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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슴이 설레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밤잠을 설치며 무언가 끄적거리는 사람들.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우리 주변엔 그런 문청(文靑) 문소(文少)들이 많다. 문학청년, 문학소녀가 안절부절 못하는 시절이 돌아왔다. 우리만의 작가 등용문(登龍門)인 신춘문예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듯, 찬바람이 불자 각 신문마다 신춘문예를 알리는 사고가 게재되기 시작했다.

신춘문예 하면 떠 오르는 작가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그중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최인호다. 최인호가 도벽이 심한 한 소년의 비행을 그린 ‘벽구멍으로’가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된 것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였다. “당시 심사위원은 안수길·황순원 선생이었는데 ‘신선한 문장이 돋보인다’며 심사평을 했지만, 막상 시상식장에 고등학교 2학년생이 나타나자 ‘속았구나’하는 표정들이었다”고 이제 고인이 된 최인호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의 신춘문예 사랑은 너무도 지극해서 1967년에는 모든 신문 신춘문예에 응모작을 보내고, 당선 소감까지 써 놓고 군대에 갔다. 최소 몇 편은 당선될 거라고 확신했지만 눈 오는 겨울, 연병장에서 단체 기합을 받던 그에게 조교가 전보 한 장을 건넸다. ‘당선 축하, 조선일보 견습환자’. 전보가 한 장뿐인 것에 그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신춘문예 역사는 백년이 넘었다. 1914년 12월 10일 매일신보 1면을 장식한 신년문예모집(新年文藝募集)이 그 시작이다. 1919년 매일신보가 ‘신년현상공모’를 내고 동아일보가 1924년에 ‘현상문예대모집’이란 이름으로 문인을 선발하던 것을, 이듬해 그 명칭을 신춘문예로 바꾸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월요일 경인일보 1면에 ‘201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사고(社告)가 게재됐다. 경인 신춘문예는 경인지역 언론사 중 유일한 작가 등용문이다. 1987년 첫 당선자(소설 시 시조)를 배출한 이래 서른 해를 맞는다. 단 한해도 거르지 않은 것도 큰 자랑이다.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경인신춘문예를 거쳐 작가가 됐다. 신춘문예를 통해야만 큰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춘문예를 통해 역량있는 신인들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에 신선한 시각이 담긴 역작들이 많이 응모해 한국문단에 활력을 넣길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