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지대 틈새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따라 20여 분을 걷자 이윽고 패널로 지은 허름한 조립식 건물이 나타났다. “설마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하는 의문이 들 만큼 형편없는 외관을 하고 있어 주택이라기보다 언뜻 창고 같아 보였다. 주방이 딸린 10평 남짓 비좁은 이곳이 아빠와 엄마, 동생 등 다니아 가족 4명의 보금자리였다. 방은 냉기가 돌 정도로 추웠지만, 그 흔한 난방기구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다니아는 파키스탄인 부모 사이에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파키스탄 혹은 대한민국 그 어느 나라의 국적도 갖지 못했다. 1년여 만에 다시 국적 없는 아이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엄마와 인터뷰를 하는 사이에도 천진난만하게 갓난쟁이 동생과 장난을 치는 다니아의 해맑은 모습에서 암담한 현실을 떠올리는 것이 왠지 죄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유치원 대신 인근 복지기관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다니며 한국말밖에 할 줄 모르는 다니아는 한국인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다니아에게도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혼돈을 겪는 시기가 곧 닥칠 것이다.
우리는 다니아와 비슷한 처지로 살다 성년이 된 무국적자들을 취재하며 안타까움을 넘어 위기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조국이라 생각하며 살다 어느 순간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깊은 혼란과 좌절, 배신감 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심적인 동요가 이들을 더욱 참담한 현실로 내몰고 있다. 국적이 없어 아무런 신원자료도 없는 이들은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언제 어떻게 ‘범죄의 늪’에 빠져들지 모르는 이들을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들을 대책 없이 내버려 둘 것인가?
외국인 비중이 2%에 육박하는 ‘다문화 시대’에 우리는 이들의 현실은 외면한 채 ‘상생’과 ‘화합’이라는 헛구호만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 쌀쌀한 늦가을 날씨에도 얇은 겉옷만을 걸친 채 우리에게 또박또박 한국말로 길을 안내하던 다니아의 해맑은 미소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최재훈 지역사회부(포천) 차장