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한·중·일, 한·일 정상회담이 별 성과 없이 끝났다. 혹시나 아베 일본 총리가 달라지지 않을까 여겼지만 그대로였고 일본과 한·중 관련 역사에 관해서도 일언반구 사죄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일본어 ‘스미마셍(濟みません)’은 ‘(강 등을) 건너지 못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죄를 지었는데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면 강을 건너다가 중간에 빠져버린 상태가 된다. ‘사죄(謝罪:샤자이)’라는 말도 비슷한 뜻으로 ‘와비’ ‘아야마리’라는 단어도 있고 ‘죄송하다’와 유사한 말에도 ‘쿄슈쿠(恐縮→무서워 오므라들다)’가 있는가 하면 ‘송구(悚懼:쇼쿠)’라는 말 외에도 ‘공구(恐懼:쿄쿠)’라는 단어도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그 많은 단어 중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3국 협력, 한반도 문제 의견 일치 등 의례적인 수사(修辭)에만 일치했을 뿐…. 언어 망각증도 아닐 터이고 그가 설마 인격장애자(personality disorder)는 아닐까.
한·일 정상회담의 중요 이슈인 위안부 문제도 ‘타협 협의를 가속화 하기로’만 합의했을 뿐이다. 지난 5월 일본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지난 번 아베의 미국 의회 연설은 온통 거짓말이었다”고 질타했다. 그럼 그가 미국이라는 강자 앞에서도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 한·중·일을 ‘韓中日’로 쓰면 친근한 사람 이름 같다. 만약 이번 한·중·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역사를 직시,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화끈하게 말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고노(河野)와 무라야마(村山)의 사죄처럼, 서대문형무소 앞에 무릎 꿇은 하토야마(鳩山)처럼. 그러기는커녕 엉뚱한 일본인 납북 문제를 들먹거렸다. 한·중 관계를 시샘한 일본 언론도 비열하다. 31일 도쿄신문은 ‘중국수상 박씨와 회담, 관계 긴밀한 체 과시했다’고 썼다. 박씨라니? ‘긴밀한 체’라니?
미국의 권유로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도 그렇게 끝났고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성사된 한·중·일 수뇌회담도 반쪽 성공에 그쳤다. 하지만 서방 언론은 극동 3강국이 한자리에 앉은 것만도 의미가 크다고 보도했다. 한·중·일이 굳게 협력한다면 그야말로 21세기 동북아시대가 찬란하게 열리련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