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재창조·정체성 회복’에 더할 나위없는 무기
방송국·네트워크에만 집착하다보니 답 못찾아
‘인천의 관점’ 적극 반영하는 방송콘텐츠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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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지난해 3월, 존함을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지역원로를 찾아뵙고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 목적과 역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린 뒤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인천에 KBS 지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원로의 하문(下問)은 필시 부산, 대전, 강릉 등 전국 18개 시에서 총국 또는 지국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KBS 지역국을 염두에 두신 게다.

“있으면 좋겠으나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공영방송인 KBS의 인천지역국이 있으면 분명 좋을 것이다. 인천시가 부르짖고 있는 ‘인천 가치의 재창조’나 ‘인천의 정체성 회복’에 더할 나위 없는 무기가 될 것이다. 서울의 그늘에 갇혀 ‘지역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인천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인천의 관점’이란 것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KBS 인천지역국 유치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간절한 인천의 바람과는 달리 수도권이라는 단일한 문화적 생활환경에서 독자적인 제작시스템을 갖춘 지역국을 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더군다나 인천시청에서 여의도 KBS 본사까지는 직선거리로 20km 남짓한 지척이다. 지금 수원에 있는 KBS 경인방송센터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지역국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를 위해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로는 ‘인천 가치의 재창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올해 7월, 인천의 한 언론인단체가 주최한 ‘방송주권 찾기’ 토론회에서 ‘인천의 방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그러나 도출된 대안들도 설득력이 약하다. 케이블TV와 IPTV는 유료방송이다. 방송권역도 저마다 다르고, 네트워크도 제각각이다.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이 허용되지 않는 방송시스템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 기반의 인천N방송은 얼핏 맞춤의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천N방송은 태생적으로 ‘소박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contents circulation platform)이다. 인천시와 구청의 공공정보 제공, 동호회나 교회와 같은 폐쇄이용자그룹을 위한 방송서비스, 전통시장과 소상인 홈쇼핑서비스 등을 하도록 설계됐다. 인천이 필요로 하는 ‘무기’나 ‘동력’으로서의 방송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남은 대안인 지상파방송의 인천 이전은 가능할까? 이 방안은 경기도 부천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민영방송 OBS를 전제한 것이라 생각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가가 따른다. 연주소가 인천에 있어야 한다는 허가조건이 있었긴 하나 현실은 경기도 소재 방송국이다. 상대적으로 큰 시장인 경기도를 떠나 인천으로 오는 대신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특혜 시비와 형평성 논란이 우려된다. OBS 유치 명목으로 버스터미널시설이 일반상업시설로 바뀐 것부터가 이미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인천의 방송’을 두고 이처럼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논의의 초점이 플랫폼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방송국과 네트워크에만 집착한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제아무리 선로를 잘 깔고 승강장을 편리하게 만든 들 기차가 달리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 기차는 다름 아닌 콘텐츠다.

보편타당한 가치관과 세계관에 바탕을 두되 인천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품격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세련된 방송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인천의 방송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제작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콘텐츠와 우월한 제작 역량만 갖추면 플랫폼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삼시세끼’ ‘신서유기’의 나PD가 어디 플랫폼을 가리던가? ‘인천의 방송’, 그 논의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