 짓고 관 속에 들어간다. 어쩌면 그는 자궁회귀, 재생을 원한 것일까. 이번 생에서는 아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차라리 죽어 다시 태어나길 바란 것일까. 그러나 아비는 이번에는 아들을 자궁 아닌 뒤주에 넣는다.

탕평론을 내걸었지만 즉위를 도와준 노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영조와 소론 정견을 가진 세자의 대립을 사도 세자 죽음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는 혜경궁 홍씨가 의도적으로 부자간 대립과 세자의 정신병을 과장하여 ‘한중록’을 기록했다고 본다. 사도세자 죽음을 주도한 노론 친정 세력과 아들 정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남편의 죽음을 방조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그러나 혜경궁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아들 석철은 세손으로 봉해지기는커녕 귀양간 제주도에서 병사하고, 친정은 몰락하고, 자신은 사약을 받은 세자빈 강씨의 선례가 겨우 120여년 전이었는데.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공신들 덕분에 즉위했으며 병자호란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조 역시 자신의 왕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청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강빈이 정치적 경제적 능력을 보이자, 이들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까 의심했다. 이런 상황은 인조의 소현세자 독살설을 낳았다. 사도세자 이전에 나쁜 선례가 역사에 이미 있었던 셈이다.

영화에서 영조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라고 외쳤지만 결국 사도세자의 참변은 역사에 ‘임오화변’으로 기록되었다. 역사에 선례를 남긴다는 것은 무섭다. 개인적 열등감과 한 때문에 ‘집안일’과 ‘나랏일’을 구분 못하는 것은 더욱 무섭다. 지금, 새로운 나쁜 예가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즉위 후 아버지인 사도세자 명예 회복 사업을 벌인 정조야 다른 나랏일도 잘했다만.

/박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