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일부 역사단체 등에서
진정 역사교과서 검정 상황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헌재에 판결 맡기는것도 고민해야
정치권은 교육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머리 맞대야
지난 1992년 헌법재판소는 국어 교과서 국정화가 헌법 제31조 등에 위배 되는지에 대해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헌재는 어떤 경우에 정부가 교과서 편찬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지 판단했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초·중·고교 교과서는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나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구성될 경우 정부 개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교과서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독자적인 생활영역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품성과 보편적인 자질을 배양하기 위한 것으로 교육과정에서 공사립, 지역, 교육환경, 교원 자질/능력 등에 의해 교과의 과목별·내용별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만약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색다른 역사관이나 한국사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면 이는 교과서로서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크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헌재는 교과서가 피교육자에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균등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반 교육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사물의 시비, 선악을 합리적으로 분별할 능력이 미숙하므로 가치 편향적이거나 왜곡된 학문적 논리에 대하여 스스로 이를 비판하며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교육을 책임지는 정부는 이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교과서에 내용 중 편향성과 왜곡의 논란이 있다면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역사 교과서 편향성과 왜곡 논란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이 검정 기관인 교육부에 있고, 교육부는 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교과서 국정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헌재는 세 번째 이유로, 교과서가 국민의 수학권(受學權: 교육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국민의 수학권은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문화·민주·복지국가의 이념구현을 위한 기본적 토대이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정교과서 제도는 교과서를 정부가 독점하는 것이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민 수학권 보호를 위해 학년과 과목에 따라 교과용 도서를 자유발행제로 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한 경우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그리고 그 인정의 범위 내에서 국가가 이를 검·인정제로 할 것인가 또는 국정제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재량권을 갖는다고 판시했다.
헌재 결정문 내용을 정리하면 교과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균등한 교육을 받기 위한 도구이며, 국민의 수학권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서 내용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의 개입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 결과는 교과서 국정화가 되는 것이다. 만약 야권과 일부 역사 단체 등에서 진정 역사 교과서 검정제 상황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헌재에 판결을 맡기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반대를 위한 반대는 결과적으로 교육부 과오에 대한 면죄부만 주게 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역사교과서 주무부서인 교육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육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이념적·정략적으로 이용되기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