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본 -희용 사진
이희용 교사·교육학 박사
오늘도 우리 집 아이는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교사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벌점을 준다. 교사는 학생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인정 어린 벌점을 부여한다. 학생들 역시 교사의 애정 어린 벌점을 고맙게 받는다. 그러나 현실 속 아빠이자 교사인 나는, 우리 집 아이에게 혹은 학교 학생들에게 벌점을 줄 수 없다.

벌점 제도가 없어진 지금,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 학교의 성격에 따라 학생들은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인다. 특목고의 학생들은 학교의 규칙 속에서 자신들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아니 그 이전에도 그렇고 벌점 제도가 없어진 현재도 이러한 모습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비해 일반계 고교 중, 일부 학교나 신설고의 경우, 학생 지도에 혼란을 겪는다. 1년 전의 모습도 그랬지만 벌점이 없어진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신설고의 경우, 학생의 전출입 건수는 기존 안정화된 학교에 비해 발생 빈도가 높다. 실례로 안산의 모 일반계 고교에서는 전체 교원 88명 중, 61명이 여 교사이며, 10월 현재 전입·전출생이 30여 명에 달한다. 20여 명의 전입생 중 25%가 특성화 고교나 대안 학교에서 온 학생들이다. 그리고 전입생 일부는 재학생과 친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입 이유는 개인 사정(성적, 적성이 주 요인)에 의한 거주지 이전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전입의 이유가 기존 자신이 다니던 학교생활의 부적응에 있거나 다른 이유가 있다면, 전입생의 학교생활은 본인에게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범위를 넘어 타 학우 나아가 교사들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학교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는 신설고라면, 사정은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이러한 학생이 전입한 경우, 생활 지도가 지극히 어렵다. 교사의 성별, 연령을 떠나 안하무인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교사 교권에까지 도전장을 내밀며, 성실한 학생의 학교생활마저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학교의 주인인 양 거들먹거리고, 복도를 활보하며, 그들끼리 부정적 전선을 구축한다. 그들은 오직 수업 일수를 채워 졸업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 앞에 학교의 시스템은 철저히 무너진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 교육’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 교육을 포기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물고기에게 달리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고기는 좌절하기 마련이다.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무법자인 몇몇 아이들이 과연 물고기인지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교육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환경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를 정직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냥 보통의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시스템을 물고기인 그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교의 질은 학생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호세 마리오 신부처럼 끊임없는 인내와 교육으로 그들에게 대안적 삶을 모색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상호 공명 하는 공동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벌점 제도의 종말은 교사에게 사형선고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희용 교사·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