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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작은공터에 열린 축제
각종 전시·교육프로그램 등
내용의 독창성 찾아볼 수 없는
문화로 포장된 행사 점점 늘고
행사장 새치기·상스러운 말 등
관람객들 낮은 수준에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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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 우석헌자연사박물관장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 구석구석에서 축제와 행사로 분주하다. 이곳저곳 박물관에서도 문화예술을 접목한 전시 및 프로그램 운영으로 여념이 없다. 이렇게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곳곳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우리나라 문화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봄직하다. 즉, 외형적인 부분에서는 선진국과 견줄만한 문화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깊이 있는 시각으로 문화시설 및 각종 문화행사를 들여다 볼 때 선진국과 견줄만한 수준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행사의 내용, 운영되는 프로그램, 문화를 향유하는 소비자의 태도 등 구성요소가 아직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문화공간에서 사람들이 연출하는 각양각색의 행동은 우리 문화수준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리고 있기에 씁쓸해 진다. 문화수준을 높이고 질 높은 문화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문화 향유자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절감하는 시간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문화를 찾고 문화체험을 선호한다. 이렇게 문화소비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문화로 포장된 다양한 행사들이 정체성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의 작은 공터에서 진행되는 문화축제, 각종 문화시설에서 진행되는 공연행사,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 및 교육프로그램 등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취향에 맞춰 선택적으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의 독창성,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음에 아쉽다.

문화행사장에서 우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개개인의 문화수준을 읽게 된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곳에 차를 밀고 들어와 클랙슨을 울려대는 사람, 입에 담기 어려운 상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사람,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하다 들키면 오히려 큰 소리로 화내는 사람 등. 즉흥적으로 연출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우리 문화수준의 현주소를 직시하게 된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관람객 한 분이 박물관 직원을 상대로 어린아이 나무라듯 호통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 중년 남성이 박물관 로비에 자신의 자전거를 들여 놓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박물관 직원은 로비공간은 모두가 머무는 곳이니, 외부에 자전거 거치대를 이용해 달라는 요구로 인해 발생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요청이 거절되자 “이 자전거가 얼마나 비싼지 알고 하는 소리냐? 밖에 놓았다가 누가 가져가면 책임질 거냐?” 며 주변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직원을 꾸짖었던 것이다. “내가 파워블로거야, 박물관에 대해 좋은 글 올려주려 했는데, 서비스가 형편없어”라며 흥분된 어조로 던진 마지막 말이 지금도 씁쓸히 기억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해 있는 푸시킨 기념관을 답사하면서 관람객들의 수준 높은 태도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푸시킨이 살았던 집을 그대로 보존하여 그가 사용했던 소소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관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있는 푸시킨을 대하듯 예의를 다해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었다. 문화를 대하는 태도나 관람예절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에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박물관은 문화가 집약되어있는 곳이다. 문화를 디자인하고 창조하여 더 높은 가치로 문화 선진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박물관 전문 인력들은 이런 사명감으로 문화소비자의 억지스런 행동에도 인내하며 힘차게 달려가는 것이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문득, 푸시킨이 남긴 ‘삶’중의 시구가 마음을 파고든다. 지금 보여 지는 현상은 발전을 위한 과정임을, 내용이 튼실한 문화행사, 수준 높은 문화향유 태도를 꿈꾸기에 오늘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확신한다. “오늘 저지른 남의 잘못이 어제의 내 잘못이었음을 생각하라”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이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문화를 대하는 어제의 내 모습을 알기에 수준 높은 문화소비자가 성큼 다가올 내일을 기대해 본다.

/한국희 우석헌자연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