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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이 사이로 가랑비가 가랑가랑하다

가랑이 사이사이 가랑잎이 굴러 간다

가랑이 사이 가랑비에 옷소매가 닳는

젖은 눈에 가망 없는 비 가랑가랑하다

최동호(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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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부분을 전체로 바꾸며 빛바래 가는 계절이 깊이 들어와 있다. 가을이 전체 풍경이 되기 전에는 ‘가랑이’와 ‘가랑비’처럼 아슬아슬하면서 살짝살짝 비치는 ‘한 계절의 섬세한 여운’을 목격하기도 했다. 선연하게 대상에 접속하지 못하는 가랑이와 가랑비, 가랑가랑과 가랑잎은 가을이 거느리는 ‘소멸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가랑이 사이에 오는 가랑비는 ‘가랑잎을 굴리고, 옷소매가 닳게’한다. 인간의 삶도 죽음 앞에서 ‘젖은 눈에 가망 없는 비’ 같이 조용히 임재하는 주체의 사라짐을 ‘젖은 눈’―삶의 필터로서 ‘가망 없는 비’―죽음을 포착한다. ‘가랑가랑’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연약하고 절박한 소리는 생명을 탈락시키고 있지만 바깥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죽음이, 누구에게나 당도해 ‘점멸하는 존재’를 ‘生과 死’의 ‘사이사이 언어’로 활성화시켜 드러낸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