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루는 아래층에 사는 이웃 Y로부터 인터폰이 울렸다. Y와는 층간소음으로 심하게 다퉈 서로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다. 약간 긴장된 상태로 Y를 맞았다. Y 역시 S처럼 예상외의 말을 했다. ‘집에 디지털도어록이 고장 났는지 열리지 않는다. 열쇠수리점에 전화를 하려는데 휴대전화마저 집에 두고 나왔다. 휴대전화 좀 빌려줄 수 있겠냐’ 였다. Y 또한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연이어 일어난 S와 Y의 일에 조금 당혹스럽고 어이없기도 했다. 근데 일이 다 해결된 뒤 마음을 가득 채우는 뿌듯함과 흐뭇함은 또 뭔가 싶었다. 그리고 내가 이웃에게 받았던 도움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여행 갔을 때 쌓인 신문과 우유를 치워준 일, 급한 일로 어린아이를 맡겼던 일 등. 생활에서 잊힌 지 오래된 ‘멀리 사는 친척보다 이웃이 낫다’,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층간소음, 담배 연기, 애완동물 등으로 이웃 간에 불미스런 일이 자주 생기는 요즘이다. 이웃과의 사이는 어떠해야 할까? 어릴 적, 옆집 철수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이웃 사정을 훤히 아는 사이는 아직 내게 부담이다. 하지만 “이웃사촌이라고 급할 때는 떨어져 사는 딸보다는 한 지붕 밑에 사는 그 사람들이 더 의지가 되실 거 아녀요?” 라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 속 문장에 공감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김희정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