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의 피해를 조속히 복구하고 이재민들의 불편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복구비를 먼저 지원한 뒤 정산은 나중에 하겠다는 정부의 '선(先)지급 후(後)정산' 방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응급복구에 이은 항구복구 작업은 국회에서 추경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아직 착수조차 되지 않고 있어 갈수록 쌀쌀해지는 날씨속에 이재민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월 엄습한 태풍 '매미'로 9가구 27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농경지와 농작물 438.5㏊의 피해를 입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에는 수마가 훑고 간 지 한달이 다 돼 가지만 이부자리 하나 구입할 돈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3천여㎡의 배 농사를 짓는 박주용(61.상촌면 상도대리)씨는 9일 "수확을 앞둔 배 50∼60%가 떨어졌지만 보상금은 아직 한 푼도 못받았다"며 "연말에는 밀린 농협대출금도 갚아야 하는 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또 정부 지원이 실제 피해에 훨씬 못미치는 데다 침수나 유실된 논에 다른 농작물을 심는 대파 지원비가 사후에 지급되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감귤 비닐하우스 900평이 파손돼 1억1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은 오정만(55.남제주군 성산읍 신풍리)씨는 "완전복구를 위해서는 평당 11만원 가량 소요되지만 정부의 지원은 8만원밖에 안되고 그것도 융자가 55%나 차지해 엄청난 빚을 안고 복구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가덕도의 경우 섬 일주도로 대부분이 파손되고 선착장 방파제가 유실됐으나 쓰레기 처리 등 긴급복구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 복구예산조차 확보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어 항구복구까지는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워낙 태풍 피해가 커 시설물 복구 등은 내년 이후에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복구예산 배정 등 행정적인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8일 오전 현재 이재민 생계보조비와 침수주택수리비, 사망.실종자 위로금 등 응급구호비로 설정된 예산 2천365억7천100만원 가운데 지급된 예산은 634억9천100만원으로 지급율이 26.8%에 그쳤다.

태풍피해 구호비 지급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일선 읍.면.동의 인력이 부족한 데다 주택파손의 경우 피해정도를 80%, 50% 등으로 나눠 액수를 달리 지급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확인작업이 계속 늦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가용인력을 최대한 활용, 위로금, 구호비 등이 시급히 지급될 수 있도록 현지 확인, 독려반을 편성해 운영토록 각 자치단체에 시달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